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⑤ 파워코드에 대한 상상적 입장
손현숙 시인이 여는 '詩의 아고라'⑤ 파워코드에 대한 상상적 입장
  • 손현숙 손현숙
  • 승인 2021.05.31 06:50
  • 업데이트 2021.06.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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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코드에 대한 상상적 입장
                                           손현숙

 

단순한 소리가 다른 세상의 문을 연다 나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며 그런 소리가 멀리 수평선도 가볍게 넘을 수 있겠다, 혼자 중얼거린다 상상으로는 갈 수 있지만 발로는 갈 수 없는 곳,

한번 다녀가세요, 뭉툭한 빗소리처럼 젖어서 건네는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 애잔함에 발목 걸려 넘어질까봐 매몰차게 끊어버렸던 용기는 나였을까, 나이고 싶었을까, 잊을 만하면 피고 또 잊힐 만하면 눈에 띄었던 집구석의 아네모네처럼

잘 있었나요? 삐칠지도 모르니 넌? 한바탕 퍼부었던 그런 날 모퉁이를 돌면 허리 굽은 가로등은 그림자를 길쭉하게 키우고 서있었다 경계가 지워지고 있었다 기타 치는 친구는 파워풀하진 않지만 뷰티풀한 파워코드는 단조도 장조도 아닌, 경계의 경지라고 화음을 넣는다

나는 그것을 도무지 끊을 수 없는 인연과 약물 속에서 인화지 위로 떠오르던 단 하나의 얼굴이라 믿었다 파워코드는 슬픔을 소리로 불러내듯 단순하면서도 뷰티풀 한 연주, 결국 내 저 깊은 곳 무덤 한 채 지어서 오래, 오래 살아있을 요량이었나 오늘, 거짓말처럼 그의 부음을 받았다

- 현대시. 2021. 4월호.

<시작메모>

음악을 모르는 나에게 친구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타의 화음을 이루는 코드는 3화음 코드에서 출발을 한단다. 그런데 2화음 코드라는 것이 있다는데. 이 코드는 장조도 단조도 아닌 코드가 되는데, 완전한 화음만 들린단다. 무색 무취의 울림. 그런데 이 코드는 현란하진 않지만 애잔하단다. 파워풀 하진 않지만 뷰티플하다는데. 마치 경계를 지우는 듯한 깊은 울림이 만져진다. 이 단순 멜로디가 하드락 음악에 주로 쓰인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 파워코드의 기타연주는 뭐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워서 멀게도 또 가깝게도 느껴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이별이 이별이 아니게 하는 한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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