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6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상사화, 그리움의 끝은 어디인가?
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16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상사화, 그리움의 끝은 어디인가?
  • 이득수 이득수
  • 승인 2021.07.30 07:00
  • 업데이트 2021.07.3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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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알록달록한 봄이 지나고 초록빛 싱그러운 여름이 오도록 아무 기척도 없던 상사화가 7월 장마 중에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이 무더운 염천(炎天)의 뜨락에 연분홍빛 그리움을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동양과 서양, 남녀와 노소를 불구하고 가장 사람을 설레게 하는 빛깔이 바로 분홍색이라고 합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색깔에서 가장 원초적인 느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그리워하고 싶은 자극을 누구나 느끼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복사꽃처럼 자주 빛이 도는 진한 분홍에서 고혹적인 정염(情炎)을 느낀다면 저 상사화처럼 약간 퇴색된 분홍에서는 왠지 사랑의 종말이나 서글픔,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느껴진다고 하니 과연 상사화는 그리움의 꽃임에 틀림이 없나 봅니다.

우리가 보통 그리움의 꽃을 꼽으라고 하면 종일 태양의 위치를 좆아 따라가다 해가 지면 고개를 숙이는 해바라기를 들지만 얼굴이니 깃(잎)의 크기가 너무 큰 해바라기는 어쩐지 사자를 연상시켜 그 억센 맹수(猛獸)의 첫사랑이나 암사자의 순정을 떠올리기에 무리인 것 같습니다.

또 그리움에 목이 길어졌다고 하는 코스모스도 그 가냘픔이나 아련한 빛깔에는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지만 한 나무에 수백 송이 이상의 꽃이 너무 현란해 못 견디게 사무치는 그리움이라 보기에는 어쩐지 정신이 사납고요.

그런데 저 상사화 좀 보십시오. 잎도 없이 꽃이 피고 잎이 나면 꽃이 져 서로 만날 수 없다고 상사화(相思花)라고 하는 것처럼 꽃을 매단 기다란 꽃대 자체가 바로 그리움에 목이 길어진 목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 상사화에게 그리움의 끝이 어디인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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