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잘 지내 주어요 - 김종숙
[시(詩)가 있는 인저리타임] 잘 지내 주어요 - 김종숙
  • Leeum Leeum
  • 승인 2021.09.01 06:40
  • 업데이트 2021.09.02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 지내 주어요 
                      김종숙

 

빗방울과 바람이 나란히 거닐던 옹이확독 속 수련을 바라보다 
갈라진 회색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세찬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울타리 위를 나는 나무새에게
수직으로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순식간에 빨랫줄에게 잡혀 실금처럼 벌어진 틈새 사이로 매달렸다

처소 앞마당에 문득 찾아온 가을 손님은 
세월 오는지 가는지 모른다는 말이 무색하다며
떨어진 물방울을 감싸 안은 빨랫줄에게 악수를 청했다 

한가한 빨래집게를 내려다보는 외등이 윙크하듯 깜빡이더니 
"작전 성공 " 하며 
공중의 나무 새들이 웃었다

어디서 놀다 어슬렁 들어온 구월이가
나를 보고 사정 없이 짖어 댔다

뒤뜰로 슬슬 사라진 이 손님
빨랫줄에게 빼앗긴 마음 주워 담을 겨를 없이 도망쳤다

구월이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앞마당 포도 넝쿨 사이로 향기로웠던 노랫소리
오랫동안 바라보던 긴 머리 말아 올린 어여쁜 새댁
바닷가에 혼자 피었다 지던 보랏 색 순비기꽃
나미송 가는 길에 달려오던 바람 소리
구릿빛 손안에 부끄러움 한 송이 들고 자박자박 다가오던 걸음걸음

함께 지냈던 제니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창틀 넘어 보이는 길 끝에서 눈 분배 몰고 달려올 동짓달에
뚝뚝 떨어지며 자지러지게 울던 능소화의 여름 전설을 내려놓고 갈는지
문득 다녀온 철 지난 애월 바닷가 깜박이며 마주 보던 하얀 등대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이제 방학이나 해야 스타리 꼬여 추억 더듬으러 갈른지
라빵이 다시 말을 들어 줄는지
내가 지냈던 이층방 앞 그리움 안겨놓고 온 이 아이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 
잘 지내 주어요  

芝室 김종숙출처 : 인저리타임(http://www.injurytime.kr)
芝室 김종숙

◇Leeum 김종숙 시인은

▷2021 한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수상
▷문예마을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2020)
▷한양문학 정회원, 문예마을 정회원
▷시야시야-시선 동인
▷동인지 《여백ㆍ01》 출간
▷대표작 《별들에게 고함》 외 다수
▷기획공연- 다솜우리 대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