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32) - 글자 없는 책을 읽다가 때로는 줄 없는 거문고를 뜯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32) - 글자 없는 책을 읽다가 때로는 줄 없는 거문고를 뜯네
  • 허섭 허섭
  • 승인 2021.08.20 06:30
  • 업데이트 2021.08.21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2 이숭(李嵩 南宋 1166~1243) 화랑담도(貨郞擔圖) 25.5+70.4 대북 고궁박물원
이숭(李嵩, 南宋, 1166~1243) - 화랑담도(貨郞擔圖) 

232 - 글자 없는 책을 읽다가 때로는 줄 없는 거문고를 뜯네

사람들은 모두가 (글자 있는 책을 읽고)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하고
(줄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아도) 줄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흔적(형태) 있는 것만 알고 (무형의) 그 정신은 모르나니 
무엇으로 금서(琴書-음악과 독서)의 참맛을 얻으리오.

有字書(유자서) : 문자로 씌어진 책.
無字書(무자서) : 글자가 없는 책, 곧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가리킴.
無絃琴(무현금) : 줄 없는 거문고, 곧 자연의 음향(音響)을 말함.
迹用(적용) : 형체를 이용함, 즉 형체에 집착하여 구애(拘碍)됨을 뜻함.
神用(신용) : 정신을 활용함, 정신을 이해함.

 

◈ 『송서(宋書)』「도연명전(陶淵明傳)」에

潛不解音聲(잠불해음성) 而畜無絃琴一張(이축무현금일장) 每酒適(매주적) 撫弄以寄其意(취무농이기기의)

- 도잠은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줄 없는 거문고 한 대를 곁에 두고 술이 거나할 때마다 그 거문고를 타 자기의 마음을 실었다.

◈ 이규보(李奎報)의 「독도잠시(讀陶潛詩) - 도연명 시를 읽고」

我愛陶淵明 (아애도연명)  나는 도연명을 좋아하나니
吐語淡而粹 (토어담이수)  그가 읊은 말은 모두 담박하고 순수하였네
常撫無絃琴 (상무무현금)  늘상 줄 없는 거문고를 어루만졌다더니
其詩一如此 (기시일여차)  그의 시도 응당 이와 같았으리
至音本無聲 (지음본무성)  지극한 음률은 본래 소리가 없으니
何勞絃上指 (하로현상지)  어찌 수고로이 거문고 줄에 손을 댈까
至言本無文 (지언본무문)  지극한 말은 본래 꾸밈이 없으니
安事彫鑿費 (안사조착비)  어찌 꾸밈을 일삼아 말을 허비하리오
平和出天然 (평화출천연)  무릇 평화로움은 천연스러움에서 나오나니
久嚼知醇味 (구작지순미)  오래 씹을수록 더욱 진한 맛을 느끼네

◈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무현금명(無絃琴銘)」

琴而無絃 (금이무현)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存體去用 (존체거용)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非誠去用 (비성거용)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靜基含動 (정기함동)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聽之聲上 (청지성상)  소리를 통하여 듣는 최상의 것도 
不若聽之於無聲 (불약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樂之形上 (악지형상)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최상의 것도 
不若樂之於無形 (불약악지어무형)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樂之於無形 (악지어무형)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乃得其 (내득기)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聽之於無聲 (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乃得其妙 (내득기묘)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外得於有 (외득어유)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內得於無 (내득어무)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顧得趣平其中 (고득취평기중)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爰有事於絃上工夫 (원유사어형상공부)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不用其絃 (불용기현)  그 줄은 쓰지 않고 
用其絃絃律外官商 (용기현현율외관상)  그 줄의 줄 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吾得其天 (오득기천)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樂之以音 (락지이음)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樂其音 (락기음)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音非聽之以耳 (음비청지이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聽之以心 (청지이심)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彼哉子期 (피재자기)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曷耳吾琴 (갈이오금)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 

◈ 이영서(李永瑞 미상~1450)의 「무현금(無絃琴) - 줄 없는 거문고」

淵明自有一張琴 (연명자유일장금)  도연명이 거문고 하나를 가졌는데
不被朱絃思轉深 (불피주현사전심)  줄을 매지 않았지만 뜻은 더욱 심오했다네
眞趣豈能聲上得 (진취기능성상득)  참된 취미를 어찌 거문고 소리로써 얻을손가
天機須向靜中尋 (천기수향정중심)  천기란 모름지기 고요함 속에서 찾아진다네
鯤絃鐵撥渾閑事 (곤현철발혼한사)  좋은 거문고 줄과 채는 모두 부질없는 것
流水高山謾苦心 (유수고산만고심)  유수와 고산의 악곡도 헛애만 쓴 거라네
古調未應諧俗耳 (고조미응해속이)  옛 가락이 속인들 귀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으니
悠悠千載少知音 (유유천재소지음)  천년 세월 흘러가도 그 곡조 아는 이 없네

