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순례기(1) -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의 순례기(1) - 예루살렘을 향하여
  • 하영식 하영식
  • 승인 2020.07.28 13:30
  • 업데이트 2020.08.11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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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식 국제분쟁 전문기자 여행기

나의 순례기(1 )-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수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싶어서 무작정 그곳으로 향할 결심을 했다. 그가 세례 받았던 요단강물에 나도 빠져들어 내가 평생 묻혀온 더러운 때를 완전히 벗겨내고 싶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학도로서의 의무감까지도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신학이라는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은 곳을 방문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간절히 소망했을 일이 내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나도 순례자의 길에 동참할 정도로 자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려오고 있었다.

기독교가 전파된 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심장은 언제나 예루살렘을 향했다. 순례의 길이 막히면서 중세 시대 때는 유명한 십자군전쟁을 수백 년간 치르기까지 했다. 중동에서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은 지금도 순례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로의 순례에 대한 생각은 오랜만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나의 영혼을 들뜨게 만들었다.

7월초, 런던의 히드로 공항은 여름답지 않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향하는 비행기의 탑승수속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탑승수속은 모든 짐을 완전히 풀어제끼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로 갈 때 밟았던 형식적인 수속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모든 승객들을 아예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비행기를 납치하거나 폭파할 잠재적 인물들로, 간주해놓고 조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조사대상에는 예외가 없었다. 사진에서만 봤던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검은 둥근테 모자에다 검은 양복을 걸친 정통유대교인들에게도 똑같은 조사가 행해졌고 스카프를 쓰고 긴 치마를 입은 유대인 부녀자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영국에 머물면서도 유대인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기에 유대인들이 영국에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체감한 적 없었다. 공항에 와서야 영국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한국인인 나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모든 물품을 조사 받았다. 보안요원들은 비행기 출발시간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았다. 조사가 길어지면 출항시간까지도 연기할 수 있을 권한을 가진 것처럼 이들의 권한은 막강해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승객들은 출항시간이 다가오자 비행기를 놓칠 것처럼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Bienchido / CC BY-SA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올리보스 산에서 본 예루살렘 전경 [Bienchido / CC BY-SA /4.0]

긴장된 보안검사가 끝난 뒤 승객들이 모두 탑승하자 비행기는 히드로 공항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거대한 물체에 대한 경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물체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비행기를 처음 탈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30분쯤 지나면서 기내에서 우연한 사고가 발생했다. 탑승 전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50대의 한 남자가 내 눈앞에서 갑자기 졸도해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년의 남성은 화장실 문 앞에서 두 발자국을 뗀 뒤 갑자기 쓰러졌다. 갑자기 기내는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승무원이 방송을 통해 승객 중에 의사를 찾는 등 아주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시 남자는 바로 내 눈앞에서 쓰러졌기 때문에 나의 심장까지도 출렁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충격파가 전해왔다. 잠시 후 그는 깨어나서 바닥에서 일어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나를 향해 윙크를 지으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어쨌든 쓰러진 남자로 인해 지루한 운항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어느 덧 비행기는 거룩한 성지의 하늘에 도착하고 있었다.

텔아비브공항에 사뿐히 착륙한 항공기는 금방 문을 열지 않고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항공기창으로 바라본 바깥의 비행장은 보안문제로 신음하는 모습이 보였다. 1972년에 있었던 일본 적군파에 의한 텔아비브공항테러사건은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공항에서 일본적군파에 의한 무차별사격으로 26명의 인명이 숨졌던 사건이 발생한 적 있었다. 그 뒤로부터는 이스라엘당국은 동양인도 철저하게 조사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이스라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본인들에 의한 테러행위는 동양인 전체를 잠재적인 테러분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갑자기 더운 공기가 나의 폐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뜨거운 중동의 공기를 단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내 몸은 갑자기 침투해 들어온 뜨거운 공기로 인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서늘했던 영국에서 갑자기 뜨거운 열풍이 부는 사막지대로 들어오니 몸 전체가 타는 듯했다. 바로 그 뜨거운 열풍 자체가 이스라엘이었다.

하영식 작가

☞필자 하영식은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2년 한국을 떠났다. 미국·영국·멕시코·이스라엘·폴란드·그리스 등 50여개 국을 누비며 멕시코 빈민 지역 선교사, 이스라엘 키부츠 자원봉사대장, 아테네칼리지 동양문화강사 등으로 활동했다. 2003년 아시아 언론인으로서는 최초로 쿠르드 게릴라 기지인 칸딜 산을 방문해 쿠르드 게릴라들의 삶과 활동을 취재했으며, 그 뒤로도 계속 중동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국제 분쟁 문제와 관련된 기사를 써왔다.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시리아의 코바니에서 벌어졌던 쿠르드민족과 IS와의 전쟁을 현지 취재해 한국 언론에 소개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굿바이 바그다드』(200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2005), 『남미 인권 기행』(2009),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2010), 『IS, 분쟁전문 기자 하영식 IS를 말하다』(2016), 『난민 희망을 향한 끝없는 행진』(2017), 『난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행』(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