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식 작가의 이스라엘 순례기(4) - 이스라엘의 역사2
하영식 작가의 이스라엘 순례기(4) - 이스라엘의 역사2
  • 하영식 하영식
  • 승인 2020.08.23 18:18
  • 업데이트 2020.08.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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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난민

유대 민족의 시온주의운동에 불안을 느낀 아랍 민족은 1936년에 영국의 통치에 반대하고 유대 민족의 토지매입금지와 이민반대를 내걸고 대규모 파업과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아랍 민족의 봉기는 3년에 걸쳐 지속됐으며 팔레스타인 땅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봉기의 결과는 아랍 민족이 기대한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봉기 중 영국군에 의해 무기를 포함한 많은 군수물자가 압수 당했으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전투 역량의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또한 파업을 하면서 많은 아랍 인구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아랍 지도부는 분열과 내분에 휩싸이면서 아랍 민족의 역량은 전반적으로 약화됩니다.

1930년대 영국의 통치에 대항한 아랍 민족의 무장투쟁 [hanini / CC BY-SA /3.0]

반면에, 유대인들은 아랍 민족의 봉기를 계기로 더 많은 영토를 매입하게 됐으며 아랍 민족의 파업을 계기로 유대인 실업자들을 고용하면서 실업문제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분열돼있던 유대 민족의 무장 조직들도 아랍 민족의 봉기를 계기로 하나로 통합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대 민족은 아랍 민족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역량을 키웠고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1930년대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 무장단체인 '하가나'의 군사훈련 모습

1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난민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귀환하면서 난민문제가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난민 문제는 중동에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통치하에 있던 유대 민족과 아랍 민족은 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충돌해 왔습니다. 두 민족의 무력 충돌의 결과는 더 많은 난민의 양산이었습니다. 아랍 난민들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전부터 계속 양산돼 왔습니다.

19471129일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두 국가 건설에 관한 플랜인 유엔의 181조의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유엔의 결의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를 위한 영토로 나뉘며 예루살렘은 국제사회가 통제한다는 플랜이었습니다.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라는 두 개의 국가 안은 이전부터 계획돼 있었습니다. 물론 1917'발포어선언당시에는 아랍 국가를 위한 영토는 없었습니다만 아랍 민족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아랍인들을 위한 영토를 마련해주면서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도 만들어준다는 계획으로 수정됐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땅이 유대 국가를 위한 땅으로 계획됐다가 점차 아랍 민족의 땅이 증가하게 됐습니다. 1947년에 들어오면서 아랍 국가의 영토와 유대 국가의 영토는 거의 비슷한 비율로 분할됐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랍 측에서는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중동 땅에서 유대국가라는 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랍리그(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측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날의 총회에서는 33개 국가들이 찬성하고 13개 국가들의 반대와 10개 국가들의 기권으로 유엔의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유엔의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유대 민족의 국가가 건설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유엔의 결의안이 통과되자마자 곧 바로 축제분위기에 휩싸였고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룬 유대인들이 밤새도록 춤을 추게 됩니다. 2천년 이상 나라 없이 박해 당하면서 전 세계로 방랑하다 나라를 세울 수 있는 희망이 생겼으니 그 기쁨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반면에, 아랍리그 측은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지기 전 토론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면 중동에서의 전쟁은 피할 수 없으며 중동 국가들에 살고 있는 유대 민족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엄포를 놓았습니다. 결의안이 통과되자마자 곧바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특히 주목할 일은 당시에 대립하고 있던 미국과 소비에트가 함께 결의안을 승인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국가들과 소비에트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국가들은 모두 찬성했습니다. 더욱이 당시 가장 먼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했던 나라는 소비에트였습니다.

텔아비브 거리에서 유대인들이 국가 수립을 축하하면서 춤추고 있다. 

당시 아랍리그에 속한 국가들(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은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오직 아랍 민족의 국가 건설만이 합법적이며 유대 민족의 국가 건설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졌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리그에 속한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 민족의 국가 건설을 막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팔레스타인 땅의 아랍인들은 난민으로 중동의 국가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무책임하게도 지금까지 당시 리그에 속했던 중동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제대로 도운 적이 없습니다. 요르단을 제외하고는 합법적으로 자국민으로 받아들인 적도 없으며 계속 난민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물론 이들 국가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면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갈 의지가 약해진다는 논리로 변명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린 적도 없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아랍세계의 기부금은 전체 기부금의 3%를 넘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해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통치령이 끝나던 1948514,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합니다. 유대 민족의 건국이 선포된 날, 유대인들은 밤을 지새우면서 수천 년만의 건국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515, 아랍리그에 속한 국가들의 전쟁포고가 있었고 곧 바로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은 건국에 사활을 걸었던 유대 민족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이스라엘은 더 많은 영토를 확보했고,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요르단은 서안지역을 점령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선포하는 벤 구리온

전쟁에서는 승자가 누구든지 간에 반드시 난민을 낳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전쟁은 7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 난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레바논과 요르단, 시리아로 피난을 떠나갔습니다. 또한, 아랍 국가들에 살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50만 명의 유대인들도 이스라엘로 대거 난민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럽에서도 살아남은 유대인 난민들까지 이스라엘로 유입되면서 이스라엘은 백만 명의 난민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난민들은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의 지원과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해지면서 혼란스럽던 유대인 난민문제는 서서히 해결됩니다.

반면에, 팔레스타인 아랍난민들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로 흩어지고 이스라엘의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 난민으로 남으면서 국제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난민의 가장 큰 문제는 생존의 문제로 음식과 비바람을 막을 피난처가 가장 필요합니다. 1949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유엔 기구(UNRWA)를 만들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돌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발발하여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난민이 된 재앙적인 사건을 나크바’(Nakba)라고 합니다.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한 1948515일을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은 매년 나크바데이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아랍사람들이 난민으로 땅과 집을 잃고 아랍 국가들로 피난을 떠났던 날을 되새기면서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몰아내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 갈 결의를 다지는 날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아랍 전쟁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발발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는 아랍 난민 행렬

하영식

☞필자 하영식은

▷국제분쟁 전문기자
▷멕시코 빈민 지역 선교사, 이스라엘 키부츠 자원봉사대장, 아테네칼리지 동양문화강사 등으로 활동 
▷2003년 아시아 언론인으로서는 최초로 쿠르드 게릴라 기지인 칸딜 산을 방문해 쿠르드 게릴라들의 삶과 활동을 취재
▷ 2014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쿠르드족과 IS와의 전쟁 취재
▷저서로는 『굿바이 바그다드』(2004),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2005), 『남미 인권 기행』(2009),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2010), 『IS, 분쟁전문 기자 하영식 IS를 말하다』(2016), 『난민 희망을 향한 끝없는 행진』(2017), 『난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행』(2017)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