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13) ‘무덤 파는 광대’(Grave-digger)의 인류를 향한 애도(哀悼)③
[김해룡 교수의 셰익스피어 이야기] 『햄릿』(13) ‘무덤 파는 광대’(Grave-digger)의 인류를 향한 애도(哀悼)③
  • 김해룡 김해룡
  • 승인 2020.10.10 16:11
  • 업데이트 2020.10.15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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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메멘토 모리’의 뿌리 찾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아나모피즘
#종교개혁의 상황을 빗댄 은유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무덤 파는 광대’(Grave-digger)의 인류를 향한 애도(哀悼)③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오필리어의 장례식(The Funeral of Ophelia)

엘리자베스 여왕 시기에 행해졌던 궁전 장례식의 규모는 이러했다. 관을 운반하는 장정들, 애가(哀歌)를 부르는 남성 합창단,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소년 합창단, 장례 집전 사제(priest), 그리고 조문 행렬이 합창단이 부르는 진혼곡에 맞춰 묘지까지 행진했다. 예식을 거행하는 시간도 길었다. 사제들은 거대한 십자가와 향로를 운반했다. 관을 무덤 바닥에 안치하고 모든 의식 절차를 마칠 때까지 합창단은 애가를 멈추지 않았다.

5막 1장에 오필리어의 무덤 장면과 장례식 장면이 설정되었다. 당대의 연극이 ‘현실을 거울에 비추는’ 사실주의를 추구했기에 규모를 줄이더라도 장례식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인원이 무대에 등장해야 했다. 그러나 이 최소한의 인원을 수용하기에도 당대 무대가 너무 협소했다. 다행히 5막 1장의 경우 난제가 쉽사리 해소된다. 레어티스와 사제(priest)의 대화에서 그 연유가 밝혀진다. 사제의 설명에 의하면 오필리어의 죽음이 자살인 것으로 드러나 평화롭게 영면한 자의 장례에 따르는 여러 예식 절차를 그녀의 시신에게는 베풀 수 없다. 진혼곡을 부르거나 진혼 기도를 올릴 수 없게 되었고 합창단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검시관이 ‘기독교식 장례’를 허락했지만 사제 자신이 이 죽음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 묘파는 광대도 오필리어 가문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검시관이 부당하게 영향을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교회의 장례 관례를 넘어선 국왕의 동정적인 명령이 없었다면 오필리어의 시신은 성역화된 땅에 묻힐 수도 없었을 것임을 사제가 단언하고 있다. 사제가 장례 의식의 축소에 분개하는 레어티스를 달래며 당대의 장례 관례를 전해준다.

레어티스. 무슨 다른 의식은 없습니까?
사제. 아가씨의 장례식은 교회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으로
해드렸소이다. 아가씨의 죽음에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지라,
지엄하신 어명이 교회의 관례를 넘어서지 않았던들
아가씨는 최후의 심판 날까지 축복받지 못한 땅에
묻혀야 했을 것이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 대신에
도자기조각들, 부싯돌, 조약돌들의 세례를 받을 뻔 했소.
허지만 여기선 그녀를 위한 처녀 장례식의 화환장식,
처녀 무덤에 뿌리는 꽃들이 뿌려졌으며
장례의 종소리와 함께 영원한 안식처에 매장되는
절차가 허용된 것이오.

레어티스. 더 이상 해줄 게 없단 말이요?
사제. 더 이상은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영면하신 분들의 경우처럼 진혼가를
불러 아가씨의 영혼의 안식을 축수해 준다면
이는 장례식의 예법을 모독 하는 일이 될 것이오. (5.1.219-231)

이 “비정한 사제”(churlish priest)(5.1.233)의 진술은 당대 자살자들에게 치러졌던 영국 국교도 장례 방식과 거의 일치한다. 블런트와 존스(Blunt, J. H., and Jones, G. E.)가 집대성한 『교회법 요람』(Book of Church Law, 1899)의 한 구절이 이러하다.

...칼, 독약, 절벽에서의 투신, 혹은 목매달기, 등으로 자살한 자나, 혹은 다른 수단으로 자신을 비명횡사케 한 자의 장례 예식에서 고인에 대한 추도(追悼) 및 묘지까지 시신을 운구하는 동안 찬송도 금할 것.

