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8 : 봄날은 간다 - 수련, 잠에서 깨다
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8 : 봄날은 간다 - 수련, 잠에서 깨다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5.03 07:00
  • 업데이트 2021.05.04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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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핀 수련

청소년수련관에 아쿠아를 다니는 아내가 <보림선원>이란 암자의 비구니승을 사귀어 같이 어울리더니 성당에 갔다 오던 길에 만난 스님이 심으라고 준 수련을 들고 왔습니다.

잔뜩 기분이 상기된 아내를 말릴 수가 없이 철물점에 따라가 엄청 큰 수조를 사다 손수레로 논흙을 두 번이나 싣고 와 흙과 물을 채우고 사다 심었더니 놀랍게도 며칠 만에 꽃봉오리가 올라왔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의 도서실에 가는 길옆에 제법 큰 인공연못이 있고 거기 가끔 눈부시게 희고 단정한 수련이 피던 기억이 났습니다. 목덜미가 희고 콧날이 상큼하지만 눈빛이 너무 단호해 말도 붙여보지 못하는 소녀처럼 그냥 흘낏거리면서 지나치던 너무나 청초한 수련 말입니다.

그러면서 수련이 물에서 자라는 수(水)련이 아니고 왜 잠잔다는 수련(睡蓮)인지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집에서 키우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짐작했습니다.

밤 꽉 다문 봉오리(왼쪽)과 아침에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는 수련 
낮에 잠에서 깬 듯 반쯤 핀 수련(왼쪽)과 활짝 핀 수련

사진의 순서대로 맨 위로부터 밤에 꽉 다문 꽃봉오리, 아침에 입을 여는 모습, 반개한 모습, 활짝 핀 모습입니다. 특히 세 번째 반개한 모습은 명절이나 기제사 때 솜씨 좋은 우리 사촌형님이 삶은 달걀에 조심스레 칼집을 넣어 도라지꽃을 새긴 모습과 똑 같습니다.

언제보아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수련, 이태백이 말한 물에서 건진 달처럼 황홀한 모습을 볼 때마다 역시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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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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