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칼럼] 자본은 백신과 다른가?
[강희철 칼럼] 자본은 백신과 다른가?
  • 강희철 강희철
  • 승인 2020.12.09 10:58
  • 업데이트 2020.12.0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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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백신과 자본이 우리의 삶을 구제해 줄 것을 알면서도,
이것을 아주 다른 문제라고 구분해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그 성격상 우리를 ‘불안’으로 이끈다. 더 정확히 우리로 하여금 불행을 미리 예견하게 하는 초능력이 있다. 당신은 앞서 나가는 누군가와 나를 물질적 우위로 비교하는 순간 우울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루의 문제에서 영원한 굴레의 문제로 보는 직감을 스스로 가졌다고 착각하는 순간, 당신이 찾는 답은 자본주의가 펼쳐 놓은 미래에 당도해 있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신’과 신의 이면인 ‘악마’의 표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신(新)-신학(神學)에 빠져든 사람들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물질적 권능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한 고착화가 병폐를 만들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계급적으로 스스로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관계망의 형성에 아주 천착해 왔다. 이번에 보여주는 의사들과 검사들의 관계망만 보더라도 그들의 권력적 위치를 지켜내려는 지독한 그들만의 전쟁이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잘 지켜봐 왔다. 그들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안들임에도 자신들의 ‘안정’을 마치 어지럽게 하는 문제처럼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물질’로 사람을 가늠하거나 그것으로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 그것을 참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안정적인 자신을 만들기 위해 대상을 물질적 ‘탐욕’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이 꿈꾸는 안정적인 삶이란 것은 자본의 힘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렇게 왜곡된 사랑, 즉 자본주의적 삶 안에서 스스로의 안정만 생각하는 자기애적인 사랑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를 조금만 성찰해 보면 검찰도, 의사도, 대통령도 얼마나 자본의 힘을 유연하게 써왔는지 살필 수가 있다. 그러한 삶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역사이며 이를 지속되도록 놔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가졌다면 자신 스스로도 그러한 탐욕스러운 자리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구도 자본이 어떤 계층만이 독식하거나 유연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독점적 장치나 제도가 없어야 하며, 이를 모두의 ‘공공재’처럼 나누어 써야 하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금에서야 특별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한 특별한 고민이 지금 없었다면, 백신도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돈 있는 사람만 먼저 맞는 것이 당연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 먼저 살리는 것이 당연한 논리가 ‘백신’의 접종문제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백신과 자본이 우리의 삶을 구제해 줄 것을 알면서도, 이것을 아주 다른 문제라고 구분해서만 생각한다. ‘자본’을 ‘백신’처럼 탐욕에 의해 누군가만 독점할 수 없도록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만 그렇게 시급하게 고민할 수 있는 성찰을 전 세계가 같이 지속해 왔다면, 자본의 체계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획일화, 균질화되어가는 가속화를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백신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백신을 통해서 자본을 좀더 쉽게 나누어 갖고, 자본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쓸 수 있다는 생각(물론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순수한 생각으로 백신을 만든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이 기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시각에서 발동되고 있는 윤리적 시선이라면 그 윤리적 시선이 왜 ‘자본’에는 작동되어 오지 않았던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강희철
강희철

이제까지 자본주의는 의심과 비판으로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힘을 우리로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새로운 신이 도래한 체계로 보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던 자본주의가 코로나19와 맞딱들인 순간 자본주의적 생산체계가 수축되고, 끊임없던 폭주에 대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단순하게 우리나라의 문제라는 협소한 시각 안에서 ‘정치’적 신념의 문제로 다투는 것을 벗어나서 세계사적 인식으로서의 현재를 전망해야 한다. 전 세계가 ‘자본’ 우위의 체제에서 지금 ‘재난’을 우위에 두게 되면서 우리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자본주의의 탐욕적인 흐름과 독과점적 흐름을 제어하게 되는 흐름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인류가 어떻게 새롭게 살 수 있을 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였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와 백신으로 보는 우리의 현실은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에도 새로운 감각과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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