자살한 오필리어의 시신이 겪을 뻔했던, 그리고 당대의 자살자들의 시신들이 겪었던 모욕, 즉 자살자들의 무덤에 “도자기조각들 부싯돌 조약돌들”을 던지는 관습은 1823년 법 제정과 함께 사라졌다. 햄릿은 장례행렬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규모를 갖추지 못한 “허술한 장례”(maimed rites, 5.1.207)임을 간파한다. 그리고 이런 약식 장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에게 해당됨도 알고 있다. Q2 판에는 이 장면의 무대지시에 ‘왕과 왕비, 레어티스 그리고 시신 등장’([Enter K.Q. Laertes and the corse])으로만 표기했다. 등장인물을 줄이기 위해 오필리어 역의 배우가 시신에게 씌었던 모자를 쓴 채 걸어서 무대 위로 올라와서는 즉시  드러누워 시신 역할을 하는 연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햄릿』 공연사에서 오필리어의 장례식은 충분한 애도 없이 최소한의 인원으로 처리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무대지시이다.

[영국의 챨스 왕세자 (Prince Charles, 1948~  )가 8세였던 1958년에 모후인 엘리자베스 2세 현 여왕과 부친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Prince Philip the Duke of Edinburgh) 공으로부터 영국과 영연방을 다스릴 왕위 계승자(Heir-Apparent to the British and Commonwealth thrones)의 신분으로 하사받은 왕세자 문장. 중앙에 위치한 왕관은 왕위 계승자임을 나타내고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문양은 각기 England(좌측 상단), Scotland(우측 상단), Ireland(악기 문양), 그리고 Wales(우측 하단)를 각각 표방한다. 엘리자베스 사후에는 이 문장이 영국 왕실을 대변하게 된다. 광대가 삽이라고 여기는 방패 위에 문양이 새겨졌다.]문장(coat of arms)의 기원. 기사들이 다리 부분이 터지고 무릎을 덮는 두루마기(coat)를 갑옷 내부의 열기를 식혀줄 용도로 착용했다. 점차 투구가 커져 얼굴을 가리기 시작하자 신원을 드러내기 위해 두루마기 앞뒤에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 문장(紋章)의 기원이다.]
영국의 챨스 왕세자 (Prince Charles, 1948~ )가 8세였던 1958년에 모후인 엘리자베스 2세 현 여왕과 부친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Prince Philip the Duke of Edinburgh) 공으로부터 영국과 영연방을 다스릴 왕위 계승자(Heir-Apparent to the British and Commonwealth thrones)의 신분으로 하사받은 왕세자 문장. 중앙에 위치한 왕관은 왕위 계승자임을 나타내고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문양은 각기 England(좌측 상단), Scotland(우측 상단), Ireland(악기 문양), 그리고 Wales(우측 하단)를 표방한다. 엘리자베스 사후에는 이 문장이 영국 왕실을 대변하게 된다. 광대가 삽이라고 여기는 방패 위에 문양이 새겨졌다. 기사들이 다리 부분이 터지고 무릎을 덮는 두루마기(coat)를 갑옷 내부의 열기를 식혀줄 용도로 착용했다. 점차 투구가 커져 얼굴을 가리기 시작하자 신원을 드러내기 위해 두루마기 앞뒤에 각기 다른 문양을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 문장(紋章, coat of arms)의 기원이다.]

