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모두가 꽃이야, 꽃나무들이야
이득수 시인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 모두가 꽃이야, 꽃나무들이야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7.29 21:16
  • 업데이트 2020.07.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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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통산 제1048호(2020.7.30)

하얗고 예쁜 종(鐘)모습으로 핀 참깨꽃(7.1) 
하얗고 예쁜 종(鐘)모습으로 핀 참깨꽃.

7월의 뜨락을 키 작은 해바라기와 무지개빛 어른대는 수국이 주도하는 사이 이웃 텃밭에서도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이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꿀벌의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벋어 자칫 너불거릴까 봐 오이와 토마토의 옆줄을 매주다가 자주 빛 가지꽃 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그렇구나. 애초의 목적인 열매를 위해 그냥 소리 없이 피운 채소도 하나의 꽃으로서 절대 화초에 지지 않는구나!)  

하며 주변의 꽃들을 둘러보니 이제 철이 지나 이미 뿌리가 뽑힌 감자도, 이미 시들기 시작하는 상치와 쑥갓, 밭 가운데 선 석류나무도 어느 마초할매가 조석으로 풀을 뽑고 물을 준 귀하신 몸 화초들에게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보듯이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의 사내처럼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것이었습니다.

포토 에세이에 올릴 사진을 하나씩 사진을 찍다 문득 아하, 그렇지, 이 세상의 모든 곡식과 과일도 꽃이 피는데 우리는 여태 벼나, 보리, 옥수수 같은 열매나 무와 감자, 고구마의 뿌리, 상추와 배추의 잎처럼 사람이 먹는 식물, 음식이 되는 식물로 그들을 접근했지 한 번도 꽃에 눈길을 주지 않았구나, 나름대로 긴 겨울부터 온 힘을 모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채소와 곡식들이 너무나 섭섭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50년 전 언양농업학교 수석졸업의 모든 기억을 동원해 나름대로 채소와 곡식, 과수에 대한 꽃을 떠올리며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접근방법을 곡식이나 채소의 가루받이(受粉)을 하는 방법, 또 그 과일의 생긴 모양에 따른 분류법에 따라 모범생다운 답안을 한번 작성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모든 식물은 암술의 씨방까지 수술의 꽃가루를 누가 어떻게 운반하는가에 따라 나누는데 곡식인 벼, 보리, 귀리, 사료작물 오차드그라스, 등의 볏(禾本)과 식물은 바람에 의해 수분을 시키는 풍매화(風媒花)인데 아마도 그 면적이나 꽃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벌, 나비 같은 곤충이 찾아오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는 곡물의 꽃들은 색깔도 희거나 누리끼리한 단색이며 특별한 향기도 없습니다.

보랏빛 고혹적 자태의 가지 꽃(5. 31)
고혹적 자태의 보랏빛 가지꽃.

다음은 무, 배추, 쑥갓 같은 채소와 사과, 배, 복숭아, 살구, 앵두 같은 열매를 맺는 식물들은 그들의 대부분이 봄을 맞은 4-5월에 집중적으로 피는 만큼 다른 식물에 곤충을 뺏기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특기를 발휘하는데 그 충매(蟲媒)화를 세분하면
  
0.복숭아, 살구, 자두, 앵두처럼 열매 중심에 커다란 씨가 있는 핵과류(核果類)는 아주 특별히 고운 모습과 색깔로 승부를 걸고 
0.사과, 배 감 같은 인과(仁果)류는 비교적 수수한 편의 꽃을 피우지만 그 향이 매우 진하고 또 넓디넓은 과수원의 모든 나무와 가지마다 꽃을 피우는 인해전술을 쓰고
0.머루, 포도 같은 장과(漿果)류는 희거나 누런색의 작은 꽃을 피우지만 벌, 나비가 아닌 개미와 파리 등이 꾀이는 것으로 보아 그 향이 아주 특별한 모양입니다.
0.그리고 마지막으로 두꺼운 껍질에 싸인 곽과류인 밤은 너무 역한 느낌의 하얀 꽃을 피우는데 옛말에 <밤에 벚꽃이 필 때 부녀자, 특히 젊은 과수댁은 외출을 하면 안 된다.>고 할 만큼 페르몬이 강력한 모양입니다.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지극 정성인지 못생긴 얼굴로 비교되는 호박도 사실 자세히 보면 암수꽃이 모두 아름다운데 특히 암꽃은 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이 드나들기 쉽게 씨방 가운데 터널을 뚫어 그 비밀스런 부분을 아낌없이 공개하는 것입니다.

루이16세의 왕비 마리앙뚜네와뜨가 머리에 장식으로 꽂았다는 감자꽃(6.10)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와네뜨가 머리에 장식으로 꽂았다는 감자꽃.

그런가 하면 이미 뿌리를 먹는 식물로 진화해 버린 감자나 고구마도 열매와는 전연 관계없는 꽃을 피우는데 감자 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철없는 왕비 마리 앙뚜와네뜨가 비녀처럼 머리에 꽂기까지 하였을까요? 또 메꽃과 나팔꽃의 중간쯤 되는 모양의 분홍 꽃이 피는 고구마는 그 촌스런 외모나 이름에 비해 꽃이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연꽃이나 우엉 꽃의 아름다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래도 농작물의 꽃 중에 가장 예쁜 꽃을 뽑으라면 저는 서슴없이 눈부신 황금빛의 쑥갓과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종처럼 방금 캐럴송이 나올 것 같은 참깨 꽃(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부는 나팔 같기도 한)을 꼽고 싶습니다. 

이제 이 긴 답안의 결말이 나갑니다. 그렇지요 모두가 꽃입니다. 꽃도, 나무도, 채소도, 갓난아이나 귀여운 소녀, 곱게 늙은 할머니까지 이 땅의 모든 식물과 여성이 모두 꽃인 것입니다. 잘 나눈 이분법(二分法)은 아니겠지만 이 땅의 여성은 모두 꽃이고 남성은 그 찬미자입니다. 

꽃같이 예쁘고 귀하신 여성 여러분, 당신은 무슨 빛깔의 꽃인지 어떤 향내가 풍기는 꽃이고 열매인지 한 번씩 생각해보면서 가슴을 쫙 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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