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첫째 테마 : 거울 - (2)거울 박물관
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첫째 테마 : 거울 - (2)거울 박물관
  • 이성희 이성희
  • 승인 2020.09.02 12:33
  • 업데이트 2020.09.0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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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의 긴 복도를 지나자 거울나라였다!

온갖 기괴한 이미지들이 우글거리는 거울나라로의 여행을 위해 통과해야 할 곳이 있다. 다양한 질료로 된 거울 박물관, 거미줄이 쳐진 긴 복도이다.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의 먼지를 닦으며 우리는 거울의 질료들을 만나보아야 한다. 다른 질료는 다른 이미지를 낳고 다른 몽상을 꿈꾼다.

번-존스 <재앙의 머리>의 우물처럼 고여 있는 물은 가장 원형적인 거울이다. 최초의 거울에 해당하는 한자 ‘監(감)’의 갑골문은 사람이 물을 담은 대야 위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형상이다. 당나라의 귀재 이하(李賀)의 아름다운 시구를 보라. “계곡에 만발한 석류화/ 선녀가 꽃을 씻으니 흰 구름도 붉게 물드네.(石榴花發滿溪津, 溪女洗花染白雲)” 한 폭의 물-거울 그림이지 않은가.

모네 - 수련(1904) [92-89cm, Muma-앙드레 말로 현대 아트 박물관]

물은 유동적이다. 유동하는 수면의 반영은 순간순간 바뀐다. 인상주의는 사물의 표면과 빛이 만나는 순간의 언저리에 서식한다. 인상은 ‘표면’의 감각이다. 그러나 만년의 모네를 우리는 인상주의의 틀에 가둘 수 없다. 만년의 모네는 <수련> 연작에서 표면을 넘어 ‘깊이’를 몽상하였다. 모네의 연못은 수면 위의 풍경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 심연이 이중으로 반영되는 거울이다. 수면은 천천히 흔들리며 상승과 하강, 빛과 어둠이라는 이중의 깊이를 뒤섞어 수련을 피운다. 마네의 물-거울은 표면 너머를 몽상하게 함으로써 거울나라를 깨운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사용한 청동방패는 일종의 청동거울이다. 물-거울 ‘監(감)’이 청동거울로 바뀌면서 쇠 금(金) 변이 붙어 ‘鑑(감)’이 되고, 다시 ‘鏡(경)’이 된다. 물-거울이 유동성을 가진다면, 뜨거운 불 속에서 비밀스러운 용해와 합금 과정을 거친 청동거울은 표면이 거칠고 쉽게 녹이 슬기 때문에 거울상이 흐리고 모호하기 마련이다. 청동이라는 질료의 연금술적 힘과 그 영상의 신비스러운 모호함은 그곳에 고대인들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몽상을 깃들게 한다.

중국의 황제(黃帝)는 샤먼으로서 능력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15점의 청동거울을 주조하여 우주를 비추었다. 거울의 라틴어는 ‘speculum’인데 이는 하늘과 별들을 관찰하는 행위를 말한다. 거울은 우주를 비춘다. 그리하여 청동거울에는 천체의 질서와 역법(曆法)에 관련된 상징들로 장식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속에 기이한 판타지가 스며든다. 중국회화사에서 최고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했던 명대의 화가 오빈(吳彬, 1591-1636)이 그린 <십팔응진도(十八應眞圖)>(‘응진’은 ‘나한’이다)를 보면, 나무 둥치 위에서 한 나한이 수행하고 있고 왼쪽으로 두루미를 탄 신선이 방문하고 있다. 상승의 정신적 고수들 사이 신비로운 교유를 보여준다. 휘어지는 나무 가지와 암벽, 그리고 두루미의 비행이 하나의 율동 속에 이어진다. 나한은 자신의 정체를 손에 든 바리때로 보여주는 반면 신선은 손에 청동거울을 들고 있다.