● 무덤 파는 광대(Grave-digger)와 햄릿

햄릿이 탐구하는 주요 과제는 자기 인식, 즉 자아 정체성의 확인이다. 그러나 덴마크 왕실에서 이 확인은 난제이다. 태생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한 통속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삼촌이 아버지가 되고, 조카가 아들이 되며, 어머니는 숙모가 되고, 장례식은 결혼식이 되기도 한다. 이 차이의 소멸은 선왕을 시해한 크로디어스가 왕좌를 차지하면서 시작되었고, 이 새 왕은 덴마크에 여러 형태의 죽음을 초래했다. 자신이 정원에서 자행한 시해의 뒤를 이어 시종장인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로젠크란츠와 길던스턴, 레어티스, 거트루드, 그리고 햄릿 등 극의 주요인물들이 다 죽는다. 이 죽음의 행렬을 앞질러 다른 형태의 죽음이 인물들의 내부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부왕 햄릿에 대한 거트루드의 사랑이 죽었고, 오필리어에 대한 햄릿의 사랑도 그러했다. 오필리어의 정신세계에서는 이성(理性)이 종언을 고했고, 햄릿의 정신세계에서는 이 세상의 의미와 목적이 죽어 없어졌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바대로, 크로디어스로 인해 햄릿은 인간이 이성을 거부하고, 짐승의 지위로 추락하는 가공할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배웠다. 그 가공할 능력으로 신하가 왕을 시해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근친상간의 침상으로 뛰어들며, 유년시절의 친구들이 염탐꾼으로 고용되었다. 이 햄릿에게 “만물의 영장”(paragon of animals)은 “먼지의 정수”(quintessence of dust)(2.2.307-8)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당연히 이 묘지에서는 복수를 비롯해 극이 노정한 많은 문제들이 휴지기(休止期)에 든다. 무덤파기 인부(Grave-digger), 즉 광대와 햄릿이 죽음의 담론만 펼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대는 진정 ‘시대를 비추는 거울’의 노릇을 한다. 그는 햄릿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덴마크 사회의 불안한 위계질서와 계층 간의 갈등의 가능성들을 농지거리하듯 뱉어낸다. 광대가 주장하는 문장(紋章, coat of arms)의 역사는 관객들에게 느닷없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던지기도 한다. 오필리어의 자살을 특혜로 인식하는 광대가 계급갈등의 근거로 아담을 들먹인다.

광대 1. ...더욱 처량한 것은
양반 족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목매어 죽을 특혜를
같은 기독교인들보다 이놈의 땅위에서는 더 많이 누린다는 거야.
자, 삽이나 주게. 뿌리 깊은 양반치고 그 조상이
정원사, 도랑치는 자, 무덤 만드는 자가 아닌 자가
하나도 없어—이 양반들이야말로 아담의 직업을 계승한 것이지.
광대 2. 아담도 양반이었나?
광대 1. 그 사람이야말로 삽을 지녔던 최초의 양반이지.
광대 2. 원 참,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어.
광대 1. 뭐야, 자넨 이교도인가 보네? 자네는 성경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성경에 아담이 땅을 팠다고 하잖아.
연장 없이 팔수가 있는 거냐고? (5.1.26-37)

First Clown. Why, there thou say'st: and the more pity that
great folk should have countenance in this world to
drown or hang themselves, more than their even
Christian. Come, my spade. There is no ancient
gentleman but gardeners, ditchers, and grave-makers:
they hold up Adam's profession.
Second Clown. Was he a gentleman?
First Clown. He was the first that ever bore arms.
Second Clown. Why, he had none.
First Clown. What, art a heathen? How dost thou understand the
Scripture? The Scripture says 'Adam digged:'
Could he dig without arms?

그에게 사회적 지위에 수반되고 또한 표해야 할 범절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과 같이 삽으로 생업을 삼는 계급이 태초부터 귀족계급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초는 광대가 구사하는 어휘 “arms”의 이중적 의미이다. 이 자가 읊조리는 어휘 “arms”는 연장, 즉 ‘삽’의 의미와 함께 왕조(王朝), 공동체, 그리고 귀족 가문의 차별된 정체성을 문양을 통해 드러내는 ‘문장’(紋章, coat of arms)의 의미이다. 

중세 유럽의 대표 문장들

이 광대는 귀족들이 자랑하는 각 가문의 ‘문장’(coat of arms)들의 중앙에 위치한 방패(escutcheon)가 아담의 삽을 그린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상, 문장학(紋章學)을 다룬 몇몇 문헌들은 아담의 삽을 가장 오래된 방패의 형태라고 기술한다(Francis Douce, Illustrations of Shakespeare, ⅱ. p.263). 따라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삽을 사용한 아담은 첫 귀족이고 삽이 삶의 도구인 광대 자신도 아담과 동업자이므로 신사인 것이다. 광대의 의식 속에 사회적 계급은 태초부터 전도되었다. 상위 계급을 선점한 자들이 재편한 위계인 것이다. 자신은 항의도 못한 채 사회의 밑바닥에 처해 있다. 이 광대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인류를 먼지로 돌아가는 몸뚱이들로만 여긴다. 사회적 계급에 대한 경각심도 없다. 죽음의 보편성에 경도된 광대가 계급적 차이에 따른 범절을 표할 리도 없다. 급기야 햄릿이 이 범절의 소멸에 경각심을 드러낸다. 동의를 구하는 대상은 광대가 아니라 귀족 계급에 속한 친구 호레이쇼 이다.

