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7)내게 남은 판(板)수는?
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27)내게 남은 판(板)수는?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1.27 06:50
  • 업데이트 2021.01.2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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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일기 1228(2021.1.27)
낙생회의 게임 모습, 사진을 찍느라 마침 필자는 보이지 않음. 그런데 오른 쪽에 앉은 선수의 이름이 박판수씨라 새삼 판수라는 단어가 새롭습니다.
낙생회의 게임 모습, 사진을 찍느라 마침 필자는 보이지 않음. 그런데 오른 쪽에 앉은 선수의 이름이 박판수씨라 새삼 판수라는 단어가 새롭습니다.

눈이 큰 사람은 겁이 많고 눈이 작은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다는데 가장 표준적인 몽골리안의 찢어진 눈을 가진 저는 유독 호승(好勝)심이 강해 장기, 바둑, 고스톱, 씨름과 롯데의 야구경기등 이 세상 모든 승부에 관심이 많고 매번 끼어드는 전천후 투사(鬪士)에 가깝습니다.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사내라면 가장 많은 승부를 겨룬 게임은 아마 고스톱판일 것입니다. 한 자리에 서너 시간씩 하루에 근 100판 이상씩 치는 고스톱을 저는 이웃에 사는 국민학교동창이자 절친 두 사람과 매주 주말마다 치고 저녁회식이 끝난 자리에서 직장동료들과, 또 지인들의 상청에 문상을 가서도 끝없이 게임에 끼어들었고 간혹 글로벌게임이라는 카드놀이(훌라와 포커)도 즐기고 심지어 해운대를 지나칠 땐 극동호텔에서 슬러트머신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사내들이 참 재미있는 점은 게임 중일 때는 한판 한판의 승부, 무얼 쳐 몇 점을 내고 고(go)를 할 것인가 아닐까, 피박이나 독박을 쓰면 어떡하나 고민하다 판이 끝나면 전체적으로 누가 얼마를 따고 잃어 오늘 자신은 결론적으로 돈을 조금이라도 딴 1승(勝)자인지 조금이라도 잃은 1패(敗)자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친구 간에 고스톱만은 내가 자네보다 승률이 훨씬 높다고 뽐내면 그걸 또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코로나19과 불경기가 장기화된 지금의 세태는 사내들이 가볍게 한 판을 겨루며 스트레스를 푸는 그 <판>이 자꾸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젊은 사람들이 컴퓨터게임이나 오락에 빠져 고전적인 겨루기, 바둑이나 장기, 화투 따위에 관심을 잃고 오히려 로또나 스포츠토토 같은 더 위험한 게임에 빠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거기에다 전에는 거의 모든 식당이 저녁 장사 술손님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처럼 고스톱을 치게 하고 친절하게 잔돈을 바꿔주던 풍습이 점점 사라져 주말에 시골의 아주 한적한 가든이 아니고는 판을 벌일 처지가 안 됩니다. 또 사람들이 살기가 바빠서 그런지 시장골목에 예사로 벌어지던 바둑이나 장기판도 잘 보기 힘들고 부산광역시 장기, 바둑의 메카라고 할 용두산공원도 이제 장기로 소일하는 노인보다도 무료급식에 목을 맨 사람이 더 많고요.

사진은 며칠 전 병원에 검진을 갔다가 한 10년 전부터 운수회사 사무실에서 지금 70대 초반의 사내 다섯이 매주1회씩 게임을 하던 <낙생회>회 회원들이 고스톱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제가 컨디션이 나빠 한 4,5개월 안 갔더니 신불산산신령 얼굴 잊어버린다고 아우성이라 모처럼 들린다고 전화연락을 했더니 금방 세 사람이 모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초로의 신사들은 게임을 마치면 자기가 딴 돈을 스스로 거의 다 내어놓고 잃은 사람도 본전 가까이 다시 가져가지만 게임 중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열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게임의 멤버가 한둘 유고가 생겨 자꾸 새로운 회원을 보강하지만 언젠가는 셋만 남아 광(光)도 팔 수 없고 마지막엔 둘이 남아 침침한 눈으로 <맞고>를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다섯 사람의 모임이라면 제일 오래 사는 것 보다는 아직 고스톱판에서 광을 팔 수 있게 앞에서 두 번째 죽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다 나오곤 합니다.

 사진2. 죽기 한 보름 전, 명촌별서를 방문해서 마지막 판을 벌이던 모습. 왼쪽이 필자, 가운데 조경제, 오른 쪽이 망인 김성해.
 죽기 한 보름 전, 명촌별서를 방문해서 마지막 판을 벌이던 모습. 왼쪽이 필자, 가운데 조경제, 오른 쪽이 망인 김성해.

그런데 말입니다. 마치 술이나 담배처럼 가장 가깝고 즐겁던 이 <판>들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저의 고스톱멤버들만 해도 직장시절의 <독수리5형제>는 제가 아픈 이후 일 년에 한두 번 모이기가 힘들고 그마저 식당을 잘 못 잡으면 판을 벌이지 못 하는 경우도 있고 등산친구의 모임 <산우회>는 몇 십 년 같이 지낸 친구들이 제가 딱 한번 갔을 때 매우 반갑다기보다는 제 느낌에 (아직도 안 죽었구나) 하는 매우 낯 설은 표정이어서 저도 너무나 황당해 다시 걸음을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많은 판수를 싸운 고추친구 성해씨와 경제씨의 판은 이제 성해씨가 죽어 <맞고> 밖에 할 수 없으니 자연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나오는 판수, 즉 판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건 바로 우리 어릴 적 둘레판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던 밥상, 즉 판(아직도 언양지방엔 그렇게 말함)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아직 판이 남았다는 말은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먹듯 살이 있다는 말이고 이제 판수가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종착점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이 글을 쓰면서도 불과 8개월 전에 내 곁을 떠난 친구 성해씨, 죽기 얼마 전 명촌별서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찾아와서 기어이 고스톱판을 벌이고 떠난 친구가 몹시도 그립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의 임종을 하루쯤 앞둔 날 제가 문병을 갔을 때 그는 나의 병까지 모두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며 애써 웃어 보이더니 그곳에도 화투판이 있고 먼저 간 동창친구 달모와 용호가 미리 새 판(담요)를 준비하고 기다릴까 물어보아, 정말 그렇다고, 안심하라고, 언젠가 나도 찾아가서 넷이 붙으면 광을 많이 팔아주겠다고 약속하니 웃으며 이튿날 눈을 감았습니다. 삶의 모든 판수가 거의 고갈된 노후, 오늘 같이 겨울비 오는 날은 죽은 친구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理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