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83) - 오랜만에 ‘정금 차밭’ 위쪽 둘레길을 걷다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83) - 오랜만에 ‘정금 차밭’ 위쪽 둘레길을 걷다
  • 조해훈1 조해훈1
  • 승인 2021.09.01 18:25
  • 업데이트 2021.09.03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루나카페 사모님 문자 받고 스틱 짚고 길 나서
정금 차밭 위쪽과 백혜마을 가는 둘레길 걸어
화개골 차밭과 형세 제대로 알려면 이 길 봐야

루나카페 사모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요즘 왜 잘 오지 않느냐고?

화개동(花開洞)에 복거(卜居)하고 있는 필자와 이런저런 장소에서 부딪히는 주민들 가운데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지내느냐? 하루 시간 보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남들 눈에는 필자가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늘 빈둥거리는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필자가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일은 못하고, 집 뒤 산에 먹을 만큼의 차 농사를 짓고 지내는 걸 안다. 그런데 요즘은 차 농사철이 아니다보니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다들 인사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필자도 안면이 있는 주민들을 만나면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서로 안부를 묻는 말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크게 하는 일은 없어도 소소한 일들을 하며 지낼 것이다.

차시배지. 어찌하다보니 시배지 위쪽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조해훈
차시배지. 어찌하다보니 시배지 위쪽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조해훈

지난 6월 14일에 1차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인지 온몸에 기운이 너무 떨어져 거의 아무 일을 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누워 지냈다. 루나카페에 자주 가다가 가지 않으니, 사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신 모양이다. 스틱을 짚고 루나카페에 가기로 했다.

작업복을 입고 낡은 등산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쓰고 길을 나섰다. 쌍계초등학교를 지나 쌍계사 매표소를 거쳐 켄싱턴리조트 쪽으로 갔다. 차시배지 끝나는 지점과 리조트 사이로 올라갔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리조트 위쪽으로 해서 신촌마을로 내려선다. 그런데 길을 따라 가니 엉뚱하게도 차시배지 입구 방향으로 내려왔다. 그러니까 차 시배지 위를 한 바퀴 돈 셈이다. “이상하다. 왜 이렇지?”생각하며,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라 걷다 정금리 도심마을 입구로 들어갔다.

정금 차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심마을 소재 '산새소리펜션'. 사진=조해훈
정금 차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심마을 소재 '산새소리펜션'. 사진=조해훈

도심마을로 들어가면 천년 차나무로 유명한 도심다원을 지나 계곡 가에 ‘산새소리펜션’이 있다. 이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만당(萬堂) 최한익 사장은 필자의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친구이다. 성격이 좋고 프로 색소폰 연주가이다. 펜션 앞에는 형제봉 쪽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이 항상 철철 소리 내며 흘러 아래 화개동천에 합류한다. 계곡이 좋다보니 인근에 펜션이 여럿 있다.

‘산새소리펜션’ 앞 다리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8km가량 가면 원부춘마을이 나오고, 오른쪽 길로 가면 정금 차밭 위다. 지리산 둘레길이다. 화개동천 맞은편에서 보면 정금 차밭 위에 누각이 서 있는 곳이다. 누각 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 걸으니 길에 밤이 곳곳에 떨어져 있다. 한 개 주워 맛을 보니 속이 꽉 찬 것은 아니지만 먹을 만했다. 누각으로 오가는 차량들이 밤을 밟아 부서진 게 많았다. 그렇게 밤이 부서지면 아까울 것 같아 한 개 두개 주워 호주머니에 넣다보니 금방 불룩해졌다.

정금 차밭 위 누각. 사진=조해훈
정금 차밭 위 누각. 사진=조해훈

이어 누각에 도착했다. 젊은 사람들 몇 명이 누각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누각에 앉아 내려다보는 풍광이 참으로 좋다.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화개동천이 구불구불 화개장터 쪽으로 흘러가고, 정면을 보면 ‘더 로드 101’ 카페와 그 위쪽 몇몇의 집과 산길이 그림처럼 선명하다.

누각에서 나와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대비마을 올라가는 도로를 만난다. 200m가량 길을 따라 대비마을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고, 그 입구에 마을 누각이 있다. 역시 여기서도 앉아 쉬었다. 왼쪽 바로 보이는 집이 하동야생차박물관에 다례사로 근무하고 있는 정유진 선생 시댁이고, 그 아래쪽이 정 선생 집이다. 남편은 화개장터 앞에서 교통관리 요원을 하고 있다.

정금 차밭 위 누각에서 화개 쪽으로 바라본 풍광. 화개동천이 구불구불 흐른다. 사진=조해훈
정금 차밭 위 누각에서 화개 쪽으로 바라본 풍광. 화개동천이 구불구불 흐른다. 사진=조해훈

오른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 둘레길을 따라 쭉 가면 가탄리 백혜마을이 나온다. 최근에 이 둘레길을 다시 새롭게 잘 만들어놓았다. 승용차는 아무 불편 없이 거뜬하게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전에는 좁고 낡은 시멘트 길이었다. 누구든 화개골을 제대로 한 번 보고 지형을 알고 싶다면 도심마을에서 백혜마을까지의 둘레길을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길 양쪽으로 펼쳐진 차밭은 이 둘레길을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차밭 풍경이 아름답다. 화개를 찾는 외지인들은 화개동천 옆 도로를 다니며 길가의 차밭을 주로 만난다. 그러면 화개 차밭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승용차로 이 둘레길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루나카페서 바라보는 광양 백운산. 사진=조해훈
루나카페서 바라보는 광양 백운산. 사진=조해훈

스틱을 짚고 그렇게 천천히 터벅터벅 걸어 백혜마을 아래쪽에 있는 루나카페에 도착했다. 올해 열두 살인 강아지 루나가 나와 반가이 맞아주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광양 백운산 풍광을 감상하다가 나왔다. 농협에 가 오늘까지 마감인 주민세를 내고 집으로 또 천천히 걸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피곤하여 아마 내일 오전까지 분명 내내 누워 있어야 될 것같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