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솔과 장미, 나는 너를3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솔과 장미, 나는 너를3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7.02 00:05
  • 업데이트 2020.07.0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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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1021호(2020.7.2)

첫 번째 사진은 둥글게 자라는 반송가지 사이로 줄장미가 올라가 마치 곱게 늙은 중년 여인(서양이라면 백작부인쯤)이 뒷머리에 붉은 장미를 꽂아 성장(盛裝)을 한 모습 같습니다. 그런데 저 소나무와 반송은 처음부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저렇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적응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진을 보면 너무 빽빽하게 자라 머리 위를 덮어버린 반송의 가지에 눌린 줄장미가 길게 팔을 뻗어 간신히 소나무 가지에 몸을 의지하려 했으나 소나무가 이를 거부해 아름다운 꽃송이를 매단 가지가 땅바닥을 향해 축 늘어진 모습입니다. 저 힘든 상태에서도 줄장미는 용기를 잃지 않고 악착같이 소나무에 매달려 마침내 붉디붉은 꽃송이를 피워낼 공간을 확보한 것입니다. 무심히 보면 참으로 평화롭게 서로가 보듬은 모습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세상에는 저 장미와 소나무처럼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서로 갈등하면서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에 한번 소개한 지칭개와 비루의 관계처럼 어느 한 종이 일방적으로 침략을 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비교적 평온한 동반자로 일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이라는 명제로 운명적으로 서로 동조하거나 혹은 등을 대고 갈등하는 삶을 여럿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 첫 번째 예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과 주유의 예입니다. 한 사람의 장군으로서 모사로서 누구보다 훌륭하고 나라사랑의 집념이 강한 오(吳)의 대장군 주유에게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한 발 앞서는 촉(蜀)의 제갈공명이라는 천재가 라이벌로 나타난 것은 청천벽력이나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의 제의로 오와 촉이 동맹을 맺어 강대국 위(魏)를 적벽대전에서 물리치지만 그 성과는 공맹이 다 차지하고 잔뜩 이용만 당한 주유는 홧병으로 상처가 덧나는 금창(金瘡)으로 죽어버리고...

그런가 하면 서양화의 역사에서 가장 불운하면서도 가장 강인한 느낌의 마치 열병(熱病)같은 그림을 그린 반 고흐는 사촌동생 레오에게 생활비와 그림의 재료구입과 판매까지 삶의 모든 것을 의존했고 한국시단에 나타난 가장 투명한 영혼 윤동주도 한 평생 이종동생 송몽규의 보필을 받아 이슬방울처럼 투명하고 연약한 영혼을 부지할 수 있었는데 그 지지대 송몽규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일제에 의해 죽게 됩니다.

모딜리아니의 연인 잔 에뷔테른 초상화(1918) [Amedeo Modigliani / Public domain]

또 이탈리아 출신의 가난한 화가 모딜리아니가 압셍트라는 최저급의 독주를 마시며 먹기와 굶기를 반복하던 시절 에뷔테른이란 한 여인이 나타나 그를 먹이고 재우고 사랑하고 모델이 되어주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파리의 어느 곡물상의 딸로 가난한 연인을 위해 아버지의 가게에서 매일 밀가루와 감자와 팥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 모델리아니가 나중에 가장 개성이 강한 일련의 명작으로 자리잡은 눈이 가늘고 목이 길면서 전체적으로 어딘가 좀 못나면서도 차마 무시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의 인물화의 실제모델이 되어주기도 하고. 여전히 무명화가에 머물며 결핵으로 삶의 막바지에 몰린 모델리아니가 아직도 단 한 장의 그림도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싸고 독한 압셍트 한 병 값에 천하의 명화를 넘기다 마침내 결핵군에 항복을 선언하고 눈을 감았을 때 그 못생긴 연인 잔 에뷔테른은 이미 배가 불러 있었는데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곡물상 아버지의 권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모델리아니와 함께 살던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이처럼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되기는 하지만 좋게 끝을 맺는 동반의 관계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운명적 앙숙관계도 있습니다. 양귀비, 초선, 서시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은 한나라 초기 흉노의 세력이 가장 왕성한 시절 흉노의 요구에 의해 한의 공물로 흉노의 왕 묵특선우에게 바쳐집니다. 아직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지만 자신의 궁녀로서 얼굴이 가장 못생겨서 보내기로 한 왕소군이 불쌍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떠나기 전에 얼굴을 한번 보기로 한 황제가 왕소군을 보는 순간 그만 노발대발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궁궐에서 본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왕소군이었던 것입니다. 왜 그 절세미인이 가장 못난 궁녀로 지목되었는지 알아보니 궁중화가 모연수란 자가 가장 못난 궁녀로 지목되면 오랑캐땅으로 가게 되므로 모두들 화공에게 뇌물을 바쳐 자신을 예쁘게 그린데 반해 천생미인인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 가장 못난이가 되고 오랑캐땅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그 사실을 안 황제가 그 자리에서 모연수를 불러 척살했지만 흉노의 재촉이 심해 왕소군을 안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슬픈 미인 왕소군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가장 아름다운 궁녀와 뇌물을 밝히는 소인배 모연수. 처음부터 무슨 애증이 있었겠습니까만 살다보니 운명이 그렇게 얽히고 하나는 오랑캐땅으로 가게 되고 하나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소군의 입장으로서는 모연수라는 흉물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오랑캐의 계집이 되었지만 모연수 입장에서 보면 눈치코치도 없이 단지 얼굴만 예쁜 한 계집 때문에 궁중화가의 명성과 그 많은 뇌물을 다 버리고 저승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운명적인 애증관계, <나는 너를>이 참으로 많은데 오늘은 여기서 접기로 하겠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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