 오빈 - 십팔응진도(권) (부분)

도교에서는 청동거울이 세상의 참된 실상을 비추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요물들을 비추어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런 거울을 조요경(照妖鏡)이라 했다. 산에는 온갖 요괴들이 뒤끓기 때문에 입산하는 도교 수행자는 반드시 조요경을 소지해야 한다. 당나라 초기 왕도(王度)가 지은 『고경기(古鏡記)』는 기이한 거울들의 판타지다. 황제가 만든 8번째 거울로 한 미인을 비추었더니 살쾡이로 변하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었고, 어떤 거울은 비추면 사람의 병이 낫고, 어떤 거울은 몸의 내부를 X선처럼 투시하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의 판타지는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상가수(上歌手)의 소리」에 와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상가수의 똥오줌 항아리 거울로 이어진다.

'질마재 상가수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깔을 쓴 중을 세우고, 또 상여면 상여머리에 뙤약볕 같은 놋쇠 요령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상가수는 뒷간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 [‥] 똥오줌 항아리, 거길 명경(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서 있었습니다. [‥.] 명경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질마재 상가수의 노래는 이승과 저승으로 뻗치지만, 이승의 가장 밑바닥 질료인 흙으로 빚은 똥오줌 항아리 거울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통하게 하는 숨겨진 비의였다. 가장 더럽고 비천한 똥오줌 항아리가 거울이 되어 저승의 신비와 이어지는 반전이 익살스러우면서도 신기롭다.

그림3) 베르메르-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1658-59
베르메르 -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1658-59)

유리는 가장 발달된 거울의 질료다. 투명한 유리에 어리는 거울상은 매혹적이다. 유리는 우리의 시선을 통과시키면서도 반사하는 이중성을 가진 질료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 베르메르(1632∼1675)가 그린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연인>에서 유리창에 어리는 여인의 반영은 의미심장하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듯한 구겨진 편지를 여인은 창가에서 읽고 있다. 어느 먼 곳에서 온 편지일까? 사내가 보내온 연애편지일까? 그런데 열려진 창유리에 여인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사연을 보내온 외부로 향하는 마음과 다시 수줍게 내부로 돌아오는 여인의 이중적 마음이 유리의 이중성에 반영되고 있다. 전면 녹색의 커튼에 의해 열려 있으면서도 가려진 실내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란 첫 구절로 단숨에 우리를 눈부신 하얀 세계로 데려간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열차 안에서 차창을 보는 첫 장면이다. 창에 서린 김을 시마무라가 닦아내자 건너편 좌석 한 아가씨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 얼굴이 창밖의 저녁풍경과 겹쳐진다. “인물은 투명한 덧없음으로, 풍경은 저녁 어둠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그 둘이 서로 녹아들며 이 세상 것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아가씨의 얼굴 한 가운데 들판의 등불이 켜졌을 때에는 사마무라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렸을 정도였다.” 여기서 『설국』의 미학은 다했다. 이 덧없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안과 밖을 투명하게 통과하면서도 거울처럼 반사하는 유리창의 이중성이 만들어낸 황홀한 마술이다.

유리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유리거울이 된다. 유리거울은 지금까지의 질료들이 가쳤던 유동성, 깊이, 모호성, 이중성이 전혀 없다. 그것은 지극히 명징하게 대상을 반영한다. 그리하여 유리거울에 이르면 거울의 몽상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 그런데 왜 도시의 산책자 보들레르는 “(유리)거울 앞에서 살고 잠들기”를 외쳤으며, 우리의 이상(李箱)은 왜 그토록 거울 앞에서 서성거렸던가? 왜 보르헤스는 거울에 대해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느꼈으며, 라깡은 거울 이미지를 자신의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던가? 거울상은 분명 가상이다. 그런데 그 가상이 실재만큼 리얼할 때 이전의 거울과는 전혀 다른, 두렵고도 매혹적인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가 열린다. 가상과 실재, 현실과 비현실이 서로 겹쳐지고 분리되면서 만들어내는 기이한 혼란, 끝없는 분신의 환상성, 그래서 보르헤스는 거울 속에서 끝없는 갈라지는 미로를 보았던 것이리라. 이제 복도의 끝이다.

자, 가와바타 풍으로 우리도 이렇게 시작하자. 질료의 긴 복도를 지나자 거울나라였다!

이성희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