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⑥ 정미조 〈휘파람을 부세요〉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⑥ 정미조 〈휘파람을 부세요〉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0.29 16:18
  • 업데이트 2020.10.30 0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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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40호(2020.10.30)

휘파람을 부세요 / 작사, 작곡 이장희 노래 정미조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경기도 김포출신으로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온 정미조는 1972년 김소월의 시를 노랫말로 한 <개여울>이란 노래로 데뷔해 <휘파람을 부세요.>란 노래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한국여성으로는 드물게 큰 키와 훤칠한 몸매, 낮고 느린 톤이지만 어딘가 사람을 끄는 찰진 목소리로 <개여울> 같이 시적(詩的) 분위기의 노래를 잘 소화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유행가의 말하는 단순하고 슬픈 노래가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애달픈 정조(情操)를 끊어질듯 낮은 목소리로 독백해 잔잔한 애상(哀傷)으로 풀어내는 아주 특이한 가수로 알려졌는데 어느 날 문득 프랑스파리로 유학을 떠나 조형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조각과 교수로 재직 중인 아주 특별한 가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휘파람을 부세요>는 누군가가 보고 싶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는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불라는 내용, 휘파람 속에는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나 외로움을 씻어 마침내 고요한 희열이 가슴 뿌듯이 차오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휘파람은 사춘기사내아이들이 또래소녀들을 보고 휙휙 불거나 무대 위의 마돈나에게 관중들이 환호하는 단순한 유희(遊戲)가 아닌 자신의 호흡은 물론 마음까지 한데 모아 입속 가득 바람을 채우고 혀를 동그랗게 말아 힘껏 불어야 하는 그리 쉽지 않은 동작이자 정신작용입니다. 심신이 모두 편안하고 그 마음이 밖으로 향해야 맑고 투명하며 높고 긴 휘파람이 나오지 가슴에 슬픔이 가득하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과 찡그린 얼굴로는 결코 소리를 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휘파람인 것입니다.
 

지난해 7월 명촌별서에 피어난 부용화꽃, 가수 정미조나 화가 천경자의 붉은 입술을 연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7월 명촌별서에 피어난 부용화꽃. 가수 정미조나 화가 천경자의 붉은 입술을 연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휘파람의 연장인 호흡의 수련이 중국인의 장소(長嘯)나 단전호흡, 열광하는 관중의 갈채(喝采), 판소리의 긴 호흡과 역도선수의 동작(引上)에 불교에서 진아(眞我), 진여(眞如)를 찾은 요가에까지 미치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절정(絶頂)은 바로 그 호흡 또는 휘파람을 통하여 자연의 조화와 심신의 일치에서 우러나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 특이한 제목의 예사롭지 않은 노랫말을 시인이나 전문작사가가 아닌 70년대의 일군(一群)의 통기타가수들인 <세시봉>의 이장희가 작곡했다는 점이 또 한 번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들어 알기로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호소력과 중독성이 있는 노래로 한 때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이 가수는 어느 날 문득 L. A로 떠나 한인방송으로 한세월을 보내다 홀연히 귀국, 지금은 울릉도 산비탈에 집을 짓고 파도와 해풍을 벗해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체질적인 대머리가 왠지 아주 내공이 깊은 소림사의 고수를 연상시켜 쓴 웃음이 나지만 그만한 풍모도 그만한 내공(內攻)에서 우러난 것이어서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멋진 노랫말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젊은 시절의 정미조나 근래의 모습에서도 일관되게 그 깊은 눈빛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결정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가늘고 붉은 입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붉기는 붉되 깊숙한 내심이 묻어나는 조금은 옅은 그 입술이 열창을 하거나 끊어질 때 보면 마치 연꽃이나 부용화의 분홍 꽃잎이 천천히 시들어 맑고 정갈한 잔주름이 맺힌 것 같은 예사롭지 않은 에로틱함(官能)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얼굴과 옷, 보석까지 온통 황금빛으로 치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폭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나른하게 녹아내리는 황홀한 권태나 일탈 같지만 어떤 때는 언 달을 보고 내쉬는 소월의 한숨이나 진달래꽃의 흩날림 같은 황홀하고 처절한 절멸(絶滅)이 느껴지면서 슬픈 듯 슬프지 않은 환희와 희열이 밀려오는 느낌말입니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토지>의 대작가 박경리가 천경자를 평한 미인도의 느낌, <미술은 천재이고 연애는 젬병이고 담배는 골초>라고 지칭된 천경자화백이 한껏 볼을 오므리며 담배를 빨아들이는 순간의 입술이나 입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이 노래의 백미를 저는 

-누군가가 그리울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 소리에 꿈이 서려 있어요 휘파람 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어요.-

로 꼽고 싶습니다. 그 까닭을 묻기보다는 여러분도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불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새 마음이 편안하고 환해지면서 가슴 가득히 고이는 뿌듯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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