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55)산 제사(祭祀)를 모시다
이득수 시인의 「일흔 한 살의 동화(童話)」 (55)산 제사(祭祀)를 모시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2.24 02:50
  • 업데이트 2021.02.24 2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년일기 제1256호(2021.2.24)
 사진1. 아내가 만들어준 모듬 산적세트 
  아내가 만들어준 모듬 산적세트 

우리 또래의 사내들에겐 명절이 되면 두 가지 뚜렷한 성향이 나타나는데 첫째 대가족들이 다 모여 제사(차례)를 지내고 제사음식으로 참석자들이 한데 모여 음복을 하고 식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전통파에 비해

그까짓 케케묵은 제사나 조상의 굴레에서 훨훨 벗어나 부부간 혹은 친구 간에 조를 짜서 국내외관광이나 골프를 치면서 전통을 고수한다 치고 아직도 궁상스럽게 사는 이웃들을 미개인처럼 처다 보는 사람들도 있지요. 부모자식의 관계를 오로지 현금봉투를 얼마나 주느냐 또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안 시키고 제사 따위는 신경을 안 써 조상들을 쫄쫄 굶기면서 그래도 제 자녀들은 공부도 잘 하고 취직도 잘 하기를 원하는 순 강도(强盜)같은 사람들, 그러나 불행히도 대도시의 아파트가 올라갈수록 우리주변엔 그런 강도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명절만 되면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동사무소에 오래 근무해본 제가 명절대목에 재래시장을 가보면 한 달 연료비나 전기료가 다 부담이 되는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그래도 죽은 영감(또는 남편의 조상)을 굶기지 않으려고 그 없는 돈에 몇 가지의 생선과 과일과 떡과 술 한 병 등 기본 제수를 갖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도 보고 또 달동네 판잣집의 다둥이네 집도 역시 제사용 찌짐을 굽는 냄새를 온 동네에 풍기기도 해 저 같은 시골출신은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아파트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을 때 대형아파트의 경로당엔 심심찮게 제사음식이 답지하는데 핵가족화가 되어 두 노인만 사는 세대에서 제수음식을 이웃들과 나누기 위함인데 기독교인을 비롯한 일부는 제사음식이 귀신이 붙은 부정한 음식이라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거나 또 산돼지하고 발을 맞추고 자라난 졸부들이 제사음식 따위를 먹으면 아직 촌놈신세를 못 면한 것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고급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에 열중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한 우리세대의 시골출신들 중에서는 이 세상에 재일 맛난 음식이 제사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평소에도 늘 반은 굶다시피 하던 아이들이 제삿날만은 기름이 자르르한 살밥에 쇠고기국(탕)에 재래식 솥에 넣고 찐 조기와 민어 같은 생선과 도라지와 고치미 같은 귀한 나물을 양껏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곰곰 제 좋아하는 제사음식을 회상해보니
 
1. 솥에서 쪄낸 커타란 조기와 민어 대구 같은 생선(특히 저는 그 중에서 뼈나 잔 가시가 없고 카스텔라보다 더 부드러우며 살이 깊은 전갱이의 고기를 촉감이 <폭닥그리하다>고  좋아했고
2. 담치와 군소. 소라와 돔배기(상어고기)로 만든 산적을 보면 금방 침이 흐를 정도로 사족을 쓰지 못 했고 
3. 제사음식이 거의 끝난 이튿날 쯤에 제 형님이나 누가 젊은이가 큰 대야헤 고사리, 고치미, 도라지, 포랑나물, 미역 같은 여러가지 나물을 몽땅 집어 넣고 밥도 양문이째로 쏟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비면서 

“그대로 뭔가 이빨에 부딪히는 것도 좀 있어야지.”
하며 군소나 소라 같은 산적거리 한두 점을 넣으면 정신없이 나물밥을 우겨넣다 한숨을 돌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서 제사음식을 좋아하고 아니고는 첫째 빈부의 여부를 떠나 자신의 부모들이 얼마나 조상을 정성들여 섬겨 제사음식에 익숙하나가 관건이지만 일반 음식보다 제사음식에 더 열광하는 사람은 어릴 적 제사 때라야 비로소 생선과 쌀밥을 넉넉히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온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유독 유교문화와 제사문화가 성한 안동, 영주 같은 유림의 고장에서는 그 제사음식을 평범한 생활속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취미, 마나아라고 해야 하나 뭐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의 가장위에 제사음식을 서슴없이 올려놓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안동 헛 제사밥>이라는 좀 특별한 메뉴가 탄생하기도 하고요.

산 제사를 받아먹고 얼굴이 훤해진 마초할배.
산 제사를 받아먹고 얼굴이 훤해진 마초할배.

요즘 식욕이 전만 못 하고 체충도 조금씩 빠지는 저로서는 어떻게 동물성단백질을 많이 먹어내느냐가 연명(延命)의 중요한 관건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제 등심도 안심도 질겨서 몇 점 못 먹는 제겐 마지막 카드 설날 제사음식중의 산적, 돔배기와 군소, 담치와 소라가 자장 맛 좋고도 무난한 메뉴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작년까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산적(蒜炙)을 도무지 안 먹는다고 막내자영의 제사음식 산적을 누님이 몽땅 보내주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오갈 수도 없고...

고민 끝에 아침상에 마주 앉은 아내에게  
“여보, 요즘 식욕도 없는데 산 제사 좀 지내면 될까?”
“산적이라?”
“나 죽고나서 산해진미를 아무리 차린들 뭐 하나? 살아있을 때 한 끼라도 잘 먹어야지.”
“하긴”
하더니 어제 언양읍 5일장에 가서 돔배기와 소라, 군소, 문어다리 등 산적거리를 사와 찬통하나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모처럼 혀에 닿는 돔배기스테이크(상어산적)의 폭닥그리한 맛, 역시 아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 소설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