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6-예술문학세계] 미술이야기 - 꽃과 그림 / 정인성
[시민시대6-예술문학세계] 미술이야기 - 꽃과 그림 / 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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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24 17:40
  • 업데이트 2021.06.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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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이 편안하다. 불어오는 바람이 햇볕에 탄 목덜미를 시원하게 해준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함안 악양둑방으로 꽃길 산책을 나섰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더니 요즘 어디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있으면 그곳으로 곧잘 달려간다. 그림 그리는 친구들과의 스케치를 코로나19로 아내와 함께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기대와 달리 실망감이 앞섰다. 둑을 중심으로 가득 채워졌던 꽃들은 둑 아래 강변 들판으로 내려가 대단지로 광범위하게 심겨 있었다. 왠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맛이 아름다움을 반감시키는 듯했다.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둑 위로 난 길 주변으로 색색의 꽃들이 초록과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빨간 양귀비와 청보라 빛 수레국화 그리고 하얀 안개꽃, 노란색 금계국꽃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색은 서로 대비를 이룰 때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보인다. 이를 보색대비라고 하는데 초록 풀 속에 핀 꽃들이 보색 관계로 인해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보인 것이었다. 그런데 누런 흙이 꽃밭 사이로 듬성듬성 보여 색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아 그때의 느낌을 주지 못했다. 또한, 평지 위에 조성된 꽃밭은 시점이 낮아 광활하게 펼쳐진 꽃밭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이리라. 언덕 위에서 보았던 느낌과 아래 평지에서 바라보는 미적 감흥은 확연히 달라 실망스러웠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꽃무리의 풍경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화가의 눈에 비치는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한 나태주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려면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꽃의 생김새를 알 수가 있다. 어떤 사물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한다면 그 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 꽃을 그리고자 한다면 꽃잎은 몇 장인지 줄기와 잎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꽃의 색상은 무엇인지 그 관찰이 중요한 것이다.

필자도 이곳의 꽃 그림을 그리면서 수레국화의 색을 만들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많은 색의 조합을 해본 적이 있었다. 결국, 같은 색은 만들지 못하고 비슷한 색을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화가의 작업은 대단히 다원적이다. 현장의 느낌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형태나 색상이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자유로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는 결코 정답이 없다.

필자의 그림 그리기는 먼저 현장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는 일이다. 날씨와 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자료 사진도 찍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가슴에서 불현듯 일어서는 미적 영감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리고 스케치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선다. 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외롭게 홀로 선 수양버들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그늘에 색색의 나무의자가 몇 개 놓여 있다.

오월 한낮의 햇살을 피해 나무의자에 앉아 화구를 펴고 꽃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본다. 평화롭고 편안한 안락함이 꽃과 함께 여유롭게 다가왔다. 나는 그 여유를 즐기며 바람이 흔드는 꽃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꽃밭 사이로 양산을 쓴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꽃밭은 바람에 흩날리는 드레스 자락과 쓰고 있는 모자가 양귀비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모네의 양귀비 꽃밭 그림이다.

양귀비꽃은 많은 화가의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중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의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1874년 파리에서 열리게 되는 제1회 인상파 전 전시회에서 인상, 일출과 함께 출품된 작품으로 야외에서 직접 보이는 대로 그렸으며 스케치나 데생을 무시하고 인물보다 풍경에 중점을 두어 마치 미완성된 작품인 듯한 느낌을 주는 붓 터치로 인상주의 작품의 모든 특징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흐 - 양귀비 들판

또한, 화려하고 강렬한 원색의 색채와 빠르고 거친 붓 터치 그리고 물감의 질감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빈센트 반 고흐도 녹색 들판과 빨간 양귀비가 강하게 대비 되는 풍경화 <양귀비 들판Poppy Field >과 정물화 <아이리스, 데이지와 양귀비가 있는 화병> 등 양귀비꽃이 주제가 되는 작품을 남겼다. 키스The Kiss 그림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도 인물화에서 표현되었던 독특하고 특이한 디자인적인 감각으로 그린 풍경화 <양귀비 들판Poppy Field> 그림에서 양귀비 꽃밭의 아름다움을 회화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많은 화가는 여러 가지 종류의 꽃을 자신의 그림 주제로 그렸다. 구스타프 크림트의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이나 고흐의 <해바라기><아이리스>, 모네의 <장미 정원> <수련>, 르누아르의 <화병 속의 장미> 등이 그것이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꽃과 함께 살았던 화가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꽃 그림을 그렸다. 노년에 마련한 꼴레뜨 저택을 그의 아내 알린은 정원 가득하게 꽃을 키웠고 그 꽃으로 집안을 장식했다. 장미를 비롯해 온갖 꽃과 나무들에 둘러싸인 르누아르는 정원에 있던 아틀리에에서 꽃이라는 소재가 주는 행복감을 표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는 꽃 그림야말로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더없이 좋은 소재였나 보다.

구스타프 클림트 - 양귀비 들판
구스타프 클림트 - 양귀비 들판

또한,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그린 꽃 그림은 신화나 전설 속 여신들과 함께 그림의 한 부분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주로 장미꽃이 많다. 장미꽃은 그림 속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바람에 흩날리는 장미꽃을 그려 넣어 고대 신화의 내용을 비너스의 탄생에서 은유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장미꽃이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장미꽃은 비너스의 탄생을 상징하고 있다.

장미는 아름다운 형태와 향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가들은 장미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고 또 그리고 있나 보다. 계절마다 장소마다 꽃이 없는 곳이 없다. 해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 소식을 시작으로 산수유, 목련화, 벚꽃, 복사꽃 등이 피었다 진다. 그 꽃을 따라가 보면 꽃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르노아르 - 장미
르노아르 - 장미

그러나 꽃이 피어있는 시간은 정말 짧다. 화가는 그 짧은 시간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영원히 잡아둔다. 그래서 꽃을 많이 그리나 보다. 요즘도 전시장에 가보면 꽃 그림이 많다. 꽃을 표현하는 방법과 재료도 가지각색이다. 꽃을 그리다 보면 그리는 화가의 마음도 즐겁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바라보는 관람객의 마음을 꽃으로 물들인다. 그림 속에서 피어난 꽃은 가슴 깊은 곳에서 향기롭게 뿌리를 내린다.

<부산환경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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