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모자 부자 마초할배1
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모자 부자 마초할배1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0.12.23 22:26
  • 업데이트 2020.12.23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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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1194호(2020.12.24)

어제 백병원에 검사를 가서 오전에 CT(단층촬영), MRI(가가공명영상)을 찍고 피부과진료를 다녀와 핵의학실에서 본스캔 뼈사진을 찍기 위해 약물을 투입하고 두 시간 반을 기다리는 사이 급히 점심을 마친 아내가 저를 핵의학실 소파에 재우고 급히 부산진시장에 가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제가 노래처럼 말하던 털이 달기로 귀를 덮을 수도 있는 <호랑이감투>모자와 그냥 두터운 모자 하나씩을 사왔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공무원이 사무관이 되거나 경찰이 경무관이 되면 감투를 썼다고 했는데 <감투>란 제가 <호랑이감투>란 모자처럼 그 이름자체로 벼슬이나 고관 또는 장수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5일장에는 언양장에는 벼슬아치나 양반에겐 “아나! 호랑감투다!” 하고 친한 사람이 어떤 모자를 씌우는 시늉을 하면 당시의 언양현감과 관리, 양반과 선비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좁은 시골에서 벼슬을 했거나 자녀나 본인에게 좋은 일이 있으니 그냥 한 턱 내라는 것이었답니다.

또 가난한 농사꾼이나 장돌뱅이들은 농사가 풍년 진 대농가나 호랑이나 곰을 잡은 사냥꾼처럼 돈이 넉넉해진 사람게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아나, 똥바가지다.” 하면 장터 일대 사람들에게 떡과 국수 막걸리를 대접했는데 위에 호랑이 감투를 쓴 양반이나 아래 똥바가지를 쓴 상민이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일생의 명예로 알았다고 합니다. 또 그게 조선말 우리 아버지가 어린시절 언양장터에서도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60년대 초반 병든 아버님을 제가 안고 겨울밤을 셀 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지만 실화라고 합니다. 사극(史劇)을 보면 여진족의 추장은 물론 이성계나 고주몽, 김종서 같은 장수들도 모자앞면에 자잘한 쇳조각이 달린 호랑이 감투를 닮은 군모(軍帽)를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1 아내가 사준 호랑감투를 쓴 모습
아내가 사준 호랑감투를 쓴 모습

저는 어릴 때 제 자신의 얼굴이 좀 못 생겨 모자나 옷이 잘 못 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겨울철이 되면 다른 아이들과 달리 털이 달인 호랑감투를 저에게 사다주었고 저는 그 모자를 쓰고 날마다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래서 동네아줌마들이 저를 에스키모의 아이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저는 본의 아니게 보기보다 눈길이 매서운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제 아내도 저를 절대로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 수더분하고 이야기가 재미있어 결혼을 했는데 보기보다는 이야기나 눈길이 너무 맵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 차남으로 부모의 사랑은 조금 받고 농사일과 나무하기, 아버지 병간호에 너무 혹사당한데다 나이 스무 살에 객지로 나와  야간대학을 휴학하고 황폐한 정신으로 방황하면서 그래도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린 일종의 생존본능 또는 반항정신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무관 구청과장으로 한창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제 보스인 구청장(저는 그가 공천에 실패해 낙선했을 때 끝까지 의리를 지킨 세 사람의 충신중의 하나로 중구청에 귀양까지 갔다가 그가 다음선거에 이기자 복귀한 심복이었는데)에게 갑자기 미움을 받고 동료과장과 국장으로 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했는데 그런 부산시공무원문인 회장이자 시집을 네 권이나 낸 저를 지켜준 사람들은 승진과 전보 인사권이 구청장이 아닌 시장에게 있는 보건소장과 건설, 건축, 위생, 토목직의 과장들이 참 많이 저를 격려하고 조용히 술을 사주고 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에서 꽁꽁 언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사진2 7순이 다 되어 완전 백발이 된 지금 비로소 내게 잘 어울리게 된 중절모와 새 주둥이모양 모자(도리구찌)
칠순이 다 되어 완전 백발이 된 지금 비로소 내게 잘 어울리게 된 중절모와 새 주둥이모양 모자(도리구찌)

단 현직구청장에게 인사권이 있는 행정직들은 단 하나도 나를 챙기지 않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같잖은 시인의 태를 낸다고 흉을 보고 일일이 구청장에게 일러바쳤습니다. 같은 또래 중 가장 진취성이 있어 시청 바닥에 많이 알려지고 승진서열을 빠른 저를 그들을 어떻게든 찍어내려 그리 모질게 굴었지만 저는 이제 (나 평색 한 사람의 시인으로 시집을 네 권이나 낸 데다 부산의 문학지망공우뭔을 대표하는 회장으로 절대로 내 출세를 위해 맘에 없이 아부하고 굽히지 들어갈 수 가 없지.) 하고 버텼는데 제가 가장 의욕적으로 일하던 문화관광과장 시절의 부하 4명이 저와 함께 <독수리5형제> 친목회를 만들어 철저히 저를 감사며 실제 대다수의 직원들은 저를 안타까워하고 맘속으로 지원한다면 다음선거까지 남은 2년을 어떻게든 버티라고 했습니다. 그 모진 세월이 흘런 아부에 맛을 돌인 오만한 구청장은 낙선해서 야인으로 돌아가고 저는 서기관에 승진해 명예로운 명예퇴직을 하고...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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