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⑤ 윤수일의 〈터미널〉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⑤ 윤수일의 〈터미널〉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0.28 15:41
  • 업데이트 2020.10.2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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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39호(2020.10.29)

고속버스 차창너머 외로운 소녀 울고 있네.
가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끼네.
차창을 두드리며 우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네.
터미널엔 비가 오네. 

위의 가사는 윤수일의 <터미널>입니다. 올해 일흔이 가까운 저 또래의 윤수일과 얼마 전에 작고한 함중아는 울산 출신의 대표적 가수로 한 때 같이 노래한 적도 있었답니다. 그 둘은 성내에서 수돗물을 먹은 하얀 얼굴의  멋쟁이들이고 저는 새까만 촌사람이지만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의 고향에서 같은 시절을 살며 같은 사투리를 써온 만큼 그들의 노래를 받아들이고 이해함에도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니 들기고 한답니다. 

윤수일의 <터미널>의 가사는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반쯤 군사정부의 경제계발 5개년 계획으로 작사자의 고향 울산지역에 정유회사, 비료회사가 들어서며 공업화가 점화되어 <천등산 박달재>의 농촌총각과 <바다가 육지라면>의 수많은 섬 처녀들이 몰려오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만은 않겠어요.>, <아파트>의 윤수일은 백인혼혈을 의심받을 만큼 희고 반듯하게 생긴 얼굴에 쿵쾅거리는 리듬도 신명나지만 절규하듯 부르는 폭발적인 창법이 락이나 헤비메탈처럼 칙칙한 어둠이나 공포도 떠올리게도 합니다. 
 
<터미널>의 가사는 60년대 말쯤의 중소도시(울산인 듯) 터미널에서 한 소녀가 붙잡아도 뿌리치고 떠나가는 같은 회사를 다니던 청년(머시가)이 너무 야속해 차창을 두드리고 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데 그만 비가 쏟아지는 처절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저질 유행가의 특징인 눈물, 콧물을 쥐어짜는 유치한 가사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사는 <맺지 못할 사연이란 생각을 말자...>,  <목이 메어 불러보는 당신의 그 이름> 같은 대중가요가 풍기는 그냥 서글프고 한숨이 나오는 가사와는 달리 결코 천박한 느낌이 아닌 절박함이 가득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윤수일이 스무고개를 넘어가는 1970년경에는 울산과 구미, 부천, 수원은 물론 부산, 대구의 변두리의 공단까지 수많은 처녀총각이 몰려와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의 동사무소에 다녔는데 밤에 숙직을 하면 전라도나 강원도에서 온 처녀들이 전화를 빌려 고향에 연락을 하려고 저녁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때 좀 큰 섬유회사나 고무신공장의 주변에는 퇴근시간이 되면 수많은 포장마차가 나타나 오뎅, 닭발, 떡볶이, 잡채, 달걀 삶은 것과 함께 소주를 팔고 허기진 처녀총각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망설이다 큰 결심을 하고 오뎅이나 호떡을 집으면  큰맘 먹고 청바지나 자전거를 사 폼을 내던 총각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며 지나갔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공단주변에는 포장마차보다 더 많은 초라한 여인숙이 성업을 이루고 그런 남루한 풋사랑 끝에 새로운 가정과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지만 좀 더 월급이 많고 근무조건이 좋은 공장을 따라 그 많은 여공과 청년들은 철새처럼 이 공단 저 공단을 전전하는 이별의 슬픔도 파생하기 시작합니다.

<터미널>의 가사에 나오는 <외로운 소녀>와 <서울로 간 머시마>는 아마도 전라도나 강원도 먼 곳에서 찾아와 한 때 같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돈 많이 벌어 오롱조롱 아이를 낳아 키우는 미래를 꿈꾸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청년은 떠나고 소녀는 땅바닥을 두드리고 통곡하는데 비까지 쏟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장 화려한 복장과 무대로 기타 줄이 끊어질 것 같은 격렬한 몸짓과 괴성에 가깝게 불러대는 그 창피하고 남세스러운 가사의 노래가 동년배에게는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승용차의 보급으로 버스도 승객도 격감하여 텅 빈 언양터미널, 수십 대의 버스와 수많은 승객사이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소녀를 상상해 보세요.
승용차의 보급으로 버스도 승객도 격감하여 텅 빈 언양터미널. 수십 대의 버스와 수많은 승객 사이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소녀를 상상해 보세요.

그건 아마도 객지, 노동, 연애, 결혼, 행복으로 이어지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시골처녀의 희망의 끈이 한 순간에 뚝 끊어지고 끝없는 절망으로 떨어진 상황을 같은 나이또래로 비슷하게 살아온 조바심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우는 처녀나 떠난 청년은 보릿고개에서 산업화와 IT시대를 거쳐 풍족하게 잘 사는 지금의 70-80세 노인들에게는 마치 흑백사진이나 오래된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가사는 마지막 부분의 <터미널엔 비가 오네.>라는 마무리입니다. 가사의 전체를 적시는 처녀의 눈물은 꿈과 희망이 무너질 때 느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슬픔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눈물을 흘림으로서 그 아픔을 잊고 상처를 씻어 마침내 미운 사람을 용서하는 만병통치의 영약입니다. 그렇게 원 없이 울고 난 소녀에게 쏟아지는 소낙비가 남이 보기에는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지만 당사자에겐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참 뒤 소낙비가 그치자 그렇게 울던 처녀는 금방 탈탈 털고 일어나 이튿날부터 열심히 또 공장에 다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잘 사는 우리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터미널>의 2절은 그렇게 야속히 떠나버린 머시마가 중년이 되어 다시 그 터미널로 돌아와 그 소녀와 과거를 추억하며 어두운 밤길을 헤매는 내용이지만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이 노래의 중심인 <차창을 두드리며 우네, 땅바닥을 두드리며 우네, 터미널에 비가 오네.>의 절박한 마음에 괜히 사족(蛇足)이 될까 봐서 입니다.

이 노래는 호박처럼 둥글둥글 평범한 노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음미하면 오랜 세월을 거쳐 결정(結晶)된 호박(琥珀)이라는 보석과 같다고도 할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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