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56) - 악양 화봉당에서 가진 ‘차사모’ 차회(茶會)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56) - 악양 화봉당에서 가진 ‘차사모’ 차회(茶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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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21 15:58
  • 업데이트 2020.10.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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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평 한옥 3채 둘러싼 돌담 인상적 공간서 모임
화봉 잘 보이고, 전 집 주인 묘가 마당에 있어 특이

2020년 10월 17일, 악양면 소재지에서 회남재 넘어가는 길 따라 올라가 매계마을의 화봉당(花峯堂)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량 되었다. 수백 평의 집을 감싸고 있는 돌담이 아주 인상적이다.

‘차사모’ 백경동 회장님이 하동읍의 떡방앗간에서 맞춘 떡과 찰밥을 갖고 먼저 와 계셨다. 화봉당의 주인인 이상현 사장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하고 준비해간 다구를 펼쳐 찻자리를 만들었다. 얼마 전 만든 추차(秋茶·가을차)를 우려냈다. 주인께 필자가 오늘 팽주(烹主·차를 우려내는 사람)임을 알렸다.

백 회장님이 손님 한 분을 모시고 오셨다. 하동성당에 함께 다니시는 분으로, 하동읍에서 농기계 등을 수리하는 업체인 ‘툴박스’ 사모님이셨다. 남편께서 교사로 퇴직하신 후 이 업체를 운영하시다 돌아가시어 현재는 공과대학을 나온 아들이 이어받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차사모' 회원들이 10월 17일 악양 매계마을에 있는 한옥인 화봉당에서 차회를 하고 있다.
'차사모' 회원들이 10월 17일 악양 매계마을에 있는 한옥인 화봉당에서 차회를 하고 있다.

화봉(花峯)을 등지고 앉은 필자의 등 뒤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악양 사람들은 화봉이 보이는 곳에 집을 앉히면 복이 들어온다고 이야기 한다”라고, 이 집의 주인장께서 말씀하셨다. 차를 마시며 서로 환하게 웃는 가운데 대전에 계시는 김시형 선생님이 오셨다. 김 선생님은 세종시의 한 국가기관에 국장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먼 길 달려오시는 것도 고마운데 참석하실 때마다 뭘 들고 오신다. 오늘은 호떡처럼 생긴 찰떡을 구입해 오셨다.

발효차로 만든 추차를 마시다 봄에 만든 녹차를 마셨다. 요즘 사람들은 녹차보다는 마시기에 부담이 덜하다고 발효차를 더 선호한다. 봄에 만든 녹차는 가을인 이때쯤이면 맛이 조금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마셔보니 좀 싱거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차례 우려내고 다른 차를 우려냈다.

그러는 사이 신판곤 대표님이 지인 몇 분과 함께 오셨다. 화봉당 위쪽인 평촌마을에 최근 집을 지어 관리를 하시는데 사업체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 주로 계신다. “차회 참석을 위해 오늘 오전에 용인에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다. 악양이 고향으로 여기서 초등학교를 나오신 신 대표님은 조부님과 증조부님이 조선 말기에 조정의 관리를 하셨으며, 부친은 일제시기에 만주에서 생활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차사모' 회원들이 화봉당 모임 공간에서 차회를 하는 가운데 화봉당 사모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있다.
'차사모' 회원들이 화봉당 모임 공간에서 차회를 하는 가운데 화봉당 사모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있다.

모두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셨기에 각자의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방면에 해박하시다. 특히 신 대표님은 세상 경험이 많으시고 아시는 게 많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걸쳐 이루 말할 데 없이 박식하시다. 오늘 차회 장소 섭외도 신 대표님이 하셨다.

김 선생님은 “사람들과 차 모임이 좋아 왔다가는 길이 즐겁다”며, “최근에 청남대 가까운 곳에 텃밭을 하나 마련했는데, 앞으로 차씨를 좀 심어볼 생각”이라고 언급하셨다.

차회를 하는 화봉당 마당에 전 집주인의 묘가 그대로 모셔져 있는 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다들 긍정적으로 입을 떼셨다. 집주인도 “어른 한 분 모시고 살고 있으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정도였다.

일이 많으신 부춘다원의 여봉호 명장님이 마지막으로 오셨다. 친구가 찾아온다는 걸 약속이 있다고 거부하고 서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여 명장님은 부드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편이다. 올해 85세로 원부춘마을의 고향집에 혼자 살고 계시는 부친에 대한 이야기와 어릴 때 모친께서 큰 찻잎을 말려 두었다가 감기나 몸살기가 있을 때 돌배 등을 함께 넣어 끓인 ‘잭살’ 찻물을 마시면 거짓말처럼 싹 나았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차사모' 회원들이 악양의 화봉당에서 차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차사모' 회원들이 악양의 화봉당에서 차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하는 가운데 백 회장님이 “차사모 회원이 현재 6명인데 오늘 사천의 김현복 선생님만 불참하고 5명이 참석하셨다”고 멘트를 하셨다. 오후 3시 넘어 시작한 차회가 오후 7시가 되어도 여전히 덕담과 환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집 사모님이 공간 중간 테이블에 저녁 식사를 마련하셨다. 찰밥은 백 회장님이 준비하셨지만, 사이 미역국을 별도로 끓이시고 문어회를 내놓으셨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모두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필자도 “집에 있을 때도 늘 습관처럼 차를 마시지만 이렇게 차회를 할 때처럼 한 템포 쉬는 듯한 기분은 느끼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식사를 한 후 다시 차를 마시다 오후 8시 되어서야 자리를 파했다. 이 집은 본채 한옥과 아래채 한옥, 그리고 모임을 할 수 있는 한옥으로 구성돼 있다. 오늘 차회는 모임 공간에서 가졌다. 다음 날 차회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다들 헤어졌다. 회원들은 차를 좋아하고 차회를 통해 일상의 긴장을 풀며 덕담 나누는 걸 좋아하는 공통점 외에는 공통영역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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