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민비 살해의 끄나풀 우범선의 행적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민비 살해의 끄나풀 우범선의 행적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7.08 08:15
  • 업데이트 2020.07.0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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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2017호(2020.7.8)

일본 낭인들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다룬 프랑스 주간지 르 주르날 일뤼스트레 표지 사진. [Le journal Illustré / Public domain]
일본 낭인들의 명성왕후 시해 사건을 다른 프랑스 주간지《르 주르날 일뤼스트레》 표지 사진. [Le journal Illustré / Public domain]

대한제국의 국모인 명성왕후 민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벌어지던 경복궁 안의 건청궁의 경비는 안타깝게도 단양 우씨 무인집안의 무관 28세의 우범선, 일본세력에 의해 창설된 별기군을 거쳐 왕실 훈련원의 대대장이 되었지만 반만년 민족사의 가장 치욕스런 배반자가 된 사내가 맡고 있었습니다. 

아시다 시피 당시는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의 승리로 한반도에 대한 우선적이고 독점적인 침탈권을 쥔 일본이 조금씩 국권을 빼앗아가던 시기로서 멸망 직전 황실의 두 효웅, 흥선대원군과 민비가 각각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열강의 세력을 끌어들여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에 혈안이 되었을 때입니다. 한문을 배운 선비이자 과거에 급제한 무관인 우범선은 당시의 시류에 따랴 일본인이 창설한 별기군과 훈련원의 장교가 되면서 단지 성실하고 강직한 군인으로서 정치적으로는 민비보다 대원군에 가까워 민비로부터 귀양을 가게 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표면적 한 원인인 일본계의 훈련원이 당시의 정세에 따라 친러, 친미세력에 의해 해산하게 되자 훈련원의 대대장인 그가 일본대사 미우라가 짠 각본에 따라 민비시해의 현장을 안내하여 시해한 뒤 사후처리를 한 것은 민족적, 역사적으로 보아 엄청난 역적(逆賊)행위일 것입니다. 

그럼 그는 충효와 인의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 선비로서 또 과거에 급제한 한 무인으로서 왜 자신의 모국인 대한제국을 배신하고 국모의 시해에 서슴없이 가담했는지 한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이나 당일 낮 국가와 민족이라는 명분과 일신의 출세라는 현실적 양극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지는 않았을까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의 국선변호사처럼 누가 애써 그를 변명한다면 단지 조직과 상관의 명에 따라 일신의 죽고살기를 떠맡기는 군인이라는 직업정신으로 보면 당시 일본계 훈련원의 대대장이란 그가 처한 현실에서 일본공사 미우라의 민비시해계획에 그렇게 참여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피치 못할 현실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가 만고불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생각이며 저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잠시 군국기무처의 개혁업무에 참여하던 그는 친일 김홍집내각이 몰락한 이듬해 민비시해의 역적으로 지목되어 고종으로 부터 체포령과 참수명령을 받습니다. 이에 국내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는 미우라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망명, 동경에서 방황 중 일본여성 사카이 나카를 만나 청혼을 하였답니다. 

도피중인 이방인인 데다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그를 두고 미우라가 

“인간성은 좋으나 늘 불안에 떨어 좋은 신랑감이 아니다.” 라고 했음에도 사카이는 결혼을 결심했고 슬하에 장남 장춘을 비롯한 두 아들을 두게 됩니다. 그러나 망명 7년차인 1903년 그는 고종이 보낸 자객 고영근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무능한 황제 고종의 이미지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1935) / Public domain
고종 초상  [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1935) / Public domain]

그렇게 파란만장한 47년을 살고 간 그의 생애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더 악랄한 반역자에 매국노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건 민비시해의 현장상황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그가 죽은 민비의 사후처리를 맡았을 뿐 아니라 민비와 대한제국에 모욕을 가하려는 미우라와 일인 낭인들의 사주에 의해 화장으로 소멸직전의 국모의 사체에 참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나오면서 입니다. 전 국민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는 다시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배신자의 상징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당시 민비의 시신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그 낭설에 대한 증거는 물론 있을 수가 없지만 어찌 보면 그럴 수가 있을 것 같은 상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제국의 후예인 우리는
(설마 그럴 리라고, 절대 그럴 리는 없지!)
그렇게 믿으려하고 있고 믿고 있으며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가설이 없다고도 하지만 아무튼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하여 우리는 그 따위 난감한 가설을 세워 또 한 번 우리의 국모를 비참하게 해서 안 될 것입니다.
이 끔찍한 사나이의 이야기는 그의 아들 우장춘을 통해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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