햄릿. ...정말이지,
호레이쇼, 최근 삼 년 동안 내가 주목해온 바이지만
세상이 너무 까다로워져 농사꾼의 발가락이 궁정인의 발뒤꿈치에
바싹 다가와 동상 걸린 그 발뒤꿈치를 건드려 벗겨놓는단 말일세. (5.1.135-138)

HAMLET. ...By the Lord,
Horatio, these three years I have taken a note of
it; the age is grown so picked that the toe of the 
peasant comes so near the heel of the courtier, he
galls his kibe. (5.1.134-138)

햄릿이 당대의 ‘빈민 구제법’과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 1455~1487) 시기의 구두 패션을 뒤섞어 계급에 수반된 범절을 상기시킨다. 당대의 사정은 이러했다. ‘빈민 구제법’(The Poor Relief Act 1597), 또는 ‘엘리자베스 왕조 빈민구제법’(Elizabethan Poor Law 1601)으로 인해 부자들은 지갑을 열어 빈민들을 구제해야 했고 이로 인해 빈부 간에 사회적/계급적 차이가 미세하나마 완화되었다. 햄릿이 셰익스피어 시대의 이 사회적 변화에 100여 년 전 장미전쟁 시기였던 1482년 전후의 구두 패션에서 야기된 풍습을 뒤섞었다. 당시 ‘앞부분이 길고 뾰족한 구두’(piked shoe)가 유행이었으며, 이 유행이 풍습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으나, 요크(York) 가문을 이끌고 장미전쟁을 치르던 에드워드 4세(Edward IV, 1442.4.28~1483.4.9.)가 1476년 이 구두의 뾰족한 앞부분의 길이를 규제하는 포고령을 발한다. 이에 따라 앞부분의 길이가 발가락 끝에서 2인치를 넘는 구두를 신은 자에게 20실링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 포고령이 발효되기 전, 그리고 1482년 이후, 이 구두 앞부분(pike)은 은이나 금도금된 끈, 혹은 실크 레이스로 꿰어 무릎에 매달아야할 만한 길이가 되었다. (Before this time, and since 1482, the pykes of shoes and boots were of such length that they were fain to be tied up to the knee with chains of silver, and gilt, or at least silken, laces.) (Variorum Ed. p.389).

농사꾼의 “길고 끝이 뾰족한 구두”가 궁정에 출입하는 귀족들의 동상 걸린 발뒤꿈치를 건드리고 괴롭힌다는 것은 농사꾼이 귀족들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계급의 차이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통당한 것은 “동상 걸린 발뒤꿈치”가 아니라 세금 납부로 인해 궁색해진 궁정인들의 지갑이었다. 감독하는 자들에 의해 궁정인들의 지갑이 고통당한(galled) 것이다. (The purses, if not the kibes, of needy courtiers were galled by the assessments of the overseers.)(Dowden). 셰익스피어의 시대 훨씬 이전에 이 유행은 사라졌고 ‘뾰쪽한’의 의미로만 쓰였던 ‘piked’는 일반 형용사로 진화되어 햄릿의 모든 극에서는 ‘깔끔하고, 예스럽고, 멋지고, 허세부리는, 유행에 민감한’(so spruce, so quaint, so affected, smart, sharp, refined, over-concerned with fashion)등으로 쓰였다. 계급에 따른 범절의 소멸에 대한 회한을 표하려고 햄릿이 “빈민 구제법”과 과거의 패션을 동원했다. 불행히도 햄릿의 이 시대비판은 무덤 파는 인부의 무감각과 무차별에 한 치의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인부의 투박한 계급의식에 반발해 세상사에 존재하는 차별을 환기시키려는 햄릿의 수고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묘지에서는 모든 차별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 “모두에게 닥치는 일”(commonness)

