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총장’ 윤석열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대한 단상
‘정치 총장’ 윤석열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대한 단상
  • 조송원 조송원
  • 승인 2020.11.11 22:12
  • 업데이트 2020.11.22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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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몇 십 몇 백 두를 기르는 기업적 축산 이전에 소 거래는 주로 소장수가 맡았다. 시골 농가를 찾아다니며 맞춤한 소가 있으면 흥정을 했다. 흥정에는 으레 ‘밀당’이 따른다. 싼값에 사고 싶고 비싼 값에 팔고 싶다. 인지상정이다. 한데 특이한 경우가 있다. 소의 볼품이 유달리 좋은 건 맞는데, 주인이 너무 엄청난 가격을 제시할 때다. 소값+‘적정한 이윤’을 넘어서는 액수에서 조금도 에누리를 해주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흥정은 파방판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주인은 ‘그나마 소장수 생각해서 양보한 값이네’ 하고 짐짓 점잔을 뺀다. 소장수는 괘씸함을 느낀다. 그러면 이때 써먹는 술수가 있다.

“이 소는 주인장이 부르는 가격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돈이 모자라서 살 수가 없군요.” 하고 주인의 욕심보에 바람을 양껏 불어넣는다. 그러면 소 주인은 그 당장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마는, 이 소는 영원히 팔리지 않는다. 소장수의 복수다.

#2.‘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 『예기』 「曲禮곡례」상). ‘예는 서인(일반서민)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중국 주周 대의 사법 정신이다. 쉬운 말로, 피지배층은 형벌로써 다스리고, 지배층은 예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 곧, 대부 이상의 고위층은 치외법권을 가져서 죄를 지어도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법가들은 귀족이든 서민이든 평범하게 법을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법은 귀족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것에 굽히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법불아귀 승불요곡 :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3.평범한 고대 수렵채집인은 몇 분이면 부싯돌 하나로 창촉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따라해 보면 보통 실패로 끝날 뿐이다. 우리에게는 부싯돌이나 현무암의 겉면이 어떻게 깎이는지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며, 이런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운동기능이 없다. 다시 말해 평범한 수렵채집인은 현대인 후손 대부분에 비해 주변 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 컴퓨터 엔지니어, 보험 중개인, 역사 교사,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알아야 할 지식은 무엇일까? 당신의 아주 좁은 전문영역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할 테지만,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방대한 영역에서는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에 맹목적으로 의존한다. 이들 전문가 역시 그들의 영역에 지식이 한정되어 있다.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기 때문이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야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아침에 접했다. 신문의 헤드라인(headline.표제)만 보고, 상세한 기사를 읽을 새도 없이 떠오른 단상을 요약하면 위의 세 가지이다. 이 단상들에 대해 약간의 도움말을 붙인다. 역순이다.

#3.우리는 단독자 혹은 40~50명의 무리로 살아갈 수 있는 수렵채집인이 아니다. 한 끼 식사에도 한 잔의 커피에도 수많은 타인의 수고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이다. 검사든 검찰총장이든 한 자연인으로서 삶 자체를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 검찰들이 법조문에는 없는, 이런 엄연한 사실을 한 번이라도 성찰한 적이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 검찰’들은 ‘자기 성찰력’이 대단히 부족한 것 같다.

#2.주대의 봉건제에서 치외법권을 가진 대부들이 법을 집행했으므로 형벌이 자의적이고 가혹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일부 ‘정치 검찰’을 보는 듯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쥐고 있고, 기소를 독점하니 자신의 수사가 잘못 됐어도 무리한 기소를 할 뿐, 반성이 없다. 더 나쁜 게 있다. 기소편의주의다. 예쁘게 봐주는 놈, 힘 있는 놈, 제 편인 놈은 죄가 있어도 기소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법가의 노력대로 법의 평등한 적용으로 발전해 왔다.

#1.검찰총장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인 윤석열은 값을 너무 높게 불렀다. 그리고 국회에 나가서도 제시 가격을 한 푼 에누리하지 않고, 한층 더 높게 매겼다. 국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르는 지지자들은 몇 백 개의 화환으로 윤석열을 부추긴다. 이제 그는 호랑이 등을 탄 형국이다. 내릴 수도 없다. 어디로 귀착할까? 안타까운 일만 남았다.

조송원

검찰 신뢰의 잣대가 정치적 중립이다. ‘살아있는 권력’이니 ‘죽은 권력’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검사로서는 치욕적이지 않을까? 죄란 게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인가? ‘정치 총장’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이젠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정치적’이란 악평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자업자득이다.

총장이 ‘정치적 무장’을 하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군중은 ‘여야 차기 대통령 후보 1위’란 화환으로 화답했다. 단풍이 아름다운가? 저녁노을 또한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기 전에 시대의 조짐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끝이 가까워 왔다는 것. 검찰의 쇠락을 총장이 앞서서 이끄니, 모양새가 나쁘진 않다.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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