줄 없는 거문고는 세속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에 닿지 않는 물건일 뿐이다. 그런데 도연명은 무현금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늘 어루만지며 심오한 뜻을 찾았으니 참다운 취향은 거문고에서 나오는 단순한 소리로 얻어지는 게 아니고, 하늘의 기밀도 고요한 사색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좋은 거문고 현이나 단단한 채를 가졌다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며, 백아(伯牙)가 아양곡(峨洋曲)을 타면 종자기(鍾子期)가 그 뜻을 잘 알아들었다는 고사도 실은 헛애만 쓴 것이라. 속세 사람들의 어두운 귀에 그런 옛 가락이 이해될 수 없으니 천년 세월이 가도 그 뜻을 아는 사람 없으리라. 

頷聯(함련)과 頸聯(경련)은 각각 좋은 對句(대구)를 이루었고 내용도 깊이 음미해야 할 좋은 작품이다.

* 鯤絃鐵撥 : 당(唐) 개원(開元) 연간에 악공 하회지(賀懷智)가 비파를 잘 연주하였는데, 돌로 조(槽)를 만들고 곤계(鵾雞)의 힘줄로 현(絃)을 만들어 쇠로 만든 채(술대)로 퉁겼기 때문에, 소식(蘇軾)의 시에 ‘鵾絃鐵撥世無有(곤현철발세무유) - 곤계의 현줄을 철로 퉁기는 솜씨여,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도다.’ 라는 표현이 있게 된 것이다.  
* 거문고의 현은 가는 명주실을 꼬아 엮은 것으로 쓰며, 술대는 보통 단단한 나무를 쓰는데 해죽(海竹)이나 흑단(黑檀)을 주로 쓴다. 거문고 줄을 받쳐주는 격자(雁足안족)로는 박달나무를 쓰나 옥을 쓰기도 하는데 박달나무로 한 것은 단조(檀槽)라 하고 옥으로 한 것은 석조(石槽)라 한다.
* 鯤은 ‘고래’ 를 말하고 鵾은 ‘닭 모양의 새’ 를 가리키는데, 원래는 鵾이 맞겠으나, ‘절대 끊어지지 않는 질긴 줄’ 을 우리가 흔히 ‘고래 힘줄’ 이라 부르니 鯤이라 써도 무방할 것이다.

* 流水高山 : 본래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故事)를 말하는 것이다. 종자기가 백아의 거문고 타는 솜씨를 잘 알아주었는데 “높은 산을 생각하고 타면 높은 산에 있는 것 같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고 타면 흐르는 물에 있는 것 같다.” 하였다. 여기서 ‘知音’ 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으며 ‘만나기 어렵다’ 는 뜻으로 쓰이며, 또 ‘오묘한 악곡’ 을 뜻하는 말로 ‘유수곡(流水曲)’ 이란 곡명이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아양곡(峨洋曲)은 ‘峨-높은 산’ 과 ‘洋-늠실대는 물결’ 에서 따온 곡명이다. 

◈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Ode on a Grecian Urn)」중에서

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Are sweeter; therefore, ye soft pipes, play on
Not to the sensual ear, but, more endear'd,
Pipe to the spirit ditties of no tone

귀에 들리는 곡조는 아름다우나, 들리지 않는 곡조는
더욱 감미롭도다. 자, 그대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가 불지 말고 더욱 다정히 
영혼을 향해 선율 없는 노래를 불러라.

Thou, silent form, dost tease us out of thought
As doth eternity: Cold Pastoral!
When old age shall this generation waste,
Thou shalt remain, in midst of other woe
Than ours, a friend to man, to whom thou say'st,
'Beauty is truth, truth beauty,--that is all
Ye know on earth, and all ye need to know.'

그대는 침묵의 모습, '영원' 이 시키는 것처럼 
우리를 '사념(思念)' 의 저쪽으로 몰아낸다. 차가운 목가(牧歌)!
늙음이 지금의 사람들을 멸하게 될 때 
너는 인간의 친구가 되어
지금 고뇌와 다른 괴로움 속에 남아 인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이 지상(地上)에서 인간이 알고 있는 전부요, 또한 알아야 할 전부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