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70) - 물결을 헤치고 달을 찾고, 거울 찾아 먼지를 덧입히는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70) - 물결을 헤치고 달을 찾고, 거울 찾아 먼지를 덧입히는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 허섭 허섭
  • 승인 2021.06.20 00:00
  • 업데이트 2021.06.21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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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0 - 물결을 헤치고 달을 찾고, 거울 찾아 먼지를 덧입히는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마음이 비우면 본성이 나타나니 
마음을 쉬지 않고 본성 보기를 구하는 것은 
마치 물결을 헤치고 달을 찾음과 같다.

뜻이 깨끗하면 마음이 맑아지니 
뜻을 밝게 하지 않고 마음 밝기를 구하는 것은 
마치 거울을 찾아서 먼지를 더함과 같다.

  • 性(성) : 본성.
  • 息心(식심) : 마음을 쉬다. *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것’ 을 넘어 ‘마음의 작용과 활동 그 자체를 그만두는 것’ 을 말한다. 休와 息은 ‘그만두다’ 의 뜻이다.
  • 見性(견성) : 본성을 봄, 본성을 깨닫는 것.
  • 撥波覓月(발파멱월) : 물결을 헤치고 달을 찾음. ‘이미 자기에게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찾음’ 을 비유한 것임.  撥은 ‘벌리다, 헤치다’.  覓은 ‘찾다’.
  • 不了(불료) : 밝히지 않다. 명료(明瞭)하게 하지 않다.  了는 ‘마치다, 깨닫다, 밝다’.
  • 索鏡增塵(색경증진) : 거울을 찾으면서도 먼지를 더함. 거울의 맑고 밝은 빛을 구하면서도 오히려 먼지를 앉히는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행위를 비유한 것임.  索은 ‘찾다, 구하다, 취하다’ 의 뜻.
170 전기(田琦 조선 1825~1854)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24.5+41.5 국립중앙박물관 다른느낌
전기(田琦, 조선, 1825~1854) -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 『순자(荀子)』에 성악편(性惡篇)에

凡性者(범성자) 天之就也(천지취야). 不可學(불가학) 不可事(불가사). 禮義者聖人之所生也(예의자성인지소생야). 人之所學而能(인지소학이능지) 所事而成者也(소사이성자야). 不可學(불가학) 不可事(불가사) 而在人者(이재인자) 謂之性(위지성). 可學而能(가학이능) 可事而成之在人者(가학이성지재인자) 謂之偽(위지위). 是性偽之分也(시성위지분야).

- 무릇 본성이란 타고난 대로를 말하는 것이니,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요,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의는 성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니 그래서 배우면 되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배우지 않고 하지 않아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본성이라 하고, 배워야 되고 노력해야 되는 것을 인위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성(性)과 위(僞)의 구별인 것이다.

 

170 전기(田琦 조선 1825~1854)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29.4+33.2 국립중앙박물관
전기(田琦, 조선, 1825~1854) -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 이른바 불교의 선(禪)이란

선의 요지를 가장 잘 설명한 게송(偈頌)이다

敎外別傳 (교외별전)  부처님 말씀 외에 별도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以心傳心 (이심전심)  이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네
直指人心 (직지인심)  곧장 사람의 마음을 찾아들어
見性成佛 (견성성불)  그 바탕을 본다면 이가 곧 부처라네

서산대사께서 선가귀감에서 밝히신 말씀

이른바 선(禪)과 교(敎)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서산대사께서『선가귀감(禪家龜鑑)』에 밝히신 말씀을 최고의 명쾌한 해답으로 친다.

선(禪)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말로써 말 없음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교(敎)라면
말 없음으로 말 없음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선(禪)이다.

( 그런데 어찌 말로써 말 없음에 이를 수 있겠는가 ! )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세 곳이란 세존께서 다자탑(多子塔)에서 설법하실 때 앉아 계시던 자리의 절반을 나누어 가섭(迦葉)에게 함께 앉게 하심이 첫째요, 세존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실 때 가섭이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어 응답했음이 둘째요, 세존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돌아가실 때 임종의 시기를 놓쳐서 늦게 도착한 가섭에게 관 속의 두 발을 밖으로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것이 가섭존자가 세존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를 따로 마음으로 전해 받은 선(禪)의 등불이다.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말씀하신 것이란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 다섯 가지 가르침[五敎]인데, 첫째는 인천교(人天敎), 둘째는 소승교(小乘敎), 셋째는 대승교(大乘敎), 넷째는 돈교(頓敎), 다섯째는 원교(圓敎)이다. 이른바 아난다존자가 교학(敎學)의 바다를 흐르게 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선문(禪門)과 교문(敎門)의 근원은 석가세존이시고, 선문과 교문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다존자이다.

말이 없는 무언(無言)으로써 말 없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수행법이 선문(禪門)이고, 대장경의 말로써 말 없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공부 방법이 교문(敎門)이다. 또한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선법(禪法)이요, 말로써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교법(敎法)이다. 진리의 법은 한 맛이나, 견해나 수행 방법을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說者는 爲敎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敎是佛語니라. 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敎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序言細語가 皆是敎外別傳禪旨니라. 吾有一言하니 絶慮忘緣하고 兀然無事坐하니 春來草自靑이로다.
敎門은 惟傳一心法하고 禪門은 惟傳見性法하니라.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어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고 !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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