일찍이 1막 2장의 왕실 장면에서 거트루드가 햄릿에게 “모두에게 닥치는 일”(commonness), 즉 인류에게 보편적인 죽음을 언급했다. 선왕 햄릿의 장례에 이어 크로디어스와 왕비와의 결혼식이 거행된 후에도 햄릿이 여전히 상복(喪服)을 입고 있다. 햄릿이 선왕의 유령을 만나기 전이다. 크로디어스가 부왕을 죽인 살인자임을 알지 못할 때이다. 단지 햄릿이 이 결혼에 동의할 수 없음을 상복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왕비가 중재자로 나선다.

왕비. 햄릿, 밤의 색깔인 그 상복을 벗어버리고,
덴마크 국왕 전하를 향한 시선에 친근감을 표하도록 하라.
그렇게 오래 눈을 내리깔고 먼지 속에 묻힌
부왕만을 찾는 일은 이제 그만 거두도록 하라.
너도 알고 있듯 이는 누구에게나 닥칠 일, 산 자는 누구나 죽게 마련인 것,
천명을 다하면 영원의 세계로 가는 법이잖으냐. (1.2.67-73)
(...Thou know’st ’tis common: all that lives must die,
Passing through nature to eternity.)(1.2.72-3)

왕비의 이 충고에 햄릿이 “맞아요, 왕비 마마, 모두에게 닥치는 일이지요.” (Ay, madam, it is common.) (1.2.68-74)라고 응답한다. 이때까지 햄릿은 “모두에게 닥치는 일”(common)의 실상에 무지했다. 무덤 장면에서 햄릿은 이 “모두에게 닥치는 일”의 적나라한 실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무덤은 인류에 대한 경외감을 단 한 줌도 지니고 있지 않다. 무덤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면 누구도 지체할 수 없다. 오필리어, 알렉산더 대왕, 궁전 재담꾼인 요릭(Yorick), 그리고 법률가 등이 이 초대에 지체 없이 응했다.

광대 1. ...여기 이십 삼년간이나 땅속에 묻혀 있던 해골이 또 하나 있는뎁쇼.
햄릿. 누구 것이지?
광대 1. 미친 후레자식의 해골입죠. 누구의 해골일 것 같습니까요?
햄릿. 아니, 난 모르겠는 걸.
광대 1. 이 미친 악당 놈에게 염병이나 걸려라! 이놈이 한때 내 머리 위에 커다란 라인산 포도주를 병째 쏟아 부었읍죠. 바로 이 해골이 요릭의 해골입니다, 임금님의 어릿광대였죠.
햄릿. 이게 말이냐?
광대 1. 그렇다니까요.
햄릿. 이리 다오. [해골을 집는다.] 아, 불쌍한 요릭. 난 이 자를 아네, 호레이쇼, 기막힌 상상력을 가진 영원한 익살꾼이지. 일천 번은 날 그의 등에 업고 다녔어, 그런데 지금은—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여기에 그 입술이 붙어 있었고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입을 맞췄었는데, 너의 기막힌 재담, 경쾌한 춤, 노래, 자리가 떠나가도록 폭소를 터뜨리게 했던 유흥의 귀재, 이제 모두 어디 갔지? (5.1.167~185)

광대는 시신이 부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알고 있으며, 새 묘를 쓰기 위해 종전에 있던 유골들은 다 들어낸다. 유골들은 광대에게는 그저 일상의 한 풍경이다. 이 광대와 주검은 햄릿이 태어난 후부터 30년 동안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묘파는 광대에게 묘지는 사람의 삶이 끝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일을 하며 그는 노래를 부르고 술도 마신다.

