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게 준 선물 (7) - "선생님은 나의 세 번째 어머니”
인생이 내게 준 선물 (7) - "선생님은 나의 세 번째 어머니”
  • 이미선 이미선
  • 승인 2021.06.03 13:57
  • 업데이트 2021.06.10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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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단일기 / 부산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선생님은 나의 세 번째 어머니예요.”

누리와 나는 전생에 부모 자식, 혹은 연인이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상하리만큼 서로가 읽었던 책이나 보았던 영화가 비슷해 우린 급공감하면서 친구처럼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누리는 부산에 오면 하루 정도는 나와 시간을 보냈는데,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누리 어머니는 “참 희한하네. 그 선생님은 가정도 없다니?”라며 살짝 질투도 하셨단다. 이런 누리를 만나지 못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넘어간다. 공부한다고 영국에 가더니 공부만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찐~하게 연애도 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거기서 찾은 듯하다.

중3 시절 만난 누리는 유난히 맑고 예쁜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수업에 참여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생각도 말도 참 이쁘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였고 살포시 웃는 얼굴이 해맑아 『아이처럼 행복하라』 책 표지 사진을 보면 누리가 떠오른다.

누리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 사진
누리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 사진

예고를 거쳐 미대로 진학해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며 생활 속에서 소소한 활동과 실천을 이어갔다. 무엇을 하든 사람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게 하는 누리의 성장이 참 기특하고 좋았다. 그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에서 내려온 누리는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학 이유는 취업 준비나 어학연수였기에 그러겠거니 했는데 누리의 휴학 이유는 달랐다. 햇살 눈부신 가을날 할머니 모시고 우리나라 아름다운 곳곳을 다니며 스케치 여행을 하고 싶어서 휴학을 한단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암에 걸려서 오래 못 사실 것 같은데 그 할머니랑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휴학을 하겠다는 것이다. 맑은 눈동자로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찾아온 누리는 한결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 “선생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세요? 난 얼마 전 할머니 기일에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사랑한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평생 하나님을 믿고 성경처럼 살아온 할머니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운지,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여보, 나는 혼자 먼 길을 가는 게 두려워요. 내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돌아보니 나도 죄를 많이 지어서 못 갈 거 같아.’ 하시더래요. 그 말씀을 전하면서 할아버지는, ‘근데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할머니가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찾아가면 되니까. 지옥이라 하더라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가면 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 참 아름답죠?” 이런 가정 속에서 성장했으니 누리가 무엇을 하고 살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누리가 선물해준 책, 현경의 '미래에서 온 편지' 표지

또 어느 날 찾아온 누리가 이번에는 책을 한 권 들고 왔다. 현경의 ‘미래에서 온 편지’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 선물로 드리고 싶다면서 건네주었다. 저자인 현경이 조카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편지 형식으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들려주는 방식의 책이었다. 현경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된 이야기를 조카에게 털어놓으면서,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세 분이 계시는데 바로, 자신을 낳아주신 분, 정성으로 길러주신 분, 영성을 깨우쳐 주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리는 자신에게도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고 말했다.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어머니, 그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눈뜨게 해준 미국 화가 루이스 부르조아, 그리고 자신의 한결같은 정신적 지주인 내가 자신에게는 어머니와 같다고 말했다.

그때는 “진짜? 이야, 행복하네.”라며 그냥 웃고 넘겼는데, 생각할수록 감동이고 영광이다. 교사가 아니었다면 쉽게 누릴 수 없는 일이다. 이 땅에 교사로 산다는 것,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 우리 누리가 오늘따라 참 보고 싶다.

누리가 생각나는 찻집에서

◇ 이미선 소장 : ▷중등교사 22년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중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현 부산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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