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10) 흡입제
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10) 흡입제
  • 최은상 최은상
  • 승인 2021.07.27 13:05
  • 업데이트 2021.07.28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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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제(inhalants)는 주로 가정용품에서 얻게 되는 중독성 물질이다. 아세톤, 부탄, 프로판, 톨루엔 등 우리에게 낯익은 것만 나열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들은 상온에서 휘발성의 용매나 가스 상태로 존재한다.

휘발성 용매는 본드 성분인 톨루엔, 매니큐어 제거제 성분의 아세톤과 같은 물질이다. 휘발성 용매의 남용은 1959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젊은이들이 손바닥에 본드를 뿌려 손을 컵 모양으로 만들어 흡입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에어로졸은 밀폐된 용기에 액체나 미세한 분말로 된 물질을 가스의 압력으로 뿜어내어 사용되는 것이다. 분무용 살충제나 페인트, 헤어 스프레이, 연료용 가스인 부탄이나 프로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산화질소(nitrous oxide) 성분이 들어있는 마취제나 휘핑크림, 그리고 식품첨가물로 사용하는 아질산염(sodium nitrite)도 흡입을 통해 남용되는 물질들이다.

흡입제의 종류만큼 그 증상도 안도감, 흥분, 환각, 졸음, 언어장애, 행동장애, 과대망상과 같이 매우 다양하다. 알코올에 취해 일어나는 반응과 비슷하다. 걸을 때 균형을 잘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운동실조(ataxia)가 대표적인 증상이다. 흡입제에 의한 증상은 대체로 흡입 후 5분 이내에 빨리 나타나며 사용량이 많을수록 부작용의 정도는 커진다.

사용자가 들이마신 흡입제는 폐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혈류를 따라 뇌에 도달한다. 이들은 지용성 물질이기 때문에 혈관을 감싸고 있는 뇌혈관장벽을 쉽게 통과하여 뇌세포인 뉴런에 작용한다.

대뇌에서 맨 바깥쪽에 주름이 진 곳을 피질(cortex)이라고 한다. 피질은 인체가 받아들이는 다양한 자극의 실체를 인식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뇌의 영역이다. 그 중에서 운동피질(motor cortex)은 감각의 실체에 대하여 반응을 일으키도록 명령을 내리는 곳이다. 그 반응 중의 하나가 보행을 포함한 인체의 움직임(movement)이다.

보행은 대뇌피질에서 척수로 이어지는 신경회로(대뇌피질-척수 신경회로, corticospinal projection neurons)에 의해 조절된다. 이 신경회로는 기저핵 회로(basal ganglia circuitry)나 대뇌-폰-소뇌를 연결하는 신경회로(cerebropontocerebellar circuitry)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조절된다. 이들 신경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보행장애가 나타난다.

보행을 조절하는 뉴런은 흥분성으로서 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오는 또 다른 흥분성 뉴런뿐만 아니라 억제성 가바 뉴런과도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구조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대뇌피질-척수 신경회로를 구성하는 뉴런의 가지돌기(dendrite)에는 글루타메이트나 가바 뉴런이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과 결합하는 수용체가 존재한다. 보행은 이 뉴런이 흥분성과 억제성 신경전달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절되어 나타나는 반응이다.

흡입제는 대뇌피질-척수 신경회로를 구성하는 뉴런의 가바 수용체(GABAA)를 자극하여 염소 이온(Cl-)이 뉴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촉진한다. 그 결과 흥분성 뉴런의 전기적인 값(막전위, membrane potential)은 낮아져서 대뇌 운동피질에서 척수로 전달되는 신경신호는 약화된다. NMDA 수용체는 Ca2+, Na+ 이온의 통로이다. 흡입제는 NMDA 수용체의 역할을 억제하여 흥분성 뉴런의 막전위를 낮춤으로서 운동피질에서 척수로 전달되는 신경신호를 약화시킨다.

이와 같이 흡입제는 약물학적으로 가바 수용체의 촉진제(agonist), NMDA 수용체의 억제제(antagonist)로 작용하여 대뇌의 운동피질에서 척수로 전달되는 신경신호를 약화시키는 물질이다. 그 결과 흡입제는 척수로부터 보행에 필요한 인체의 골격근으로 가는 신경신호를 약화시켜 운동실조와 같은 행동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흡입제는 사용자에게 황홀감과 같은 유포리아를 주기 때문에 보상감에 의한 의존성이 적지 않다. 동물실험을 통해 흡입제는 중뇌의 배쪽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의 뉴런을 자극하여 보상 영역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측좌핵(nucleus accumbens), 선조체(caudate and putamen)에서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 알려졌다. 흡입제 역시 중독성 마약과 같이 보상감을 일으키는 뇌의 영역에 작용하여 의존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흡입제의 의존성은 사용자가 이들 물질을 취하고자하는 강한 욕구를 멈출 수 없게 한다. 더욱이 중독자는 내성 때문에 낮아진 유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양의 흡입제를 취하게 된다. 흡입제 사용을 중단하여 일어나는 금단증상의 존재와 작용 기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잘 알려진 것이 없다.

흡입제의 남용으로 인한 건강 문제는 간과할 것이 못된다. 흡입제는 뇌의 손상뿐만 아니라 폐, 간, 신장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톨루엔 같은 물질을 흡입하는 사람들은 대뇌의 백질에 변성을 일으켜(white matter abnormalities) 인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그림).

정상인의 뇌(왼쪽)와 톨루엔 중독에 의해 손상된 뇌(오른쪽), 출처: NIDA
정상인의 뇌(왼쪽)와 톨루엔 중독에 의해 손상된 뇌(오른쪽), 출처: NIDA

사용자가 매우 높은 농도의 흡입제에 노출되면 의식을 잃고 심지어 혼수상태(coma)에 빠질 수 있다. 흔치 않지만 흡입제의 사용은 심장 부정맥(cardiac arrhythmia)을 일으켜 사용자를 죽음에 이르게(sudden sniffing death syndrome)한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흡입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흡입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몰랐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라틴 아메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노상에서 접착제를 흡입하는 것이 세상에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시멘트나 구두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접착제, 페인트 등이 들어있는 종이 봉지를 얼굴에 싸서 가스를 흡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빈곤한 국가에서 아이들이 접착제를 흡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그림). 감당하기 힘든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흡입제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흡입제 사용에 대한 통계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흡입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기가 중학교 교육과정인 7~9학년(11~14세) 때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알코올, 마리화나나 필로폰과 같은 강성 마약에 노출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흡입제가 마약을 시작하는 입문 물질(gate drug)이 되는 셈이다.

성인들은 흡입제의 남용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풍선에 들어있는 아산화질소를 들이마시면 곧 바로 술에 취한 기분이 드는 해피 벌룬이 클럽에서 사용되고 있다. 웃음가스로 불리는 이 풍선이 온라인을 통해 저렴하게 판매가 되면서 대학가 축제에서 기승을 부린 적이 있다. 해피 벌룬은 동남아 여행지의 클럽에서 대수롭지 않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의 편중으로 인한 저소득층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고립은 마약의 사용을 부추긴다. 역사적으로 경제공황이 있을 때 마다 마약의 사용은 만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약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환각을 경험해주기도 하고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부여해 준다. 어쩌면 그들에게 값이 싸고 구입하기 쉬운 흡입제는 최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병(COVID-19)으로 인한 경제적인 고통과 소외가 흡입제의 남용으로 이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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