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명촌별서의 겨울 꽃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명촌별서의 겨울 꽃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2.04 14:33
  • 업데이트 2020.12.04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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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75호(2020.12.5)

어제 11월 30일 백병원에서 세 가지 검사와 한 가지 진료를 받느라 전신의 맥이 빠져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늘어지게 자고 겨우 눈을 뜨는데 따뜻한 양지에 앉아 줄곧 침대위의 나를 지켜보던 마초가 어서 나오라고 데크바닥을 긁으며 아우성을 쳐 밖으로 나오니 한낮의 햇볕이 따스한 가운데 12월 초겨울의 모습 몇 장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1. 토종 동백(冬栢)으로 알았던 산당화(山棠花)

3년 전엔가 제가 귀촌함으로서 고향 언양에 마치 생가 같은 느낌의 큰집이 생긴 울산의 아우가 넓은 배 밭을 경영하다 건축업자에게 땅을 팔고 집을 비우는 친구네 집에서 토종 동백꽃과 토종 무화과라는 나름대로 매우 귀한 나무 둘을 우리 집 화단과 울타리에 심어주고 갔습니다.

 사진1. 오롱조롱 붉게 핀 산당화(눈이 밝은 분은 벌을 찾을 수 있음)
오롱조롱 붉게 핀 산당화(눈이 밝은 분은 벌을 찾을 수 있음)

한해쯤 살음을 하고 작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 이 토종 동백꽃이 하도 깜찍하고 예뻐 아내와 제가 참으로 귀히 여겼는데 작년 겨울 고등골의 고금란작가댁으로 정원구경을 가니 마침 진입로 양가 한 20미터를 줄지어 심은 저 동백꽃이 너무나도 선연하고 곱게 피어 
“아, 토종 동백꽃!”
하고 감탄하니 고금란 선생이
“이 선생님, 그건 토종 동백꽃이 아니고 산당화(山棠花)랍니다.”
했습니다. 깜짝 놀란 내가 어딘가 익숙한 “산당화, 산당화”를 되뇌다 문득 박목월의 시 <구강산>에 나오는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당화 두어 송이 가지 버는데
봄눈 녹아내리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가 생각나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니 시의 원문에는 산당화가 아니라 산도화(桃花), 그러니까 돌복숭아꽃, 제가 몹시 좋아하기도 하지만 최무룡의 노래 <외나무다리>에 나오는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피는 복사꽃이나 능금꽃은 과수원이나 농가 울타리가 아닌 깊은 산속에 피는 호젓한 산복숭아와 산 사과에서 피는 꽃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옥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산당화는 남도의 섬마을을 대표하는 동백이 아니라 해당화의 일종, 원래의 바닷가가 아니라 산에서 피는 해당화라는 뜻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이 식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여러 가지 비교검토와 긴 세월이 걸린 것인데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함부로 제 입에 붙은 꽃이나 나무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깟 이름이 무슨 대수입니까. 명촌리의 강풍과 눈보라 속을 지키는 저 처연하게 붉은 산당화, 볕 좋은 날 아내와 같이 양지바른 데크에서 볕을 쬐며 저 꽃을 볼 것이며 저는 습관처럼 <산당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내리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를 읊으며 우리 마초를 흘낏 흘낏 쳐다볼 것입니다.

2. 겨울꽃 감홍시 
우리 명촌별서의 울타리 너머는 100년 가까이 된 소나무와 참나무를 등나무줄기가 휘감아 5월 초만 되면 대밭을 덮어씌운 보랏빛 등꽃이 <꽃사태>를 이룹니다. 그런데 키 큰 소나무에 둘러싸인 북향이라 제 실력으로는 절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2. 딱 한 개가 열어 여직 버티는 대봉감 홍시(紅柿)
딱 한 개가 열어 여직 버티는 대봉감 홍시(紅柿)

그리고 옛날 이집에 살던 도산어른(살았으면 100세쯤)의 몇 대 할아버지가 심은 거대한 참감(곶감용) 나무가 두 그루 위용을 뽐내는데 각각의 감나무가 높이 약 25m 폭 20m의 거목입니다. 옛날 도산어른이 아이들 공부를 시킬 때 저 감나무 하나에서 곶감용 감 한 동(100 개짜리 한 접의 100개, 그러니까 만 개)씩을 따서 언양장에 가져 나가 팔아 아이들 학비를 댈 정도였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무가 너무 높고 감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매우 위험(옛날에 마을마다 가을에 감을 따다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있었음)해 아무도 딸 수가 없어 겨울 한 철을 붉디붉은 거대한 꽃송이로 명촌별서를 장식하다 얼음이 녹는 2월초 얼음이 녹을 때 커다란 눈물방울로 떨어져 붉고 서럽게 땅바닥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역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우리 집의 장마가 길어 딱 하나만 연 대봉감 홍시를 올립니다. 벌써 직박구리가 위쪽을 몇 번 쪼아 상처가 보이는데 얼마나 더 이 뜨락을 지킬지 지켜볼 것입니다.

 사진3. 12월에 비로소 만개한 늦깎이 국화(菊花).
 12월에 비로소 만개한 늦깎이 국화(菊花).

3. 마지막 국화(菊花) 
그 동안 울타리 펜스에 걸린 시화와 김장배추에 가려 가을에 꽃을 피우지 못한 앉은뱅이 국화들이 강풍으로 시화가 철거되고 배추를 뽑아내자 나름대로 한해 내내 가꾼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지나 향기가 없는 드라이플라워가 될 때까지 이 뜨락의 마지막 초화로 피어있을 것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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