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김성칠, 역사 앞에서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김성칠, 역사 앞에서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7.14 00:05
  • 업데이트 2020.07.1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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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1032호(2020.7.14)

역사학자 김성칠(맨 왼쪽, 1913~1951) 가족 사진. [ⓒ유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사학자 김성칠(맨 왼쪽, 1913~1951) 가족 사진. [ⓒ유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7년 가을이었습니다. 8월 8일 염천에 왼쪽 갈비뼈 셋을 떼어내고 간신히 힘을 차려 산책길을 나섰을 때였습니다. 
“여보, 조금만 걷고 와. 무리하면 해서 덧나기라도 하면 이제 어쩔 수가 없대.”

벌써 눈이 벌개진 아내를 보며 서둘러 집을 나왔습니다. 두 번째 수술을 하고나서부터 부쩍 눈물이 많아진 아내, 수술한 부산 백병원에 아내의 친구사위가 의사로 근무했는데 자기 장모 부탁으로 사진과 기록을 보고 그냥 그 아저씨 큰일 났다고 달리 대책이 없다고 하는 바람에 아내는 금방이라도 제가 죽을 것 같았나 봅니다. 하긴 그 사위가 암환자가 갈비뼈를 떼어내고 생존한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고 했을 뿐 아니라 첫 수술을 하고 갈비뼈에 전이되기 전까지의 담당의사도 
“수술이 잘 되면 간혹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거의 희망이 없다는 말로 가뜩이나 울고 싶은 아내에게 확인사살을 해 보인 겁니다.

(간혹 잘 되는 수가 있다고, 그럼 갈비뼈 세 개를 떼 낸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인데, 아아,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나? 내가 죽으면 내 가족과 형제, 우리 마초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골안못 가는 숲길을 걷다 
(그래 산다는 게 무엇이며 나는 여태 무얼 하고 살았나?)

맥 빠진 걸음걸이로 겨우겨우 작은 고개를 넘다 아주 옛날 무슨 일론가 둥치와 가지가 부러져 나가고 또 한참 세월이 흘러 그 속에 풍뎅이, 사슴벌레의 애벌레가 일고 딱따구리들이 그걸 잡아먹느라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 다시 세월이 흘러 이제 전체가 흐물흐물 삭아 곧 무너질 것 같은 참나무 그루터기, 지금의 나보타 더 허물어진 것 하나를 발견하고
“맞아, 김성칠, <역사 앞에서의> 겸손한 지식인 김성칠, 그 멋진 인생을 내가 잊었구나?”
하고 손뼉을 쳤습니다.

<역사 앞에서>는 매우 총명하면서도 겸손하며 그 위에 순박하기까지 한 역사가 김성칠이 쓴 일기의 모음으로 70년 가까이 <조선에 책이라 생긴 책은 다 읽어보자>라는 신조로 살아온 제가 감동한 책 순위 5번 안에 듭니다. 당시 너무 감동해 마지막 주인공이 6·25 당시의 혼란스런 대구 시내에서 괴한의 쏜 총을 뒤통수에 맞고 죽는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쏟아버릴 정도로. 매우 감성적이란 소리를 듣지만 살아온 과정이 늘 괴로운 저로서는 사춘기에 읽은 <안네의 일기>이후 두 번째로 책을 읽다 운 경우가 되었습니다.

김성칠의 이름 뒤에는 박사니 교수니 하는 직책을 나타내는 수식어가 거의 없습니다. 1913년 식민지초기에 태어난 그는 열다섯 보통학교 2학년 때 독서회사건으로 공부를 그만 두고 혼자 독학을 하게 됩니다.

19세가 되던 때 문화정책으로 돌아선 일제가 <농촌구제책>을 현상모집했는데 19세의 김성칠이 당선된 것으로 보아 그는 엄청 총명하기도 하지만 가난하게 살아가는 식민지의 동포들에게 지극한 연민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거금의 상금을 탄 그는 곧장 일본 규수에 유학 중학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리고는 전라도 대치, 경상도 장기 등 가장 외진 곳에서 금융조합(농협전신)이사로 근무합니다. 이어 경성대학 법학부에 복학해 공부를 마치고 34때에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조교수로 근무합니다. 이를 좀 세세히 살펴보면 4년간의 금융조합근무로 돈을 벌어 늦깎이로 법학을 마치고 전공도 아닌 사학과조교수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설령 그가 초야에서 독학을 했을지는 몰라도 엄청난 천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가 젊은 나이에 비명으로 죽지 않고 장수했더라면 단재 신채호나 위암 장지연 같은 민족학자나 애국지사가 되었을 것 같고요.

사진1 구멍이 숭숭 뚫린 그루터기, 역사 앞에 선 나무
구멍이 숭숭 뚫린 그루터기, 역사 앞에 선 나무.

그의 사후 아내가 수습해 출판한 일기 <역사(歷史) 앞에서>는 해방직후에서 6·25까지 보고 겪은 일기로서 매우 차분하면서도 우국충정과 통찰력, 인간애가 넘치는 체험기이자 관찰기이며 한 지성인의 진솔한 양심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한 페이지, 한 문장마다 그 내용이 얼마나 명료하고 부드러우며 이웃과 동포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절실해 도무지 손에서 뗄 수가 없습니다. 이만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소박하고 인정스러울 수가 있느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고 이 좋은 사람을 어떻게 젊어서 죽게 하느냐고 통탄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동포를 사랑한 애국지사요, 사학자로서 <역사 앞에서>를 쓴 저자가 하필이면 조국의 가장 어두운 역사, 한국전쟁 와중의 대도시에서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무심히 저격을 당해 개죽음을 하는지, 그 장면에서 저는 생애 두 번째(아버님 별세)로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이의 죽음이 왜 이리도 슬픈지 그가 아직 살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면 우리나라는 진작 통일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다 들면서 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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