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⑪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⑪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1.03 13:53
  • 업데이트 2020.11.0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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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44호(2020.11.4)
사진1. 가을꽃이 흐드러진 화단
가을꽃이 흐드러진 명촌별서 화단

구식 타령에서 신가요가 생기고 일본의 엔가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의 트로트 또는 한국가요가 생긴 지 어느 듯 1세기, 어느새 우리의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석권 비틀즈를 능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긴 세월 수많은 가객과 가수가 명멸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개성이 또렷하고 스케일이 커 국제무대에 조금도 꿀리지 않는 대형가수가 바로 패티김(본명 김혜자)입니다.

그녀의 무대를 보면 늘씬하고 당당한 체격에 하얀 피부와 빛나는 눈동자에 출렁이는 머릿결이 단번에 무대를 가득 채우고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물론 음폭과 성량이 크고 유장한 강물이 흘러가는 듯 진진한 목소리는 가녀린 목소리나 애절한 호소력의 일반여가수로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화려하고 감미로운 성찬(聖餐)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패티김이 노래 한 곡을 열창하는 무대자체가 미국대통령의 취임식 같은 화려하고 성대함을 극(極)한 대 연회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패티김은 한국가요계의 꽃이며 국민적 스타이며 국격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필자는 자신의 애창곡이기도 한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의 깊고 그윽한 슬픔과 화려한 가사에 대한 아름다움을 살펴보려고 먼저 노래 가사 1절을 올립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 길옥윤 작사, 작곡 노래 패티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을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을 흘러가네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 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어도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 커플의 사랑이 이루어진 어느 가을날에 문득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버려 아직도 겨울이 먼 사랑의 계절 내내 여인이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아직도 그를 못 잊어 열망하는 꿈이 됩니다.

그리고 눈물을 뿌리며 떠난 그를 생각하는 자신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슬픔은 쓸쓸한 가을밤의 별이 되어 이제 그 모든 꿈을 다 버리고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그의 가슴에 안기고 영원히 머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이별을 필수적 전제로 해 이미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멀어도, 또 이루어질 수가 없더라도, 가슴속의 사랑은 영원한 것. 그를 위해 썼던 눈물자국 얼룩진 편지를 다시 눈물로 지우며 긴긴 세월이 흘러갈지라도 자신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잊지 못하고 영원히 그리워하는 꽃으로 남겠다는 이야깁니다. 

좀 깊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을 향기로운 꿈이었나?> 또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을 흘러가네.>의 가사가 퍽 감미로워 가을과 사랑과 눈물과 밤하늘과 흘러간 꿈 그 하나하나가 모두 샛별처럼 밝게 빛나는 별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한 여인이 떠나버린 한 사내를 못 잊어하는 내용, 한국가요의 특징이자 특장이기도 한 눈물로 애소하는 그런 애처롭고 궁상맞은 내용이 아니라 헤어진 사랑마저 가을하늘의 별처럼 멋과 꿈의 운율로 살려내는 가사의 아름다움이 여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노래를 패티김이 아닌 이미자나 심수봉이 부른다면 과연 이런 화려한 가을밤의 파티와 열락이 생각날지, 아마 그냥 애절한 사모의 그리움이 얼룩진 그런 애달픈 노래 한곡에 머물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패티김은 그 성량과 음폭과 한 음절, 음절의 달콤함이나 한 소절의 여울짐이 일상의 가수를 넘어서는 대단한 카리스마와 울림을 가진 가수입니다. 제가 음악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한국가요를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늙은 사내이기는 하지만 감이 한국가요계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세 가수 이미자와 나훈아와 패티김을 평하자면
 
 -이미자: 한국가요계를 장식하는 가장 애련한 눈물 한 방울
 -나훈아: 고주몽의 기세를 가진 빛나는 눈빛을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괴력의 사나이
 -패티김: 한국가요의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꽃이나 축제 같은 절대적 존재 같은 그 무엇입니다.

그렇게 화려한 무대 활동에 못잖은 자유연애와 남성편력을 가진 그녀는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쇠퇴하자 소리가 나지 않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라며 어느 날 표연히 가요계를 떠납니다. 한 때 이 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나 재벌의 사내와 연애를 하거나 헤어지더라도 세인들이 차마 포폄하지 못할 깊은 가슴과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가 그렇게 홀연히 가요계를 떠나는 자체가 그녀의 노래보다 더 황홀하고 진한 인간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적 가수의 안온한 노후를 빕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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