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67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접시꽃 당신
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67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접시꽃 당신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6.11 07:00
  • 업데이트 2021.06.12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촌별서 화단을 돌보는 아내

40년도 더 전에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처녀하나가 가난한 우리 누님들이 단간셋방에 신혼의 횃대보를 걸었던 것처럼 연산동의 조그만 셋방에서 행복의 꿈을 묻었습니다.

그 애동색시 제 아내가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지금은 그림 같은 전원주택의 담장에 핀 접시꽃처럼 삶도 외양도 모두 풍성한 할미가 되었습니다. 또 1남1녀의 알맞은 자식과 며느리와 사위에 손녀까지 넷을 거느린 명촌리 골티 골짝의 지모신(地母神),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데미테르가 된 것도 같습니다.

그 손길이 닿아서인지 우리 집에는 감자, 호박, 양파, 가지, 오이, 토마토에 옥수수까지 모두 통통하고 풍성하답니다. 물론 저 접시꽃도 그렇고요.

그러나 우리 어릴 적 바지저고리 두 벌 되면 죽는다는 말처럼 밥 걱정 놓고 전원생활을 즐기자 되자 제가 병이 들어 아내는 기도와 눈물로 날을 새다 대상포진이 걸리기도 해 저 고운 접시꽃을 볼 때마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이 어떻게 아내를 떠나보냈을까 생각나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나 애써 마음을 다잡고 내년에도 저 접시꽃을 같이 보려고 버틸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또 내후년의 접시꽃을 기다릴 것입니다.

(※횃대보는 닭이 올라가 잠자는 홰에서 유래된 말로 옛날의 처녀들이 시집을 가면 벽의 눈높이쯤에 횃대를 하나 걸고 거기에 부부의 옷을 걸고 위에 암수 한 쌍의 닭과 병아리 떼가 수놓아진 보를 덮어 가리던 옷걸이 겸 옷장을 말합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