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③ 권혜경 〈산장의 여인〉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③ 권혜경 〈산장의 여인〉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0.26 01:19
  • 업데이트 2020.10.2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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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36호(2020.10.26)

우리나라에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나 <봄날은 간다>처럼 서민의 애환과 민족의 정서를 잘 나타면서도 참으로 반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잘 짜여 진 가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는 일생을 병고와 잘못된 결혼생활에 시달리면서 참으로 고요하게 생을 마감한 가수로 꽤나 현대적이고 지성적인 풍모라 그의 노래와 생애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권혜경의 <산장의 여인>도 있습니다. 우선 가사 1절을 감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외로운 이 산장에단풍잎만 차곡차곡떨어져 쌓여있네세상에 버림받고사랑마저 물리친 몸병들어 쓰라린가슴을 부여안고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외로이 살아가네.
고즈넉한 산장에 혼자 살며 병든 몸을 추슬러 언젠가 화려한 도시로 돌아갈 재생의 날을 기다리는 가녀린 몸매에 목덜미가 하얀 병중(病中)의 여인, 193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하얗고 동그란 얼굴의 권혜경에 스물다섯 살인 1956년에 가수로 등단하며 부른 이 쓸쓸한 노래는 삽시간에 전 국민의 호응을 얻게 됩니다. 그건 이 노래의 가사나 멜로디, 또 가수 권혜경까지 다 멋있기는 하지만 당시 시대의 상황과 잘 부합되는 노래였습니다. 

바야흐로 휴전이 되어 많은 피난민들이 고향을 찾고 군인들이 제대하여 서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던 때이지만 밀기울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었고 거리에는 상이용사와 거지가 들끓어 시골마을엔 하도 밥을 얻으러 오는 사람이 많아 가족끼리 오붓이 식사 한 끼도 못 하고 숨듯이 밥을 먹어야 했던 시절입니다. 또 시골에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도시에는 달동네의 루핑 판잣집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후진국병이라는 결핵(폐병)에만 걸려도 거의 다 죽는 시대라 비록 병이 들어 재생을 노리기는 하지만 고요한 숲속의 양옥집이 연상되는 <산장>에 산다는 자체가 너무나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래 속의 병든 여인이(권혜경)이 상당히 세련되고 부유하여 오히려 선망의 대상으로 비칠 정도였으니 안 그래도 전화(戰禍)에 멍든 사람들이 가슴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나 지금은 비록 몸이 아파 정양(靜養)을 하지만 홀로 재생의 길을 찾아 언젠가 화려한 도시적 삶을 꿈꾸는 가사도 당시 피폐한 민심 속에서 하나의 의지가 되었겠지요. 더욱이  필자가 이 노래의 백미로 꼽는 부분 1절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와 2절 <추억은 잠들어 적막한 이 한 밤에>의 가사가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해 누구라도 한번 그 짧은 소절을 부르기만 하면 눈앞에 전쟁의 참상을 딛고 일어난 도시와 팔다리나 가족을 잃는 사람들의 설운 사연이 서리서리 풀려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산장의 여인>은 제가 우리 가요 <톱 20>에 넣기에 충분할 만큼 가슴 시린 노래입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훤히 보이도록 너무 단순한 가사의 울림은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우리는 이 좋은 노래 <산장의 여인>을 떠올릴 때 마다 그 병들어 쓸쓸한 가사의 여인처럼 가수 권혜경의 삶이 왜 그리도 순조롭지 못 하고 오히려 <산장의 여인>노래가사 보다도 더 기구한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또 하나의 히트곡 <호반의 벤치>에

내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무엇을 하는 임일까, 만나보고 싶네신문을 보실까 신문을 보실까그림을 그리실까호반의 벤취로 가봐야겠네

골안못의 산책로에 있는 호반의 벤치. 들릴 때 마다 권혜경의 노래가 생각나는 곳.
산책할 때마다 권혜경의 노래가 생각나는 골안못 호반

이런 가사가 있는데 그렇게 긴 병마를 이기고 돌아온 가수 권혜경, 다시 일어선 인생을 함께할 멋진 동반자를 기다리며 가슴이 설레는 그녀에게 시대는 호반의 벤치에 나오는 지정석 사내가 아닌 이수근이라는 위장귀순자이자 2중 스파이를 그 남편으로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짧고 비정상적 결혼생활은 그녀의 님, 이마가 벗어지고 심사가 뒤틀린 그 음울한 사내는 정체가 탄로나 가발을 쓰고 국외로 탈출하려다 공항에서 검거되어 종말을 맞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 병마에 시달리며 가슴 졸이며 기다린 내님이 왜 그리도 몹쓸 사내였을까요?  그래서 <산장의 여인>은 더욱 쓸쓸한 노래가 되고 권혜경은 한 많은 여인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습니다.

젊의 병마에 시달리며 짧은 결혼생활마저 금방 파탄이 난 가수 권혜경은 2008년 78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쓸쓸한 노래보다도 더 서러운 삶을 살고 간 가수의 명복을 빕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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