묘지 장면인 5막 1장은 294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1-64행은 두 광대만의 장면이다. 61-64행은 광대1이 부르는 4행으로 된 노래이다. 65행에서 햄릿과 호레이쇼가 등장해 211행까지 광대와 대화를 나눈다. 무대에는 광대가 묘를 파며 집어 던지는 해골들이 뒹군다. 이 장면 중 70-73행과 92-95행도 광대가 부르는 4행으로 된 노래이다. 앞의 노래와 연결되는 노래이다. 211행에서 묘지 행렬(오필리어의 시신, 왕과 왕비, 사제.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이 무대에 들어 와 햄릿과 조우한다. 이후 이 장면의 끝인 294행까지 햄릿과 레어티스 간의 심각한 갈등이 고함소리로 전개된다.

● 진혼곡

텍스트에는 177행부터 이 묘지 장면의 끝인 294행까지 광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광대가 사라진 듯하다. 무대는 햄릿, 호레이쇼, 사제, 왕비, 왕, 그리고 레어티스가 채운다. 독자 여러분은 잠깐 무대 위의 광경을 상상하시기 바란다. 광대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므로 광대가 퇴장했을 것이라고? 아니다. 그는 여전히 무대에 있다. 무대의 현실로는 광대가 무덤을 완성해야 한다. 당대 극장의 무대는 성인의 가슴 높이만한 높이로 지어졌다. 무대 중앙에 직사각형으로 뚫린 ‘비밀의 문’(trap-door)이 있었고 (평상시에는 덮개로 닫혀있는) 이 통로는 유령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쓰였다. 그러나 햄릿 공연의 전통에 따라 이 통로는 오필리어의 무덤구덩이로 쓰였다. 물론 햄릿 부왕(父王)의 혼령이 드나드는 통로이기도 하였다. 광대가 이 통로로 내려가서 땅위(terra firma)에 서면 관객은 그의 가슴 위와 머리만 보게 된다. 목소리가 사라진 광대가 여전히 무대 중앙에 자리 잡고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광대는 오필리어의 관을 무덤 안으로 들일 때는 주된 역할을 하고 뒤이어 레어티스와 햄릿이 무덤 속으로 뛰어 들어 드잡이를 할 때는 무대 위에, 혹은 둘이 무대 위에서 싸움을 벌이면 무덤구덩이에 머물면 된다.

이제는 독자들이 연출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때이다. 텍스트에서 광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177행부터 이 장면 끝까지의 긴 시간 동안 광대가 묵언 수행을 할 것이라고? 아니다. 자살로 인해 오필리어의 장례식에 허용되지 않는 가장 절실한 요소를 채울 것이다. 노래이다. 진혼곡이거나 애가(哀歌)를 읊조릴 것이다. 장례를 치르는 궁정 인물들의 대사 사이사이를 광대가 애가로 채울 것이다. 광대가 오필리어의 관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부른 노래 3연은 애가이다. 시인 토마스 로드 보(Thomas Lord Vaux)의 소네트 〈노쇠한 연인이 사랑을 단념하나니〉(The aged lover renounceth love)의 일부가 광대가 부르는 애가의 노랫말로 인용되었다. 14연(stanza)으로 된 이 소네트는 각 연이 4행이고 1557년에 처음으로 인쇄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메리여왕 시절에, 토마스 로드 보가 쓴, I lothe that I did love(‘사랑했음을 진저리치나니’)로 시작되는, 죽음의 이미지를 구현한 소네트’ 라는 부제(副題)가 이 시에 붙었고, 시인이 임종의 침상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네트들에 당대 널리 알려져 있던 노래의 곡조를 붙여 부르는 관례가 있었다. 이 관례에 따라 무대에서 광대는 당대에 널리 알려졌던 ‘숲속의 아이들’(Children in the wood)이나 ‘이제 잘 생각하시게’(Now Ponder Well)의 곡조를 이 시에 붙여 노래 부른다. 16세기 르네상스 시기 영국 시인의, 임종의 순간의, 정서를 우리말로 처음 옮기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번역이 완전하지 않지만 이 글의 기승전결을 위해 음원과 함께 14연 전부를 소개한다. 이미 언급한대로 14연중 텍스트에 부분적으로 소개된 것은 3연이고 11연은 오랜 세월 묻혀 있었다. 광대가 부르는 애가/진혼곡에 대한 필자의 상념은 다음 회로 넘긴다. (계속)

<전 한일장신대 교수 / 영문학 박사(셰익스피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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