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연산동 고분군(古墳群)에는 누가 잠들었을까?⑤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연산동 고분군(古墳群)에는 누가 잠들었을까?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0.13 22:58
  • 업데이트 2020.10.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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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24호(2020.10.14)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몽매한 부족을 가르칠 상식과 지혜, 즉 교장선생님 같은 교육자로서의 능력이 필요했지요. 여러분, 우리는 흔히 <이름 없는 꽃이나 풀벌레>라는 말을 쓰지만 인간이 제대로 옷도 못 걸칠 정도의 미개한 시절부터 이 세상에는 이름 없는 풀이나 새나 풀벌레는 없었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동식물에 대해서 반드시 그 아비나 어미가 이름을 가르쳤는데 그건 어린 자식들이 독초인지 독버섯인지, 맹수인지, 해충인지 알아야만 비명횡사하지 않고 살아남기 때문이었지요. 

또 임자 없는 땅, 길이 없는 황무지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모든 산야와 들판은 구체적인 거주자, 경작자 외에도 2중,3중으로 추장이나 임금, 즉 삼천리강산이 모두 짐(朕)의 땅이요, 신민이라는 통치자가 있어 반드시 주인이 있었지요. 그래서 함부로 남의 땅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길과 소유자를 명백히 한 것이었지요. 

또 무심히 길이 없다고들 하지만 우선 모든 자연세계의 흐름은 반드시 길이 있어 -그러니까 계곡은 물의 길, 고개는 바람의 길, 그 길을 가로막는 강이나 하천은 물고기의 길이며 숲 사이나 가시넝쿨 사이로 난 작은 틈새는 산토끼나 다람쥐, 개구리나 뱀, 새가 다니는 길임- 그런 짐승이 다닌 흔적을 따라 사람이 다니기 시작한 것이 바로 길이며 도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모든 땅이 누구의 소유이며 어디로 다니는 길이 있는지 가르치기까지 한 당시의 왕은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가 만나야 할 왕은 어떤 왕일까요? 필자는 우선 20대 중반의 건강하고 젊은 왕을 제시합니다. 어깨가 넓고 싸움에도 강하지만 평소에는 수더분하고 순박한 느낌의 검은 머리카락과 구레나룻 사이로 새파랗고 깊숙한 눈빛을 가진 다정다감한 청년왕입니다. 그 아비가 왕이어서 왕좌를 물려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려서 부터 붙임성이 좋고 영리하며 특히 힘이 좋고 활도 잘 쏘아 열서너 살 때부터 순록이나 고라니를 잡고 열다섯 살에 커다란 곰을 잡아 장사라는 소문이 난데다 열일곱쯤에는 어둠속에 잠입한 이웃부족의 침략자를 죽이거나 생포하여 물리침으로서 넓혀 소년 왕으로 추대되어 제사를 돕는 무녀를 겸한 아름다운 왕비와 다정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왕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경주서봉총 출토 왕관

4. 잘미국의 영역과 인구, 왕관의 격(格)은?

그럼 잘미국의 영토와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여러 향토지를 보면 당시에 인근에 거칠산국, 장산국이 있었으니 잘미국의 범위는 배산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연산동과 거제동 일부이며 수영강 너머의 배산국, 온천천 너머의 거칠산국은 물론 배산보다 더 작은 규모로 아직 제대로 된 통치체계를 갖추지도 여러 소집단과 더러 충돌하면서 지냈을 것이고 인구도 기껏 몇 백, 잘 해야 몇 천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아직 농업이 크게 발달하지 못 한 수렵채취의 경제로서 그 좁은 땅의 인구부양능력을 감안한다면 말이지요. 

현대인들은 그렇게 좁은 영토와 작은 인구로 무슨 나라 운운 하느냐고 하겠지만  우리 인간이 국가라는 통치형태를 갖추기 전 숲에서 나와 밭을 일구며 동굴에 모여 살고 다시 성을 쌓고 저자를 열고 큰 길을 닦아 파발을 띠우던 여러 단계를 생각해보면 동물들이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반드시 싸움을 통하여 서열을 정하듯 사람들도 나와 남, 이웃과 적으로 편을 가르고 지배체제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지배단위인 취락이 부락이 되고 부락이 소국이 되며 그 소국이 차츰 병합되어 제대로 된 대국이 되는 것입니다.(노자(老子)도 도덕경(道德經)을 통하여 한 나라는 이웃마을의 개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범위로 너무 번거롭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고 플라톤의 국가론도 이와 유사한 논지로 알고 있음)

잘미산 뒷거울 능선, 저 능선의 상하로 10겨기의 구분군이 흩어져 있다.
잘미산 뒷거울 능선, 저 능선의 상하로 10겨기의 구분군이 흩어져 있다.

※3. 마을 또는 행정구역의 발전체계와 자형(字形)풀이

0.촌(村): 숲(林)에서 나뭇가지나 나무를 조금 베어내고 살아가는 마을
0.리(里): 처음으로 땅(土)에 금을 긋고 소유를 달리하는 농사를 짓는 작은 마을
0.면(面): 돌아볼 만큼 넓고 복잡한 바닥과 마을
0.읍(邑): 사람들(口口)이 많이 모인 시골(巴)
0.동(洞): 샘(水)이 있어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동굴(同)
0.시(市): 상업용 깃발(布)이 걸린 저자거리
0.군(群): 통치자, 군장이 있는 언덕(⻏), 또는 읍이나 지역
0.구(區): 수많은 사람들(品)이 시가지를 형성하고 사는 곳
0.도(道): 수레나 파발이 다닐 만한 큰 길과 그 방향일대

이득수

위와 같이 아주 조그만 소국들이 모여 살다 보니 차츰 이웃끼리 연맹을 이루거나 전쟁으로 병합이 되면서 점점 큰 고대국가로 이행(移行)되는데 그 예가 삼한(三韓)시대의 수십 개씩의 부족국가연맹체제인 마한, 진한, 변한을 들 수 있고 그 보다 좀 더 큰 연맹체제로 가야의 6국을 들 수 있겠지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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