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황금들판, 황금판화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황금들판, 황금판화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0.17 13:28
  • 업데이트 2020.10.17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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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28호(2020.10.18)

전에 한번 이야기했지만 올해는 유독 장마가 길고 <비바>와 <마이삭>을 비롯한 가을태풍이 3개나 한반도를 스쳐가 모든 곡식과 과일의 열매가 다 부실한데 코로나19바이러스로 국민의 생활이 위축되고 경기가 떨어져 가을에 여는 모든 축제를 취소한 데다 추석명절마저도 <총리를 팔고> 고향에 가지 않는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더니 엉뚱하게도 제주도와 동해안 등에 추캉스, 즉 추석바캉스라는 이상한 관광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라는 아주 먼 이유, 원인(遠因)에서 유래, 명절이든 휴가철이든 단 한 철을 진득이 넘기지 못 하고 한데 모여 먹고 마시고 놀기를  즐기는 우리 배달민족을 <방역제일주의>로 너무 옭아매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환자 마초할배의 경우 텔레비전으로 매일 대하는 코로나19의 위협과 공포가 어찌 보면 남의 일 같다가도 어떤 때는 만약 내가 저 괴질에 걸리면 면역력 부족으로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릴 판이지만 옛날 무지한 시골남정들이 막걸리 판이나 노름판에서 하던 말

“사내자식이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지 뭐...” 하는 막연한 심사, 그저 배짱으로 견디는 판입니다. 

고래뜰 황금벌판

그래도 그럭저럭 추석이 지나고 아침바람 찬바람에 소매를스쳐 산책하기에 한결 좋은 계절이라 한 서너 시간 충분히 쉬고 조심스레 길을 나서도 금방 지치고 숨이 가빠, 괴질의 지구에, 흉년의 가을에, 병든 몸의 고역(苦役)의 3중주가 벌어지지만 살아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매일 산책을 나갑니다.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라 어느 해 하고 조금도 없는 가을풍경을 하나 찾아냈는데 그건 바로 고래뜰과 이불뜰, 바들뜰이 넘치도록 노랗게 펼쳐진 황금벌판입니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아무리 기릴 것 하나 없는 가을, 잘 익은 대추나 홍시조차 구경하기 힘든 이지러진 가을이지만 저 끝없이 누렇게 번져가는 벼 이삭의 바다, 수천만, 수백만, 수억의 낱알이 달린 우리의 주식이자 생명인 나락알갱이를 바라보며 농사꾼 출신만이 느끼는 가을정취(情趣)를 몇 가지 전할까 합니다. 

먼저 마치 오로지 황금 빛애 몰입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귀부인의 옷자락과 보석과 장식처럼 끝없이 펼쳐진 저 황금빛 들판 좀 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람의 눈을 끄는 노란색, 그래서 황금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국인들, 그 자금성 깊은 곳의 용상에 앉은 황제나 황후의 곤룡포나 익선관과 문양에나 쓸 것 같은 저 고래 뜰의 황금벌판 말입니다.

거기다 사광리의 맥가이버 80세 난 늙은 농부 변씨의 아내로 곱게 늙어가는 변씨부인이 올해는 특별히 엄청 많은 벼를 따가운 가을볕에 말리는 모습 대여섯 개의 멍석에 가득한 저 아름다운 판화들을 한번 음미해보세요. 한 때 모 일간지의 연재소설에 삽화대신 판화를 써 수없이 봐온 저는 저 판화가 전문판화가의 어느 대작(大作)보다도 저 변씨 부인의 판화를 제일 좋아하며 찬탄을 보냅니다.

날마다 판화를 그리는 변씨네 부인

자신이 그런 훌륭한 판화의 작가라는 사실도 모르고 해가 지면이 잘 마르면 저 아름다운 동심원들 다 지우고 한데에 모아 이슬이나 서리에 젖지 않게 덮고 아침에 볕가 달면 또 무심히 판화를 그리는 저 겸손한 여류작가는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작가인줄도 모르고 자기작품의 사진 한 장을 찍을 생각도 없이 지나가는 저나 마초에게 늘 웃어 보이는 것이 참으로 타고난 농사꾼의 아내 <농심의 여인>인 것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십시오. 오른쪽에 시꺼먼 벼이삭이 핀 건 찰밥이나 찰떡과 찹살호떡을 만드는 찰벼를 심은 것 왼쪽 논배미처럼 노랗게 익어가는 것 우리가 매일 밥으로 먹거나 떡이나 술을 만드는 맵쌀용 나락입니다. 그럼 가운데 노란 메 나락과 검은 차 나락을 섞어 심은 것은 왜 그럴까요? 묘판에 볍씨를 뿌리거나 이앙기로 모내기를 할 때 무슨 실수가 있었을까요?

매나락과 차나락이 고르게 섞여 심긴 논배미

아닙니다. 시골노인들이 가끔 맵쌀에 찹쌀을 조금씩 넣고 밥을 하면 부드럽고 찰진 식감에 한결 넘어가기가 쉬워 일부러 못자리를 할 때 메 나락과 차 나락을 섞어서 파종하고 이앙을 한 것입니다. 고래뜰이나 이불뜰, 바들뜰을 다 뒤져도 보통 저렇게 까지 신경을 써 이앙을 한 경우는 어쩌다 한두 곳인데 아마도 잘 모르는 사람은 요즘 사람들이 게을러 찹쌀과 맵쌀도 구분 않고 마구잡이로 심어서 그런 줄 알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찰밥과 찰떡생각이 나서 입에 가득 침이 고였습니다. 여러분도 저 황금빛 사진을 보며 마음이 넉넉한 가을이 되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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