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93) - 은혜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망은 얕아도 꼭 갚으려 하는 것이 야멸찬 세상 인심의 실상이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193) - 은혜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망은 얕아도 꼭 갚으려 하는 것이 야멸찬 세상 인심의 실상이다
  • 허섭 허섭
  • 승인 2021.07.12 06:10
  • 업데이트 2021.07.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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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謙齋) 정선(鄭敾 조선 1676~1759)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93 - 은혜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망은 얕아도 꼭 갚으려 하는 것이 야멸찬 세상 인심의 실상이다.

(세상 인심이란)
남의 은혜를 입음에 있어서는 비록 깊어도 갚지 않으나
원망은 얕아도 꼭 갚으며

남의 악함을 들으면 비록 분명치 않아도 의심하지 않고
착함은 뚜렷해도 또한 의심한다.

이야말로 각박(刻薄)함의 극단이요 야박(野薄)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니
마땅히 진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 受人之恩(수인지은) : 남의 은혜를 입음.
  • 聞人之惡(문인지악) : 남의 악행을 들음.
  • 隱(은) / 顯(현) : 분명하지 않음. / 드러남, 분명함.
  • 刻之極̖(각지극) : 각박(刻薄)함의 극단.
  • 薄之尤(박지우) : 경박(輕薄)함의 극심함.  尤는 ‘가장 심함’.
  • 切(절) : 간절(懇切)히, 절실(切實)하게, 진실로.
193 관무량수경변(觀無量壽經變)돈황 막고굴 112호 남벽(南壁)
관무량수경변(觀無量壽經變) - 돈황 막고굴 112호 남벽(南壁)

◈ 『오등회원(五燈會元)』에

知恩者少(지은자소) 負恩者多(부은자다)
-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잊는 자는 많다.

* 오등회원(五燈會元)
전체 20권. 남송(南宋)의 대천 보제(大川普濟) 엮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광등록(廣燈錄)·속등록(續燈錄)·연등회요(聯燈會要)·보등록(普燈錄)의 오등(五燈)을 다시 엮어서 한 책으로 편찬한 선종통사(禪宗通史).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서천이십팔조(西天二十八祖)와 동토육조(東土六祖)를 거쳐 청원 행사(靑原行思) 문하 16세, 남악 회양(南嶽懷讓) 문하 17세까지 서술하여 오가(五家), 곧 위앙종(潙仰宗)·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운문종(雲門宗)·법안종(法眼宗)의 계보를 자세히 밝힌 저술.
                                                                    - 『시공 불교사전』 에서

◈ 『논어(論語)』 헌문편(憲文篇)에

以直報怨(이직보원) 以德報德(이덕보덕)
- 곧음으로써 원수를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는다.

◈『노자(老子)』제63장에

報怨以德(보원이덕)
-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다.

※ 위 두 문장을 통해 우리는 노자(老子)와 공자(孔子)의 입장 차이를 알 수 있다. 

공자는 원한(원수) 갚기를 곧음(直)으로 하라 했음에 비해, 노자는 원한(원수)마저도 덕으로 갚으라고 한다. 노자의 이 말씀을 누구한테 원수진 것이 있는데 그것을 오히려 덕으로 갚아라는 뜻으로 읽는다면 아마 제대로 새긴 것이 아닐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한 예수의 말씀도 하나의 방편으로 들어야지 곧이곧대로 들어서 먼저 누구를 원수로 삼고 나서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로 새기면 예수의 근본 가르침하고는 너무 거리가 먼 것이 될 것이다. 

대체 성인(聖人)이 누구를 원수로 여긴다는 말인가?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인데 누가 누구를 원수로 여길 수 있겠는가. 상대적 차별을 넘어선 절대적 긍휼(矜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최고 경지인 동체자비(同體慈悲)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원수를 부모처럼 공경하라’ 고 말씀하셨다. 노자와 예수와 부처는 현실적인 실재를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기에 종교적 영성을 갖고 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장차 자신을 팔아넘길 가롯 유다더러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신 마태복음 26장 24절의 말씀을 두고 흔히들 ‘인간에 대한 최대의 모욕’ 이라고 해석했으나, 나는 성경을 처음 읽으며 이 말씀을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긍휼(矜恤)의 언사’ 로 받아들였다.)

이에 비해 공자의 ‘곧음(直, 정의, justice)’ 은 옳고 그름이라는 시비(是非)의 차원을 떠난 것이 결코 아니다. 공자는 곧음으로 굽은 것을 바르게 하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굽은 나무를 곧은 나무에 대고 총총 묶어서 그 굽은 것을 바르게 하듯이 원수를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징벌(懲罰)을 가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도덕 윤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현실적인 실천을 중요시하는 입장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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