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저 끈질긴 망초꽃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저 끈질긴 망초꽃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2.01 17:05
  • 업데이트 2020.12.01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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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72호(2020.12.2)
 사진1 초겨울임에도 의연히 피어있는 개망초꽃
 초겨울임에도 의연히 피어있는 개망초꽃

전회(前回)에 말씀드린 대로 가을꽃 들국화들이 모조리 져버린 쓸쓸한 가을 들판, 눈 닿는 곳 모두가 황갈색 또는 회갈색의 쓸쓸한 바탕에 태화강에서 날아온 갈가마귀 떼가 고래들 이불뜰, 바들뜰 등 기름진 상북평야의 낙곡을 줍느라 떴다 앉기를 반복하는 스산한 풍경 속에서 아직도 너무나 선명한 초록색 잎새와 하얀 꽃잎을 반짝이는 꽃송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올리는 위의 사진은 우리가 5월 말쯤의 늦여름에서 9월 10월에 이르도록 논둑이나 길가, 산기슭에서 흔히 보던 <개망초>꽃입니다. 하얀 꽃송이가 하도 눈이 부셔 밤길을 걷다보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이효석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봉평장터어름에 마치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핀다는 메밀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메밀꽃이 하얀 수성(水性)페인트의 스며드는 빛깔 같다면 개 망초꽃은 어지러운 유성(油性)페인트의 강열한 반짝임인 것입니다.

농촌에서 아이 여럿을 키우면 특별히 건강하고 아픈데 없이 잘 자라는 아이에게는 비교적 신경이나 정성을 덜 쓰듯이 우리의 농부들과 아낙과 나물 뜯는 처녀들은 이른 봄 가장 먼저 새파랗게 잎을 피우고 줄기를 세우는 저 <망초>를 외면하고 흙먼지가 푸석거리는 논둑을 뒤져 쓴냉이, 돌미나리, 달래등을 찾다 해질녘이 되어 나물바구니가 차지 않으면 저 망초꽃잎을 한 움큼 따서 바구니를 채우는데 집에 가면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전연 반기지 않은 것이 너무 잎이 푸르고 진해 식감이 너무 꺼칠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렇게 초록 꽃대에 하얗고 동그랗고 넓은 꽃잎사이로 노란 수술을 넓게 펼쳐 마치 솜씨 좋은 주방장이 한꺼번에 구워낸 맵씨 있는 계란 프라이의 모습을 한 꽃이 <개망초>입니다. 저렇게 꽃의 색상과 형상을 다 갖추고 향기마저 짙은 꽃을 왜 <개망초>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2 자잘한 꽃이 무지개처럼 흐드러진 망초꽃
자잘한 꽃이 무지개처럼 흐드러진 망초꽃

그리고 아래쪽 오히려 키는 <개망초>보다 크면서 꽃송이의 크기는 아주 1/10도 안 되어 그야말로 소금을 뿌린 듯이 작은 꽃이 <망초>꽃입니다. 원래는 저 작은 꽃 망초꽃이 산야에 피었는데 나중에 서양에서 저렇게 꽃송이가 큰 <개망초>가 들어올 수도 있고(정설(定說)임) 또 오랜 세월 진화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돌연변이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여름 밤 시원한 들길을 자주 걷는 마초 할배는 어느 듯 망초꽃의 <망>자(字)를 잊을 망(忘)자로 생각하고(아마 노래로 나온 물망초의 영향인 듯) 망초꽃이나 개망초꽃을 보면 괜히 서러운 남녀의 이별과 기다림을 연상하고 한 때

...망초꽃은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다. 거침없이 진군하여 완강한 나치스를 뚫고 라인강, 볼가강을 지나 툰드라의 눈밭을 넘어 그 음울한 시베리아의 침엽수를 덮쳐 가는...
...
어어, 이제 알겠다. 저 왜의 꽃 하얗게 덮어올 때 왜 사람들이 망초꽃으로 불렀는지. 잊어야지, 잊어야지, 망각의 꽃 망초로...
  
라는 <망초꽃>이란 제목의 시를 쓰기고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40대라 사랑이나 그리움의 감정이 충만했겠지요.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일흔이 되고 몸이 약해지면서 문득 <망초꽃>의미를 새로 하나 떠올렸습니다. 저렇게 초록색 왕성한 생명력과 희고 허벅진 꽃이야 말로 건강과 활력이 아닌가. 그래서 망초꽃은 건강화 활력과 희망을 고대하는 부풀 망(望), 즉 <희망(希望)의 꽃 망초(望草)>라고 말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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