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보는 사람이야기 (51)주류에 끼지 못하는 하층민들의 삶을 묘사한 여향시인 조수삼
조해훈 시인의 고서로 풀어보는 사람이야기 (51)주류에 끼지 못하는 하층민들의 삶을 묘사한 여향시인 조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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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8 22:13
  • 업데이트 2020.09.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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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계층 조수삼 시인, 『추재기이(秋齋紀異)』에 비주류 인생 주목
조방꾼·거지·부랑아·비구니 등 일흔 한 명 삶 시와 산문 담아 묘사
타 저작물들 따라가기 쉽지 않은 한 시대의 대표적 저술로 인정  

본관이 한양으로 호가 추재(秋齋)인 조수삼(趙秀三·1762~1849)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88세로 장수한 시인이다. 1844년(현종 10)에는 8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그는 양반이 아닌 양민 출신으로 승정원 서리를 역임하여 한양의 중인(中人) 계층에 속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시를 잘 지어 1500여 수의 작품을 남겼다. 중국 사신 행차 때 막료로 여섯 차례나 북경에 다녀왔으며, 영호남의 감영을 비롯하여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중인으로 그 누구보다 세상 경험을 많이 하였으며, 몸소 여러 일을 겪었던 인물이다. 이번 글에서 조수삼을 다루는 이유는 그의 이런 인생 역정도 그렇지만, 어찌 보면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에 주목하여 그들의 삶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살려놓았다는 점 때문이다.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의 문집인 『추재집』(4책)의 권7에 『추재기이(秋齋紀異)가 실려 있다. 이 추재기이에 응달에서 살아가는 일흔한 명의 삶이 담겨 있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인생과 활동을 칠언절구로 읊고, 그 배경을 이루는 구체적인 사실을 간결하게 산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시장바닥에서 살아간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도둑·강도·조방꾼(기둥서방)·거지·부랑아·떡장수·비구니·차력사·방랑시인 등 이른바 시정잡배라고 일컫는 인물들이다. 또한 조선사회의 고급스러운 예술과는 거리가 있는 꾼들도 다수 서술하고 있다. 닭 우는 소리를 잘 내는 계노인(鷄老人), 시장에서 소설을 낭독하는 전기수(傳奇叟), 구기에 능한 박 뱁새, 음담패설 전문가. 재주 부리는 원숭이를 데리고 구걸하는 거지 등이다.

여항시인 조수삼의 문집인 [추재집}
여항시인 조수삼의 문집인 [추재집}.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손가락이 모두 붙은 중증장애인이 삯바느질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연, 어릴 적 행방불명된 동생을 찾아 「백조요」를 부르며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걸음장애인을 비롯하여 많은 장애인이 등장한다. 조수삼은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이러한 장애인들의 내면에 있는 따뜻한 감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쉰 살이 넘은 노처녀 떡장수 삼월이는 온 세상 남자를 다 자기 배필로 생각하여 늘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 따비밭을 개간하여 거둔 소출 3천 석을 빈궁한 사람에게 희사한 중, 밥을 먹여준 동네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물을 져다주는 사람 등 사회의 저층에서 인간다운 가치를 발산하여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노비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시인으로 명성을 날린 정 초부, 성균관 옆에 서당을 개설한 정학수, 오입쟁이를 기생에게 중개하는 조방꾼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면 조수삼은 이들의 이야기를 나열만 하였을까? 그건 아니다. 이러한 응달의 인물들을 비하하거나 냉소적으로 보지 않고 연민과 동정, 찬탄과 긍정의 시선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하여 평자들은 하층의 인물과 그들의 삶을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묘사하여 만든 저작은 조수삼 이전에는 없었다고 보고 있다. 물론 단원 김홍도가 『풍속도첩』을 통해 서민의 삶을 묘사하기도 했지만 추재기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추재기이의 「거지와 원숭이(弄猴丏子)」 편을 보겠다. 거지는 시장에서 원숭이 재주를 보여주고 구걸하였으며, 원숭이를 몹시도 사랑해서 한 번도 채찍을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거지가 병들자 원숭이는 울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거지는 결국 죽었고 사람들은 화장을 하였다. 원숭이는 사람들을 보고 울면서 절하며 돈을 구걸했는데,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지의 시체가 거의 탔을 때 원숭이는 구슬픈 외마다 소리를 내지르고서 불에 뛰어들어 주인과 함께 타죽었다고 한다.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원숭이의 정이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일흔한 명의 마이너리티 삶이 기록된 조수삼의 [추재기이].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일흔한 명의 마이너리티 삶이 기록된 조수삼의 [추재기이].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전기수(傳奇叟)」편을 보면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노인은 동대문 밖에 사는데, 그가 대상으로 삼은 텍스트는 『숙향전』·『소대성전』·『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따위의 전기소설들이다. 그는 매달 초하루에는 청계천 제일교 아래서, 초이틀에는 제이교 아래서, 초사흘에는 이현에서, 초나흘에는 교동 입구에서, 초닷새에는 대사동 입구에서,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아서 읽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기를 마치면 초이레부터는 거꾸로 내려오며 반복한다. 노인의 주변에는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빙 둘러 에워쌌는데,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이 나오면 노인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마음이 달아 앞 다투어 돈을 던진다고 한다.

조수삼은 추재기이를 젊어서 적어놓지 못하고 노년기에 기억을 되살려서 손자에게 구술하여 기록하도록 했다. 그가 70대 이후인 1830년대에서 1840년대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모든 권력과 혜택은 주류인 권세가들에게 집중되었고, 추재기이에 나오는 비주류들은 소외되었다. 지식과 문학의 입장에서도 분석과 묘사의 대상은 주류에 한정되었고, 비주류는 관심권에 들지 못했다. 그리하여 추재기이는 조선시대 다른 저작물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은 한 시대의 대표적인 저술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참고자료>

-조수삼 지음, 안대회 옮김(2010), 『추재기이(秋齋紀異)』, 한겨레출판.
-안대회(2004), 「『추재기이(秋齋紀異)』의 인간 발견과 인생 해석」, 『한국학논집』 38,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신은경(2008), 「散·韻 혼합담론의 유형과 양상: 『秋齋紀異』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38,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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