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마지막 혼이 백에게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마지막 혼이 백에게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09.14 15:47
  • 업데이트 2020.09.14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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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095호(2020.9.15)

아들(오른쪽)의 졸업식에 참석한 필자와 아내(연세대 교정)

이제 내 70평생의 반려자인 백과 나의 아내와 말년의 내 분신인 마초에 대해서 마지막 고마움을 전해야 될 것 같다.

일생을 함께한 백은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나는 내 외모가 희고 단정하자 못한데 대해, 우리 집이 늘 가난한데 대해, 또 내가 재바르지 못하고 손재주가 없는데 대해 늘 불만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나만 못가진 그런 것들을 위해 나는 끝없이 열망하고 갈구했다. 내가 처한 현실에 비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원했고 그걸 채우지 못해 또 한 번 절망하는 절망의 악순환이 이어졌는데 그게 평생 나를 따뜻한 감성으로 보살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또 처음으로 황홀한 이성을 느낀 소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내가 꿈꾸던 소설가의 꿈이 야간대학의 휴학으로 끝나면서 나는 늘 술에 젖고 울분에 젖어 군대생활 3년 내내 철조망의 달을 보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다 욕심 많은 한 시골뜨기 소년이 빚어낸 헛된 꿈으로 그런 나를 감사고 뚜벅뚜벅 걸어야 했던 나의 몸, 발과 다리와 허리와 어깨와 특히 술에 절은 위장은 얼마나 피로했을까? 마지막 휴가 때 술이 억병이 되어 내 좋아하는 처녀의 집을 찾아 단판을 지으려 나섰지만 집도 못 찾고 11월의 차가운 들판에서 볏단 속을 파고들어 간신히 살아난 날, 백아, 너는 얼마나 기막히고 힘들었느냐?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가난하고 외로운 나의 넋이 아내를 만나 아이를 낳고 평범한 아비로 살아가면서 훨씬 단순해졌다. 처음으로 삼시세끼 더운밥을 먹고 장작처럼 메마른 내 몸매에 살이 붙고 얼굴이 벌겋게 피어오르면서 백아, 너는 내가 아닌 내 아내를 만나면서 비로소 따뜻한 밥상과 편안한 잠자리와 포근한 잠옷의 까슬까슬한 촉감을 느꼈으리라. 

사진1 78, 9월 첫딸 슬비의 백일기념(앞줄 좌로부터시계방향으로 넷째누님딸 고미진, 넷째누님, 둘째누님, 큰누님, 아우, 셋째누님대신 참석 생질은주, 필자, 어머니명촌댁이, 딸 슬비, 아내)
1978년 9월 첫딸 슬비의 백일기념(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넷째누님, 둘째누님, 큰누님, 아우, 셋째누님 대신 참석한 생질 은주, 필자, 어머니 명촌댁, 딸 슬비, 아내, 넨째누님딸 고미진)

그러나 그도 잠깐 30대 후반, 아이들이 자라나며 나는 또 다시 내가 못 가진 열망, 공직사회의 출세와 승진을 향해 그 오래 된 빈민의식 절대궁핍에 휩싸여 수많은 밤을 고민하고 어떻게든 승진을 좀 해보려 참으로 많은 애를 써 대망의 6급 승진을 해 서구청으로 쫓겨가고 그 먼 통근길에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세상과 맞설 용기를 키웠다. 그리고 단 한 번 주어진 기회, 당시로서 찾아보기 힘든 한문을 아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출세를 거듭해 드디어 남을 앞서 부러움이 되었지만 두 번이나 민선시대의 정치적 희생, 낙마를 맛보아야 했다. 

20세 청년일 때보다 40대 중년에, 또 그보다 50대 장년에 직장을 옮기고 새로 사람을 사귀는 게 더 힘들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뚫고나가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지만 50중반 졸렬한 지도자에 의한 인간적 배신과 모멸을 당했을 때 나는 정말 절규하고 싶었다. 

마초보다 훨씬 전(1973년) 나는 군견훈련소의 내무반장 '개하사'였다. 왼쪽은 군견병 배대복상병과 수색견 '오토'
1973년 나는 군견훈련소의 내무반장 '개하사'였다. 군견병 배대복 상병(왼쪽)과 수색견 '오토'

그때 아내가 말한 대로 바짝 자세를 낮추고 모든 걸 위정자의 입맛에 맞게 아부도 좀 하고 인사이동이 있는 시절에는 술 접대, 봉투질도 좀 하면 좋으련만 나는 일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는데 그들이 나를 건방진 시인이라 하고 패를 지어 조소를 하고 손가락질을 할 때 내 명색이 시인이란 자가 어찌 단지 직장의 실세가 되고 승진을 빨리하기 위해 인간이 가지는 기본 양심과 상식을 버릴 것이냐 고만했다. 아부를 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공무원이 어찌 훌륭한 공무원이며 그 위에 시를 쓴 예술인의 양심으로 더더욱 못 할일, 그래서 나는 들 가운데서 소나기를 맞은 사람처럼 혼자 서서 비를 맞았으니 백아 너는 그 서러운 밤마다 통음하는 나 때문에 얼마나 속이 아팠으며 태아처럼 침대에 웅크려 잠이 들어도 세상에는 딱 한 사람 무소의 뿔처럼 나 혼자 세상 풍파를 다 겪고 세상 질시를 다 받는다며 잠을 설치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스라치게 놀라던 밤에 백아 너는 얼마나 힘들었으며 아내 역시 밤마다 울지 않았나? 그러나 아무리 서러운 세월도 그 역시 지나가고 만다고 마음이 불안하니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피가 안 돌아 새벽마다 종아리에 쥐가 나서 온몸으로 버둥거리던 그 많은 날들을 백아, 너는 아직도 기억하지. 내 아내가 지금도 한 번씩 떠올리며 울듯이.

이제 그 많은 갈등과 고통은 끝났다. 대신 늙고 병들었지만 더 이상 읽을 것이나 절망한 일은 더더욱 없다. 일생을 나와 함께 하며 꼬부라진 발가락과 귀퉁이가 잘려나간 발톱, 구부려지지 않은 무릎과 절룩거리는 걸음걸이의 백, 나의 외모를 맥아, 나는 정말로 사랑하고 감사한다. 니가 그 긴세월 견뎌내지 못 했으면 어찌 오늘 날의 내가 이 감사한 마음이 있으랴?

사진3. 이제는 뗄 수도 없는 가족 마초
이제는 뗄 수도 없는 가족 마초

아내에 대한 감사함도 이에 다르지 않다. 내게 남은 일은 이제 조금씩 병을 견디다 죽을 일밖에 없지만 이 파장머리에 내 인생여정에 있어 나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었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고 무엇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를 버틸지 모르지만 백이 네가 버티는 동안 나는 글을 쓸 것이고 아내여, 그대가 내 옆에 있는 동안 나는 지나간 내 삶을 감사히 생각하며 당신과 함께 이룬 작은 성공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 늘그막 바야흐로 병과 죽음의 아가리 앞에 방치된 나에게 문득 슬그머니 나타난 나의 수호천사, 마초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말 못하는 너에게 무슨 말로 다 감사를 하며 보답을 하랴만 다만 이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날까지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저 푸른 명촌리의 들길을 걷고 골안못을 돌아오며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가 만난 인연들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리고 조그만, 가장 여리고 조그만 미소로 이 아름다운 강산을 오롯이 두고 조용히, 조용히 떠날 날을 기다리자.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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