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이야기(23) - 응답하라 행당동 1970
울 엄마 이야기(23) - 응답하라 행당동 1970
  • 소락 소락
  • 승인 2021.02.05 06:40
  • 업데이트 2021.02.06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햇볕이 잘 드는 집 마당에서 막내 안나
햇볕이 잘 드는 집 마당에서 막내 안나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쌍문동 골목에 살던 다섯 가족의 일상 이야기다. 그 이전에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인기를 끈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온갖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그야말로 순수한 명품 드라마였다. 그러면서 시청률이 높았다. 지상파 방송이 아닌 케이블 TV방송이었음에도 20%에 육박하는 시청율을 기록했다. 우리 엄마에게는 <응답하라 1970>이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무대인 쌍문동에 살던 보라, 덕선, 정봉, 정팔, 선우, 택, 도룡뇽 이름이 생생하다.

참! 이 집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저 사진에서 왼쪽 편에 있었던 두 개의 방은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었고, 오른 쪽 편에 있었던 한 개의 방은 세를 주던 집이었다. 그 때 그 작은 한 방에서 살던 네 식구 가족이 하영이네였다. 두 아들을 데리고 살던 부부였다. 큰 아들 이름이 하영이다.

나중에 이름을 운선으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작은 아들 이름이 운복이다. 나중에 이사 가서 운영이라는 막내딸을 하나 더 두었다. 여하튼 지금도 그 애들 이름이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우리 가족은 하영이네와 친하게 지냈다. 이름이 혹시 화영이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 지붕 아래서 두 가족이 살았다. 저 작은 마루를 함께 쓰며 정을 나누고 살았던 것 같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사는 엄마는 지금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하영이 엄마와 가끔 덕담을 주고 받으며 연락을 하고 산다. 7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이다. 하영이네도 정이 많고 덕을 베푸는 좋은 가족이었다. 또한 엄마도 정이 많고 덕을 베풀고 살았다. 서로 그렇지 못했다면 아직까지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70>의 장소인 행당동 128번지에 살던 동네 친구들이거나 나보다 한 두 살 위아래 애들 이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철, 현수, 똘똘이, 용문, 경진, 영남, 진호, 한성, 보원이… 이제 그곳은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 터무니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 점이 늘 아쉽기도 하다. 나 어릴 적 가장 추억이 깃든 공간이었다. 비록 장소는 사라졌지만…

엄마가 찍어준 3남매 사진
엄마가 찍어준 3남매 사진

울 엄마는 이 동네에서 30대 초반의 마음씨 좋은 아낙이었다. 늘 맑고 밝게 웃는 새댁의 모습으로 동네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 <응답하라 1988>의 동네 아줌마들처럼 엄마도 충분히 <응답하라 1970>의 동네 아줌마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없다. 사진을 찍는 것이 귀했을 당시에 가족 인물사진 말고 다른 사진을 찍을 틈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그래도 3남매 사진이 다행이 있다. 어떻게 찍었는지는 몰라도 바로 우리 옆집 옥상 위에서 찍은 사진이 정겹다.

특히 엄마는 우리 3남매 사진을 귀하게 기록하게 해주셨다. 당시에 멋진 풍광의 배경 사진이 있는 리어카를 몰고 다니던 사진사가 동네를 지나갈 때 엄마는 그를 불러 이렇게 사진을 찍도록 했을 것이다. 엄마도 같이 찍었으면 좋으련만 삼남매만 찍도록 하였다. 엄마가 낳은 3남매가 이렇게 사진 찍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엄마가 우리 앞에서 늘 맑고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