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 돌 - (1) 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미학자 이성희의 미술 이야기 : 돌 - (1) 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 이성희 이성희
  • 승인 2021.02.25 17:35
  • 업데이트 2021.02.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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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임이 「여와연석도」
임이 - 「여와연석도」

하늘에 구멍이 나 물이 쏟아져 내려서 온 세상이 범람했다. 대모신 여와는 대황산 무계애에서 높이 열두 장, 사방 스물네 장 되는 3만6천5백 한 개의 돌을 정련하여 하늘의 구멍을 메웠는데 한 개가 남았다. 여와는 그것을 청경봉 밑에 버려두었다. 이미 영기가 통한 돌은 자기만이 버려진 것을 원망하며 슬퍼하였다. 이 한 개의 신령한 돌이 인간세계 가보옥으로 환생하여 펼쳐지는 대하드라마가 청대 조설근이 쓴 저 유명한 소설 『홍루몽』이다.

청대 후기의 화가 임이(任頤; 1840-1895)는 하늘을 메우는 여와의 신화를 그림으로 남겼다. 「여와연석도(女媧煉石圖)」이다. 여와가 하늘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돌을 정련하는 장면이다. 정련[煉]은 불을 사용하여 광석을 정제하고 단련하는 일이다. 바위 속에 붉은 불기운이 비친다. 그리고 상단의 정제된 돌은 옥이 되어 간다. 이 과정은 연금술을 연상시킨다. 『홍루몽』의 가보옥은 태어날 때 입에 옥구슬을 물고 태어난다. 청경봉에 버려진 돌이었던 가보옥의 일생은 어쩌면 여와가 기획한 연금술의 과정이 아닐까. 임이가 그린 여와의 형상은 두 개의 매우 상징적인 이미지를 은밀하게 품고 있다. 돌돌 말려있는 형상은 똬리를 튼 뱀이다. 실제로 여와는 인간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진 여신이다. 임이는 소용돌이치는 치마의 끝에 뱀의 꼬리를 살짝 그렸다. 또 하나는 여와의 웃 주름이 모나고 강경하여 험준한 바위를 연상시킨다. 그녀 자신이 지금 돌이 되고 있는 듯하다. 여와가 돌을 정련하는 것은 실상 자신을 정련하여 세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돌을 정련한다는 것은 돌 속에 숨어 있는 똬리 튼 뱀, 소용돌이를 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뱀 똬리-소용돌이는 원초적인 생명의 운동 양식이다. 연금술의 불길과 몽상이 돌이라는 무정형의 침묵 속에 숨은 생명의 기운을 깨운다. 그리하여 돌은 체온과 형상을 얻고, 신성의 제단이 되기도 하고, 수억 년의 지각 운동의 춤이 되고, 기념비 속에 마모를 견디는 역사가 되고, 산정에 피어오르는 구름이 되고, 시가 되고, 매미 울음소리가 되고, 그리고 다시 끝이 없는 침묵이 될 것이다.

돌을 깨우기 위해서는 먼저 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돌의 심장 소리와 똬리를 튼 소용돌이의 파동을 들어야 한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대리석 덩어리를 어루만지며 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하느님이 깜짝 놀랐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하느님 이야기』 「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느님은 허리를 더욱 구부렸어요. 창조를 하는 그 사나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리고 사나이의 어깨너머로 돌에 귀를 기울이는 손들이 보였어요. 순간 하느님은 깜짝 놀랐어요. ‘아니 그렇다면 돌 속에도 영혼이 들어 있단 말인가? 이 사나이는 왜 돌에 귀를 기울이는 거지?’ 그때 두 손이 깨어나더니 마치 무덤을 파헤치듯이 돌을 마구 파헤쳤어요. 돌 안에서 죽어가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꺼질 듯 말 듯 들려왔어요. ‘미켈란젤로!’ 하느님이 두려움에 소리쳤어요. ‘돌 속에 누가 있느냐?’ 미켈란젤로는 귀를 기울였어요. 그의 두 손이 바르르 떨었어요. 이어 그는 목소리를 줄여 대답했어요. ‘당신이죠, 나의 하느님이요, 하느님 아니면 누구겠어요?’ 그 순간 하느님은 자신이 돌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왠지 불안하고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하늘이 몽땅 돌인 셈이지요. 하느님은 돌 한중간에 갇혀서 자신을 해방시켜 줄 미켈란젤로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어요.

[그림2] 미켈란젤로 「노예」
미켈란젤로 - 「노예」

돌에 귀를 기울이며 미켈란젤로는 형상을 얻고 생명이 되고자 하는 대리석 속의 파동을 듣는다. 차가운 대리석 덩어리에서 문득 맥박이 뛰고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감지하는 미켈란젤로 손의 섬세한 촉감을 상상해 보라. 그의 「노예」 상은 힘겹게, 그러나 강인하게 돌 속에서 나오려는 형상의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이것은 미완성이 아니라 돌 속에 갇힌 형상이 드러나는 생생한 과정이다. 얼굴을 얻기 위해 대리석 덩어리를 벗겨내려는 듯이 잔뜩 힘을 준 팔의 근육과 아직 돌 속에 있는 발을 뽑아내려는 다리의 움직임을 보라. 원초적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근육을 가진 돌을 우리는 만나고 있다. 돌이 생명을 얻는 순간이다.

