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홉스 : 리바이어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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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9 15:50
  • 업데이트 2021.01.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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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평화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
서평자 : 박완규(세계일보 논설실장, 경희대학교 정치학 박사)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의 편저 '홉스:리바이어던의 탄생' 표지

“홉스의 일생 중 상당 기간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중략) 공포가 끊임없이 홉스를 따라다녔다. 영국 내전이 발발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10년간 망명길을 떠났다. 망명지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인들과 망명한 영국 성직자들을 두려워했고, 분개한 왕당파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무신론 혐의를 받아 언제 처형될지 알 수 없었다.” (p. 583)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는 토머스 홉스 전기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결, 내전, 공화정 수립, 왕정 복고 등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대를 소심하면서도 오만한 한 지식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1588년 영국에 스페인 무적함대가 쳐들어와 종말의 날을 맞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 때 태어난 홉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 “공포와 쌍둥이”라고 했다. 공포는 그의 일생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홉스의 집안은 중하류층이었고, 아버지는 홉스가 청년기에 접어들 때 가정을 버렸다. 삼촌의 도움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뒤 캐번디시가(家)의 가정교사로 일했다. 당시 가정교사는 비서 역할도 맡아야 했다. 홉스는 그 일을 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유명 인사를 알게 되고, 유력 가문의 아들들과 함께 유럽 대륙을 세 번 여행하면서 프랑스 수학자 마랭 메르센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 친교를 맺게 된다.

홉스는 평생에 걸쳐 정치철학, 논리학, 물리학, 신학, 기하학 등에 관한 수많은 책과 글을 썼다. 마티니치는 그의 사상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시대 상황에 비추어가며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근대인의 경전으로 꼽는다. 당대의 그 어떤 저작보다도 근대인의 정신을 강력하고도 포괄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부가 “(영원불멸의 하느님의 가호 아래) 인간에게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조건에서 정부의 설립이 가능한가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 상태라는 일종의 사고 실험을 한다. 법이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법이 없으므로 각자는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 자연 상태는 모든 사람이 각자 선악을 판단하는 무정부 상태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회 계약을 통해 주권자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 질서 있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하려면 선악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홉스에 따르면 오직 주권자만이 그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영국 역사에서 코먼웰스(Commonwealth)는 올리버 크롬웰이 찰스 1세를 처형한 뒤 수립한 공화정의 통치형태를 말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세속 공동체의 최고 형태인 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홉스는 사회 계약으로 탄생하는 국가를 가상의 인간 리바이어던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코먼웰스라고 불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정부 형태를 민주정, 귀족정, 군주정 세 가지로 나누고, 이 가운데 군주정이 최선의 정부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좋은 것’을 바라고 행동하기 마련인데,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야 할 일을 숙고하는 데 감정이 개입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홉스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왕당파와 의회파 간 내전을 지켜보면서 타락한 정치철학을 내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그는 사상의 힘을 믿었고 자신의 이론으로 유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시민론’에서 “옳고 그름과 선악에 관한 진정한 판단 기준은 각국 정부의 실정법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사악한 정치철학의) 암운이 걷힐 것이며, …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며, 파벌과 파당이 판치는 좁고 어둡고 위험한 뒷골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시대 사람들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왜곡하거나 오해하곤 한다. 그 새로움과 깊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홉스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이성을 계산 능력으로 보는 홉스의 견해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접근법은 인지과학에서도 사용한다. 이처럼 독창적인 견해가 담긴 홉스의 책들은 숱한 논란을 불렀다. 고정 관념이나 기존 권위를 거스르는 그를 사람들은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공격하기에 만만한 상대였다. 그는 책과 논문, 편지 등을 통해 국교회 주교나 지식인들과 논쟁을 벌였다. 무신론자라는 등 악의적인 중상을 방치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는 1679년 9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은 외롭지 않았고, 가난하지도 짧지도 않았다. 마티니치는 다음 구절로 책을 마무리한다. “요컨대 홉스는 긴긴 세월을 전쟁의 공포 속에서 보냈다. 그 나머지 기간은 평화로웠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