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시골 버스정류소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시골 버스정류소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2.08 21:54
  • 업데이트 2020.12.08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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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79호(2020.12.9)
사진1. 언양5일장 옆의 언양읍에서 가장 승객이 많은 버스 정류소(의자바닥에 불이 들어와 사철 따뜻합니다)
언양5일장 옆의 언양읍에서 가장 승객이 많은 버스 정류소(의자바닥에 불이 들어와 사철 따뜻합니다)

5년 전 명촌리에 집을 짓고 귀촌했을 때 가장 먼저 
“아하, 내가 정말 시골사람, 촌로(村老)가 되었구나.”
뼈저리게 느낀 곳이 바로 언양읍의 시내버스정류소였습니다. 그 때는 아직 병이 나기 전이라 아내는 부산에서 외손녀를 보다 주말에만 올라오는 처지라 주중에 무얼 사거나 볼일이 생길 때면 반드시 하루 8번 110분 간격으로 다니는 323번 버스를 타야했습니다. 귀촌한 사람답게 종묘상에서 채소나 화초의 씨앗, 농약 등을 사고 5일장을 한 바퀴 돌아 제가 좋아하는 팥고물 찰떡이나 국수를 사먹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시장 통의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12시 반 버스로 귀가해야 되는데 장날이라 손님이 많아 음식이 늦게 나와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110분을 곱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해서 대부분 주름살이 조글조글하고 허리가 굽은 채 배추, 양파, 갓 등 가을 채소와 농약을 사서 버스를 기다리는 노파들 틈에 끼어 앉았습니다. 그곳은 언양장터의 모퉁이이면서 부산-언양간 12번 시내버스와 고속도로 경유 직행버스가 서는 정거장으로 읍에서 가장 승객이 많은 곳이라 정류소 건물도 두 개에 의자에 앉는 인원만 서른 명 되는 큰 정류소라 군청에서 승객들이 춥지 않게 의자 바닥에 전기를 넣어 엉덩이가 따뜻해 앉으면 금방 잠이 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직 100분도 더 남은 시간을 때우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곳에는 중심인 성내(언양읍)에서 상북, 삼남, 두동, 두서, 삼동면까지 주변의 다섯 면은 물론 배내골에 소호와 동골같은 첩첩산중으로 양산이나 경주 또는 밀양, 심지어 청도로 연결되는 오지에 가는 손님들이 늘 북새통인데 저 같이 가끔 가는 신출내기 들은 사방의 할머니 들이 (늙지도 젊지도 아니고 농사꾼 같지도 않은 이 젊은 영감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
“아저씨는 첨 보는 할아버진데 어느 동네에 사능교?”
또는 
“눈이 밝으면 차리 가는 버스가 몇 분 남았는지 한 번 바주세요.”
하고 말을 붙이다 정 화젯거리가 없으면
“아저씨 그 가지모종은 한 포기에 얼매 씩에 쌌능교?”
자기도 가지모종을 사서 봉지에 담아 들고도 무조건 누군가 말할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고 말을 거는 노파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말을 받아주다간 3,40분 시달리는 건 예사라 아예 눈을 감고 조는 척 하다가 슬며시 눈을 뜨면 그새 날 계속 주시한 것처럼
“아저씨는 몇 번 버스 타는 데요?”
하고 또 말을 걸어옵니다. 일 년 내내 외딴 집에서 혼자 지내다 장에 나와서 비로소 말을 붙일 사람을 만났으니 절대로 그 기회를 놓지지 않으려는 것이었지요.
 

 사진2. 제가 산책길에 숨을 돌리는 사광리 휴게소. 마초의 쉼터 치고는 너무 환상적 분위기 인가요?
제가 산책길에 숨을 돌리는 사광리 휴게소. 마초의 쉼터 치고는 너무 환상적 분위기인가요?

그렇게 100여분을 기다리고 금방 당도할 323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앉은 어금니가 몽땅 빠져 합죽한 할머니가 
“아저씨도 323번 타능교?”
“예.”
“어느 동네로 가는 데요?”
“명촌리.”
“명촌하고도 어느 마실에?”
“예. 사광리 하고도 등말립니다.”
하는 데 하도 반가운 표정이라 
“등말리 2층 박씨네가 우리 누님집입니다.”
“아, 그렁죠?”
하고 버스를 타고 상북면 능산, 향산, 산전, 궁평을 거쳐 관창이란 동네이 이르자 
“할배 잘 가소. 나는 여게 삼더.”
웃어 보이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같은 마을 사람인줄 알고 나름 친절을 다 했던 저는 기가 찼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깨달은 사실 하나가 진정한 시골사람이 되려면 시내버스 정류소에서 한 두어 시간쯤 기다리며 수많은 할머니들의 호기심을 다 채워주느라 신상이 탈탈 털리다 나중에는 자신이 먼저 누구에겐가 말을 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후에 몇 번 또 버스를 놓쳤을 때는 시골할머니를 대하는 것이 훨씬 쉬웠고 어떤 때는 내가 먼저 말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시골 노인이니까요.

두 번째 사진은 명촌리의 버스정류소입니다. 아침 등교시간이나 장날이 아니고는 거의 손님이 없어 하루 평균 10명도 이용을 앉는 이 정류소는 산책에서 돌아오는 저와 마초가 비로소 숨을 돌리며 한참 쉬는 휴게소 같은 곳인데 밤이 되어 불이 들어오면 참 환상적인 모습이 됩니다. 

또 쓸쓸한 가을오후에 마초와 둘이 앉아 쉬지 않고 달려가는 승용차와 농기계를 바라보며 그냥 멍하니 앉아서 우리에게 떠난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무단히 심심하거나 쓸쓸하신 분은 한번쯤 시골버스정류소에서 버스든 행인이듯 좀 체 오지 않는 그 무엇을 기다려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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