범신론적 신비주의자 릴케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돌 속에 꿈틀대는 것은 하느님이다. 하늘이 몽땅 돌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돌 속에 신성한 무언가가 들어 있다. 형상이 되려는 우주의 힘이 들어 있다. 귀를 기울이는 자만이 그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열정과 허무의 절정에서 삶을 탕진시켰던 모딜리아니는 조각을 하기 위해 밤에 건설 자재 적재장에서 자주 돌을 훔치곤 했다. 몽마르트르의 창백한 별들이 무거운 돌을 들고 비틀거리며 걷는 그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졌으리라. 폐병과 알코올로 소진된 가난한 화가의 등을 말이다. 그는 돌덩어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한 번 예술의 열정과 창조 힘을 느끼고자 했던 것일까?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92),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92),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양현의 관리 오감이 시냇물 남쪽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우연히 배를 타고 물가를 지나다가 오색의 부석(浮石)을 보았다. 오감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침대머리에 두었다. 밤이 되면 여자로 변하였다가 날이 밝아오면 다시 돌이 되었다. 중국의 옛 소설 『술이기(述異記)』(위진남북조 시대 조충지 지음)에 나오는 기이한 돌 이야기다. 돌이라는 가장 물질적인 무정물에서 생명의 유정물을 발견하는 역설적 상상력은 특이해 보이지만 의외로 동서양에 널리 퍼져 있다. 오래국 화과산 꼭대기의 돌이 알을 낳고 그 알이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돌원숭이로 변한다. 지상과 천상을 쑥밭으로 만들 말썽꾸러기 손오공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세상 여자들에게 실망한 피그말리온이 이상형의 여인을 조각하고는 그 조각상에 반해 버린다. 비너스 여신의 도움으로 조각상 갈라테아는 피가 흐르고 부드러운 살을 가진 진짜 여인이 된다. 그리하여 조각가와 조각상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옛날 옛적 이야기.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는 “눈같이 흰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했다.”라고 하였는데, 인간 성인의 크기만한 상아가 어디 있겠는가? 상아 표면처럼 매끈하게 다듬은 대리석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장 레옹 제롬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에서 대리석이 여인 갈라테아로 변하는 극적인 순간을 관능적이고도 아름답게 포착한다. 조각가의 애정에 반응한 조각상은 허리를 기울여 그의 뜨거운 입술을 맞이하고 있다. 그녀가 무릎을 굽히지 못하고 자세가 어색한 것은, 그녀의 상반신은 부드러운 몸의 갈라테아가 되어가고 있는 반면 하반신은 아직 단단한 흰 대리석이기 때문이다. 오른쪽에 나타난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장전하고 있다. 장 레옹 제롬은 사랑의 열정으로 인해 돌이 인간으로 변하는 황홀한 순간을 그렸다.

그러나 그림의 디테일에는 종종 악마가 숨어 있다. 디테일은 그림의 서사를 돕기 위해서 기획되고 배치된다. 예컨대 갈라테아 발치에 있는 물고기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 여신을 상징한다. 등등. 그러나 디테일은 서사를 비틀고 전복시키기도 한다. 의식에 대해 역으로 움직이는 심층의식의 그늘이 일렁이는 것이다. 이종의 존재들이 사랑으로 결합하는 순간에 축하보다는 경악하고 있는 듯한 오른쪽의 두 가면을 보라. 그리고 그 밑에 메두사의 얼굴이 박힌 방패를 세워 놓은 것은 도대체 무슨 수작인가?

갈라테아가 돌에서 인간이 되었다면 메두사는 역으로 인간을 돌로 만드는 존재이다. 조각가의 애정 공세에 반응하는 조각상의 두 손을 유심히 보라. 갈라테아와 메두사의 대극을 실제로 보여준다. 오른손이 피그말리온에 반응하여 그를 포옹하는 갈라테아라면 조각가의 손을 거부하는 왼손은 오히려 피그말리온을 돌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려는 메두사가 아닐까. 이 스냅 이후, 그녀 하반신의 흰 대리석 빛깔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점점 상반신으로 타고 올라 덧없는 열정에 불타 키스를 하는 피그말리온까지 하얗게 변하게 할지 누가 알겠는가. 돌의 이미지와 상상력 속을 떠도는 우리의 여행도 이 기이한 역의 운동 속을 방황하게 될 것만 같다. 돌 하나를 얻고자 하는 역의 방황은 전봉건의 시처럼 어둠에서 어둠으로의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 없는
서울서
돌 하나를 얻자면
새벽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떠 일어나 떠나야 한다.


하나 없는
서울에
돌 하나를 얻어 돌아오면
모두들 눈감고 잠든 밤
다시 깜깜한 어둠 속이다.

―전봉건 「돌 13」 전문

이성희 시인
이성희 시인

◇미학자 이성희는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부산대(철학과 졸업)에서 노자 연구로 석사, 장자 연구로 박사 학위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등
▷미학·미술 서적  『무의 미학』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등
▷현재 인문고전마을 「시루」에서 시민 대상 장자와 미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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