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당 달리 '사기열전' 강독 - (5) 평원군·우경·맹상군열전
인문학당 달리 '사기열전' 강독 - (5) 평원군·우경·맹상군열전
  • 달리 달리
  • 승인 2021.03.10 08:50
  • 업데이트 2021.03.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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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교재 : 사마천의 『사기열전』(서해클래식)
참석 : 김도훈 김시형 김영주 김정애 박선정 원동욱 이영희 장예주 정미리 진희권 최영춘 최중석

인저리타임은 「인문학당 달리(대표 이행봉, 소장 박선정)」의 인문학 나눔 운동에 동참하면서 독자께 인문학의 향기를 전하고자 '달리의 고전강독'을 소개합니다. 달리의 고전강독(수요강독)은 지난해 4월 22일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진행했고, 새해부터 『한비자』 강독이 진행 중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랍니다. 

달리의 『사기열전』 강독 첫날출처 : 인저리타임(http://www.injurytime.kr)
달리의 『사기열전』 강독 모습(내부 현판과 합성)

◇ 평원군

평원군(平原君)은 조나라 공자 중 하나로, 전국시대 후기 조나라 혜문왕(惠文王) 효성왕(孝成王) 때 활약한 인물로, 빈객을 좋아하여 수천의 빈객들이 그의 밑으로 모여 들었으며, 세 차례나 재상에 올랐다.

진나라가 조나라의 도읍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구원병을 얻고자 평원군을 사자로 보내 초나라와 합종하려 하였다. 이에 평원군은 빈객 20명을 데리고 갔는데 그 중 모수(毛邃)라는 자도 함께 있었다. 자기가 스스로를 천거한다는 고사성어 '모수자천(毛遂自薦)'의 주인공이 바로 모수이다.

평원군은 초나라 왕을 만나 합종을 제안하며 설득하였지만 해뜰 무렵 시작한 논의는 한낮이 되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에 모수는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초나라 왕에게 다가가 “대왕과 저 사이는 열 발자국도 안 되니 대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의 주인이 앞에 계신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상나라 탕왕은 사방 칠십 리 땅을 가지고도 천하의 왕이 되었는데 이는 군사가 많아서가 아니라 형세를 이용하여 위엄을 떨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 리나 되고 군사는 백만이나 되어 패왕에 오를 정도로 강대합니다. 지금의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것이지 조나라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어찌 저의 주인 앞에서 저를 꾸짖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초나라 왕은 합종을 받아들였다.

◇ 우경

우경(虞卿)은 전국시대 후기 이름난 외교모략가다.

조나라는 진나라와 장평에서 만나 힘을 겨루고 있을 당시, 조나라 효성왕은 누창(樓昌)과 우경을 불러 대책을 상의하였다.

이때 누창은 신하를 보내 진나라에게 강화를 요청하라고 건의한 반면, 우경은 진나라의 목적은 조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조나라와 강화하지 않을 것이므로, 귀한 보물과 함께 사신을 초나라와 위나라로 보내 연합을 도모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효성왕은 누창의 말대로 진나라에 강화를 요청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맹상군 동상

◇ 맹상군

맹상군(孟嘗君)은 이름은 전문(田文)이다. 전국 사공자(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가운데 한 명으로, 제나라 종실의 일원으로 현사들을 좋아하여 문하에 3천여 명의 빈객들을 거느렸다.

그 중에는 천하의 무법자와 협객도 있었는데, 이들 빈객들은 실력자에게 붙어 기생하다가 일이 생기면 주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맹상군의 빈객 중 풍환(馮驩)이라는 자가 있었다. 맹상군이 가지고 있던 봉읍만으로는 빈객들을 먹여살리기 어려워, 맹상군은 설 땅 백성에게 돈놀이를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았다.

이에 맹상군은 풍환을 보내 채권 추심 업무를 요청하였는데, 풍환은 주연을 베풀어 자력이 있는 자들과는 갚을 날을 정하고, 자력이 없는 자에게는 차용증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 소식을 듣고 맹상군은 언짢아하였으나, 풍환은 “자력이 없는 자들은 어차피 변제를 받지 못할 것인데도 채무 독촉을 심하게 하면 당신의 명서에 오점만 남기게 될 뿐이고, 쓸데없는 차용증서를 태워버리면 당신은 설 땅의 백성들에게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하였다.

이후 맹상군이 제나라 재상에서 파면되었을 때 빈객들이 모두 그를 떠났다가, 그가 다시 재상에 오르니 풍환이 다시 빈객들을 불러들이자, 맹상군은 이에 섭섭한 마음에 시도지교(市道之交)를 이야기 하였으나, 이에 풍환은 “부귀하면 따르는 자가 많고, 비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사물의 이치이다”라고 말하자, 이에 맹상군은 탄복하고 예전처럼 빈객들을 대해주었다고 한다.

<정리 = 박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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