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 거울 - (6)무한히 되비치는 거울나라의 미로에서
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 거울 - (6)무한히 되비치는 거울나라의 미로에서
  • 이성희 이성희
  • 승인 2020.09.30 16:24
  • 업데이트 2020.09.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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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홀먼 헌트 - 「패니 워 헌트의 초상」
제프 웰 - 「여성을 위한 사진」
마네 -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샬롯의 아가씨에서 만났던 라파엘전파의 화가 윌리엄 홀먼 헌트, 그의 가슴 아픈 그림 한 점에서 우리는 뜻밖에 보르헤스가 경외했던 거울의 미로를 만난다. 경이로운 작가 보르헤스는 『칠일 밤』(강연집)에서 자신의 악몽은 항상 두 가지 종류라고 하였다. 하나는 미로이고, 하나는 거울이다. “이 두 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두 개의 거울을 마주보게 만들기만 해도 미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주보는 두 개의 거울이 끝없이 서로 되비치며 만드는 미로는 출구가 없는 무한의 미로다. 보르헤스의 ‘악몽’이란 말은 실상 ‘공포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매혹시키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보르헤스는 거울과 미로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펼 때 당신 역시 거울의 미로 속에 들어서는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패니 워 헌트의 초상」
윌리엄 홀먼 헌트 - 「패니 워 헌트의 초상」

「패니 워 헌트의 초상」은 반은 살아 있는 사람의 초상이고 반은 죽은 사람의 초상이다. 패니는 헌트의 아내였다. 피렌체 여행 중에 헌트는 아내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는데 얼마 후 아들을 낳고는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헌트는 큰 슬픔에 빠졌지만 런던으로 돌아온 뒤 기억과 사진의 도움으로 기어코 그림을 완성한다. 아내에게 바치는 남편의 마지막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림 속에 살아 있는 그녀는 보라색 드레스에 붉은 페이즐리 숄을 걸치고 임신한 배를 의자 뒤로 감추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는 드레스의 보라빛 색채처럼 모호하게 절제된 비애가 흐른다. 그녀의 뒤로 도자기 화병, 유리 그릇 등이 놓여 있다. 이들은 바니타스(vanitas; 덧없음)의 오래된 상징들이다. 그리고 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라. 거울 속에는 또 거울(맞은 편 벽에 걸린 거울)이 있어 두 개의 거울이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의 유희가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보르헤스의 악몽인 바로 그 무한의 미로 말이다. 이 영원으로 펼쳐지는 거울 유희가 왜 그녀의 얼굴 바로 옆에 위험하게 열리고 있는가? 헌트는 아내가 무한한 반영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가 되기를 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삶도 죽음도 접근할 수 없는 무한의 미로를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녀는 그 거울나라의 끝없는 복도를 지금도 거닐고 있을까?

(그림2) 제프 웰의 사진 작품 「여성을 위한 사진」
제프 웰의 사진 작품 「여성을 위한 사진」

서로를 되비추는 상호 반영은 제프 웰(1946∼ )의 「여성을 위한 사진」에서 새로운 경계의 문을 연다. 제프 웰은 캐나다 밴쿠버 출생이며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이다. 그의 「여성을 위한 사진」은 실은 ‘사진을 위한 사진’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무척 평범한 사진처럼 보인다. 하단 전체를 가로지르는 탁자 왼쪽에 여자 모델이 서 있다. 그런데 중앙에 정면을 응시하는 카메라의 눈을 발견하는 순간 평범한 장면은 순식간에 일변하게 된다. 지금 사진작가 제프 웰이 카메라 셔터와 연결된 스위치를 막 누르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사진 자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사진은 포착한다. 이 신기한 마법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거울이다.

「여성을 위한 사진」은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패러디한 것이다. 고전의 회화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혼성모방하는 것은 제프 웰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제프 웰의 좀 잔망스러워 보이는 트릭 속에 심각한 거울의 비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 마네의 작품을 먼저 만나보아야 한다.

(그림3)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마네 -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마네가 죽기 전 마지막 살롱에 출품한 작품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는 정면에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여급이 서 있다. 시인 보들레르가 “이곳은 모든 기상천외의 일들이 꽃처럼 피어난다./오, 나의 고뇌의 수호신, 사탄이여”(「파리의 우울」)라고 외친 19세기의 말, 저 화려하고 소란한 프랑스 파리의 밤 속에서. 마치 여신처럼, 테이블과 2층의 선이 만들어내는 가로선들의 경계를 뚫고 수직으로 솟아오르듯이 말이다. 그녀는 무수한 군중 속에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림 공간의 실제 등장인물은 그녀 혼자이다. 그녀 뒤의 군중들은 모두 거울상이다. 가상의 이미지들이다. 보라, 테이블 바로 위에 거울의 테두리가 보이지 않는가. 여기는 소란의 중심이면서 고독한 적막이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 그녀의 뒷모습 옆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실크해트를 쓴 신사도 거울의 유령이다. 마네 자신인지도 모를 저 신사는 실제 그녀 앞에 그녀를 반쯤 가리고 서 있어야 하지만 거울 밖에는 부재한다. 유령의 신사 때문에 그녀의 정면(실상)과 뒷면(거울상)은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한다. 실상과 거울상이 분열하면서도 공존하는 공간, 열리면서도 닫히는 미로이다.

제프 웰의 사진은 마네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전복이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는 실상과 거울상 사이의 분열이 있는 반면, 제프 웰의 사진에서는 여자 모델을 포함하여 전체가 거울상이다. 현실과 가상(거울나라)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여기에는 없다. 이 사진은 사진 안에 있는 카메라가 찍은 것이다. 카메라는 거울에 비쳐지고, 거울은 카메라에 비쳐진다. 사진 속에 거울과 카메라가 서로 되비치는 무한순환이 숨겨져 있다. 마주 선 두 개의 거울처럼. 이제 거울의 마법은 누가 보는 존재이고 누가 보여 지는 존재인지 알 수 없게 한다.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은 완전히 해체된다. 분열도 없다. 애초에 무엇이 실상이던가? 모든 것이 서로 비쳐진 상일뿐이다. 도망칠 수 없는 거울나라이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붉은 왕을 만나는 장면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한 장면에 거울나라의 가장 은밀한 비의가 담겨 있다. 숲 속에는 붉은 왕이 잠들어 있다. 트위들디가 앨리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왕은 앨리스의 꿈을 꾸고 있는데, 왕에게는 앨리스가 꿈속의 대상일 뿐 그밖에 아무런 현실성도 갖지 않는다.” 만약 이 순간 왕이 깨어난다면, 트위들디는 덧붙여 말한다, “너는 마치 촛불을 불어 끈 것처럼 사라질 것이야.” 거울나라의 모든 것은 앨리스의 꿈인데, 도대체 무슨 개수작인가. 그렇다면 앨리스가 붉은 왕을 꿈꾸는가, 붉은 왕이 앨리스를 꿈꾸는가? 붉은 왕이 앨리스의 꿈속 인물인가, 앨리스가 붉은 왕의 꿈속 인물인가? 동시에 그 둘 다인가? 「여성을 위한 사진」은 앨리스의 거울나라 물음을 이미지로 답한다. 무한순환을 멈추게 하는 검프의 손도 거울의 경계선도 여기에는 없다. 그저 무한히 서로 반영되는 거울나라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은 서로 되비치는 거울 마법에 최상의 신성을 부여하였다, “신은 우리의 거울이고 우리는 신의 거울이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들 각각의 눈이 하나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면 세상이란 무수한 거울들에 되비쳐지며 만들어진 거울나라일까?

이성희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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