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의 세상 읽기] 우리 머릿속의 그림은 사실일까
[조송현의 세상 읽기] 우리 머릿속의 그림은 사실일까
  • 조송현 조송현
  • 승인 2021.08.16 16:27
  • 업데이트 2021.08.16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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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세상 읽기] 2021. 05. 30

“우리 머릿속의 그림은 언론이 그려준 것이다.”

언론의 기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명언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 1922년 발간한 저서 『여론(Public Opinion)』에서 처음 주장했다. 리프먼은 “언론은 우리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을 연결하는 창이며, 세상에 대한 그림을 결정한다”고 했다.

리프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같은 우리 머릿속의 그림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한다”면서 “여론은 실제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언론에 의해 구성된 의사(pseudo, 가짜)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리프먼은 일찍이 언론의 기능과 여론의 본질을 갈파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세상의 이미지를 그리며, 이런 이미지들로 구성된 여론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이비(似而非)일 수 있음을 그는 알려줬다.

언론은 우리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중으로 하여금 보도 내용에 주목하도록 만들면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미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코헨은 『언론과 외교정책(The Press and Foreign Policy)』에서 “언론은 대중에게 ‘무엇에 대하여 생각할 것인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특정 대상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까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즉 언론은 대중에게 특정 사건에 주목을 요구하며, 그 결과 대중이 무엇에 대해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리프먼과 코헨의 주장은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 맥스웰 맥콤스에 의해 미디어 효과 이론으로 정립됐다. 우리가 잘 아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 이론’이다. 맥콤스는 ‘대중은 언론이 강조한 이슈를 그 사회의 핵심 이슈로 파악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언론은 민주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언론이 ‘공론의 장’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1961년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언론의 공론장 기능에 주목했다. 공론장은 간단히 말하면, 대중이 서로 토론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특히 하버마스는 “공론장은 그 속에서 모든 사람이 원칙적으로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잘 구현한다”고 했다.

오늘날 언론은 대중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해 민주주의의 견인차로서 공론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 대부분 사회·언론학자들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에 관해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의 주장을 들어보자. 촘스키는 에드워드 허먼과 함께 1998년 펴낸 『여론조작』에서 “언론은 여론을 조작할 뿐만 아니라 권력집단의 논리를 충실히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선전도구)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언론이 공론장으로서 사실을 전달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했다.

막강한 언론 프로파간다에 의해 대중은 저도 모르게 권력집단의 논리에 순응하게 된다. 왜곡된 공론장에 의해 민주주의가 멍들게 되는 것이다. 언론이 권력집단의 프로파간다를 자임한 것은 주류 언론이 대부분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집단)에 속해 있고, 이들은 권력집단을 비판하기보다 한통속이 되는 게 이윤 추구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게 촘스키의 분석이다.

조송현 대표

요즘 우리나라 기자들은 촘스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언론이 권력집단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건강한 공론장 역할을 하려면 권력집단의 논리에 의문을 갖고 질문해야 한다. 기자에게 특권이 있다면 질문할 권리다. 하지만 한국의 기자들은 질문하지 않는 것으로 국제적인 유명세를 탄 지 오래다. 무소불위 검찰권력이 내보내는 자료를 질문 없이 그대로 베껴 ‘단독’을 자랑스럽게 달아 보도하는 매체는 언론이라기보다 검찰권력의 프로파간다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그려지는 전체주의 사회에는 ‘왜’라는 질문이 없다. 빅브라더체제의 감시와 통제에 의해 국민이 완전히 순치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론은 없고 국민을 세뇌하는 프로파간다만 있을 따름이다.

질문을 모르는 언론에 순치된 사회가 『1984』의 디스토피아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기자들이여, 질문하라. 우리 시민도 언론이 그려 넣은 머릿속의 그림이 진짜인지 끊임없이 의심하자.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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