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우리는 죽어 무얼 남기고 가나?(단짝 친구 김성해의 경우)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우리는 죽어 무얼 남기고 가나?(단짝 친구 김성해의 경우)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1.27 15:14
  • 업데이트 2020.11.2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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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68호(2020.11.28)

근래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뜩이나 말기암으로 고생하는 처지에 부음 하나에 보통 3, 4일은 기분이 다운되어 먹고 자고 글 쓰는 것이 모두 다 짜증이나 부질없다. 몇 달이 안 되거나 한 보름 만에 다시 부음이 들리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어쩌면 저승의 입구에 서서 내 주변을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며 나 또한 떠날 준비를 서두르는 것만 같다.

사람이 죽어 무엇이 되며 죽음으로 완성되는 한 생애에 가치나 의미가 무엇인가는 동서양과 남녀노소가 모두 천착하는 가장 기초적인 의문이며 철학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신은 죽음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따윈 천천히 생각하자, 그건 아직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걸 잘 알면서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인정하고 죽음에 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큰일 칠 일이 생기면 큰일(잔치)치면 된다는 식으로 나중에 할 일로 간단히 미뤄버린다. 간암말기로 모두들 이미 죽은 사람취급을 하는 나 자신도 내가 금방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써 피하는 편이니...
 
그렇지만 주변의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망인의 자녀가 몇이며 결혼과 취직은 했는지 따져 부모의 도리를 다 했는지 또 재산은 좀 이루었는지 아니면 일생 내내 술이나 마시며 취생몽사(醉生夢死) 했는지 나름대로 기준으로 일일이 판별하여 더러 칭송을 하고 더러 한숨을 쉰다. 또 그럴 때마다 현재 자신의 건강상태와 자녀들의 취업상태 등 살아가는 형편을 따져보기도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틀어져 잘 고쳐지지 않는 병통도 많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람이 죽어 무엇을 남기는가를 생각하년 우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즉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遺名)을 떠올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 중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지도자로 민중에게 알려지거나 회자되는 이는 죽어간 모든 사람의 1%, 아니 1%의 1%에도 못미칠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인을 꼽으라 해도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류관순, 김유신, 장보고... 뭐 이렇게 한 10명 꼽고 나면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도 없다. 

사진1 성해씨가 주고간 낚싯대로 칼치 못의 붕어를 세 마리나 잡은 현서(20. 5. 16)
성해씨가 주고간 낚싯대로 칼치 못의 붕어를 세 마리나 잡은 현서.

다행히 왕자로 태어나 왕이 되어 게으르고 호색적인 임금으로 살다간 사람이나 공신의 후예로 음서로 관리가 되어 평생 왕의 눈치만 보며 아부만 일삼다 죽은 양반은 또 무슨 가치가 있고 그 주변에 풀꽃처럼 잠깐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아이 여럿을 나아 키운 왕비나 후공들도 각각 여염의 농사꾼이나 어부와 그들의 아내와 별 다름이 없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명성,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 명성만으로 평가될 성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들자면 주자학이 판을 치던 조선시대 이 나라의 모든 양반과 중인들까지 아들을 낳으면 모조리 서당에 보내 한문을 가르치고 한문을 배우면 당연히 시(詩)를 썼다. 

그렇다면 500년 조선왕조의 소위 선비와 시인이 수억 명은 될 텐데 조선이란 제국은 서림에게 널리 알려질 한시의 달인을 단 열 명도 제시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천지를 방랑하는 김삿갓의 조롱에 가득찬 시가 더 알려지는 판에. 

이는 요즘도 너무 많은 시인이 생산되어 자화자찬, 출판을 하고 문인회를 만들어 감투를 쓰고 갖가지 상(賞)을 만들어 주고받지만 그들이 죽고 장례가 끝난 이후 누군가 단 한 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그의 시를 회고할 사람은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수십 년 시인으로 활동한 나 자신부터가 제대로 씨를 쓴 게 없고 이해인수녀 이후 남에게 감동을 줄 만한 시가 나온 것도 보지 못 한 것 같다. 삶이든 시든 우리가 무얼 남기련다는 것, 내가 내라고 내세우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 차라리 유명인사가 안 되더라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쁜 사람, 오명을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것이다.

각설하고 얼마 전에 죽은 나의 죽마고우(竹馬故友)이자 베스트프렌드인 김성해씨가 병상에 누워 
“친구야,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냥 바람처럼 살다간다.”
고 자책했고 내가
“아니다. 전쟁과 이념대립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역사의 희생자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자식 셋을 훌륭하게 키워낸 것만으로도 잘 살았다. 돌아가신 어미님에게도 효자였고. 자네만한 인생도 흔하지 않으니 가슴을 쫙 펴도 좋다.”
고 설득하니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며 다소 안심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사진2 어릴 적 말년의 우리 아버지와 죽기 전 친구 성해씨의 마지막 취미 화투 패 떼기, 저도 가끔 화투패의 유혹을 느끼지만 애써 생각을 지웁니다. (10. 14)
 말년의 우리 아버지와 죽기 전 친구 성해씨의 마지막 취미였던 화투 패 떼기. 필자도 가끔 화투패의 유혹을 느끼지만 애써 생각을 지웁니다.

장례식을 치른 며칠 뒤 미망인이 같은 모임의 계원으로 친숙한 내 아내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야기의 내용이 참으로 뜻밖이었다. 망인의 방(房)정리를 하는데 자기가 살던 아파트에 고장 난 부분을 다 고치고 불필요한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옷가지도 당장 입을 몇 벌만 남기고 텅 빈 방이라 유족이 정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부인이 아웃도어 커피숍을 운영한다고 늘 바빠 병든 남편을 거의 돌보지도 못 했지만 자기가 할일만은 깨끗이 정리하고 간 것이다. 죽기 전 내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친구의 간암도 전이 된 부분 하나 안 빼고 알뜰히 다 챙겨 갈게.”
“그래 말은 고맙지만 힘들 거야. 나도 금방 따라갈 테니 달모랑 용호랑 미리 만나 훌라판이나 펴고 기다리게.”
하며 내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데 어디서 훅, 억지로 울음을 참는 소리가 났는데 방금 환자의 혈압을 재던 간호사였다.

그 간호사는 친구가 임종해 영안실로 옮기기 직전 망인의 아내에게 망인이 친구와 같이 이별의 대화를 하는 것이 너무 애절해 10년 넘게 일해온 간호사란 직업이 너무나 무겁고 우울하다고 했다. 그녀 역시 참으로 마음이 여린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가 떠나고 난 얼마간은 바람만 조금 불어도, 날씨만 조금 나빠도 물물이 밀려오는 슬픔과 한숨뿐이다. 어떤 날은 친구가 죽기 전에 내게 준 중절모를 쓰고 외출도 해보고 친구가 준 낚싯대로 손녀를 데리고 칼치못에 가서 붕어도 잡았다. 

 그러고 보면 그는 무얼 남기려 한 사람이 아니고 가장 조그맣게 살다간 그의 일생, 행적과 유류품을 모두 지우고 가려고 한 것 같다. 그러므로 비록 위인은 아니지만 무엇하나를 잘 못해 이 땅에 해악을 남긴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 자기 가족과 주변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훌륭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친구야, 그렇게 살고 간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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