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한 살의 동화(童話)」 ... (16)서부극에 빠지다2(나의 스타 리 반 크리프)
이득수 시인의 「일흔한 살의 동화(童話)」 ... (16)서부극에 빠지다2(나의 스타 리 반 크리프)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1.16 07:15
  • 업데이트 2021.01.22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년일기 제1217호(2021.1.16)
사진1 석양의 무법자 포스터
'석양의 무법자'의 리 반 크리프. 

그의 대표작 「석양의 무법자」와 「황야의 분노」 등으로 잘 알려진 리 반 크리프는 아마도 크린트 이스트 우드와 함께 서부극의 양대 축(軸)을 이루는 유명배우일 것입니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냉혹한 총잡이 또는 정의의 보안관의 이미지라면 리 반 크리프는 그 옆얼굴의 매부리코가 아마 여태껏 이 세상에 살다간 모든 사내들 중에 가장 특징적으로 생긴 사람일 것입니다. 보통의 매부리코는 보통 로만로즈, 즉 로마인의 코처럼 커다란 종을 세로로 쪼갠 모습처럼 날카롭고 유려한 곡선을 가지지만 어쩐지 거북하고 만만하지 않은 인상, 특히 여성이 그런 코를 가졌을 경우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인상마저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 반 크리프의 매부리코는 좀 다릅니다. 그가 권총을 들고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적을 응시하는 장면을 한참 바라보면 처음 그렇게 냉엄하던 코의 윤곽이 어쩜 저렇게 아담하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잘 마무리했는지 마치 달인의 경지에 이른 화공이 온몸의 정기를 모아 마지막 화룡첨정의 정점을 찍은 것 같습니다. 또 앞니가 약간 드러날 정도로 자신으로서는 가장 냉혹한 표정으로 권총을 무법자에게 들이대거나 빙빙 돌리고 또 열차강도 같은 떼도둑을 물리치고 라이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 어릴 적 시골마을의 이장이나 달동네 뒷골목의 나서기 좋아하는 반장이 뭔가 작은 일 하나를 끝마치고 ‘거 봐! 내가 내야! 이 바닥엔 나를 덮을 사람이 없어.’ 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분위기가 그 냉엄한 살인의 현장에서도 슬며시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내로라하는 총잡이와 속사 또는 정확히 맞추기의 게임을 해도 절대 지지 않으면서 경쟁이 끝이 나면 마치 옛날 엿장수의 엿판 앞에서 누가 구멍이 더 큰 엿을 선택하느냐 엿의 중동을 분질러 후 분 후에 자기의 구멍이 더 큰 것을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하는 것 같은 참으로 순진하고 천진한 밑그림이 아직도 화약연기가 흐르는 총구 뒤로 겹쳐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장을 하고 나비넥타이를 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동그랗고 노란 보안관의 배지를 단 모습이 어쩐지 촌스럽기만 하기도 하고...

사진2 매부리코가 드러난 리 반 크리프의 사진 한두 장.
리 반 크리프

거기다 1925년, 살았으면 근 100살이 되는 나이의 말년에 찍은 영화, 특히 모자를 벗은 장면을 보면 동그란 앞머리 한 줌을 남기고 양가로 시원하게 빠진 대머리가 머리꼭대기에서 뒤통수까지 반질반질한 빛깔과 맨질맨질한 촉감이 짐짓 냉혹한 눈빛과 매부리코와 잘 어울리는 듯 하면서 책 보따리를 뒤로 둘러 맨 차림에 마른버짐이 가득한 시골아이가 문수가 약간 큰 고무신을 질질 끌며 달리는 것 같은 코믹함을 연출하기도 합니다만 특히 이마 한가운데 아기의 주먹이나 무인도처럼 동그랗게 남은 머리카락이 신선도(神仙圖)에 나오는 차 달이는 동자(童子)와도 너무나 많이 닮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한 세대쯤 뒤에 태평양을 건너 먼 곳에서 태어난 한 동양인의 느낌일 뿐 누가 뭐래도 그는 서부극이란 장르의 영화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아이들의 꿈을 키우던 시절 가장 많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수많은 캐릭터를 가장 충실히 수행한 영화사에 빛나는 스타인 것입니다. 늘 외롭고 힘든 생애를 보내며 틈틈이 그 거친 서부극에 빠진 일탈(逸脫)로 결코 쉽지 않은 생애의 강을 건너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무려 95세의 나이로 희대의 총잡이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는 보도를 보고 저는 그가 좀 젊었을 때 「내 이름은 튜니티」, 「튜니티라 불러다오」 같은 다소 코믹하고 경쾌한 서부극에 한 번 출연했더라면 참으로 재미있는 캐릭터로 색다른 서부극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100세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제 태어난 소임을 다 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불멸의 스타 리 반 크리프에게 삼가 경의(敬意)를 표하며 영면을 빕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