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87) - 오랜만의 아침 산책
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87) - 오랜만의 아침 산책
  • 조해훈 기자 조해훈 기자
  • 승인 2021.09.19 23:50
  • 업데이트 2021.09.23 10: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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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나와 쌍계사 매표소-신촌다리 거쳐 집으로
하동행 버스 타고 법하마을서 내려 걸어 루나카페 와
큰딸 둘째아이 낳아 케어 해주신다고 커페 문 안 열어

필자는 산책 하는 걸 좋아한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 오전에 일어나질 못해 산책을 거의 하지 못했다. 19일 오전 6시에 화장실에 갔다가 오면서 보니 날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산책을 할 요량이었다. ‘갔다 와서 좀 누워있으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쌍계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었다. 계곡 건너 도로에서는 이 숲속 길이 보어지 않는다. 이곳 화개골 어디든 좋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필자는 특히 이 숲길을 좋아한다. 저기 앞에 왼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키 큰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걷고 있다. 우리 목압마을 사람들이 아닌 걸로 보아 펜션에 놀러 오신 분들인지 모르겠다. 머리가 반백인 아저씨는 필자의 나이 정도로 보인다.

녹차꽃이 벌써 피어있다. 사진=조해훈
녹차꽃이 벌써 피어있다. 사진=조해훈

맞은편에서 어떤 아저씨가 살 포대를 들고 길가에 떨어진 밤을 주우며 걸어오고 있다. 길가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줍는 것 같다. 아주머니와 앞서가던 아저씨가 쌍계초등학교 소유이지만 길가에 있는 대추나무에서 떨어진 대추를 주워 맛을 본다.

쌍계초등학교를 막 지나면 집 한 채가 있다. 이 집에 딸린 차밭이 깔끔하게 전지돼 있다. 아마 어제 차나무를 쳐준 모양이다. 지난해에도 아저씨가 1인용 차전지기로 웃자란 줄기와 잎을 자르는 걸 보았다. 자른 차나무 군락 군데군데 차꽃이 피어있다. 이렇게 잘라버리는 차나무에는 차씨가 달리지 않는다. 필자는 차씨를 딴 후에 차밭 정리를 한다. 해마다 차씨를 따 말려 기름을 짜 먹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차밭에 올라갔다 차씨가 제법 열린 걸 보았다. 지난해는 차씨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

추석 연휴여서 그런지 켄싱턴리조트에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디. 사진=조해훈
추석 연휴여서 그런지 켄싱턴리조트에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디. 사진=조해훈

쌍계사 매표소를 지나 석문마을로 들어갔다. 두대문펜션 입구에 있는 슬레이트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 떨어진 감나무 이파리를 힘들게 쓸고 계셨다.

석문마을을 통과하여 차시배지를 거쳐 켄싱턴리조트 옆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필자는 차시배지에 울타리를 쳐놓은 게 늘 거슬린다. 쌍계사 소유라고 하니, 아마도 쌍계사에서 차밭 보호를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켄싱턴리조트에는 주자 공간마다 차가 빼곡하다. 추석 연휴이니 놀러온 손님들이 많은 모양이다.

길가의 꽃무릇이 벌써 시들고 있다. 사진=조해훈
길가의 꽃무릇이 벌써 시들고 있다. 사진=조해훈

이 부근 도로가에는 군에서 조성을 했으리라 여겨지는 꽃무릇이 쭉 심어져 있다. 벌써 빨간 꽃들이 시들어 보인다.

도로를 따라 더 내려가 신촌다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날이 환해지니 펼쳐진 차밭이 아름답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산책을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국내든 외국이든 여행을 가면 꼭 새벽에 일어나 그 인근 동네를 산책하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 등을 구경한다.

다리에서 보니 양쪽 계곡 벽면에 큰 돌로 옹벽을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늘 아쉬운 건 계곡에 작업을 하고 나면 원래 있던 계곡의 큰 바위들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신촌다리에서 계곡 위쪽으로는 물에 큰 바위가 하나도 없어 보기 흉하다.

신촌다리 인근의 차밭.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럽고 아릅답다. 사진=조해훈
신촌다리 인근의 차밭.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럽고 아릅답다. 사진=조해훈

신촌다리를 건너 본 도로를 따라 집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흔적갤러리 앞을 지나는데 강아지들이 짖는다. 차는 주차되어 있는데 사장님은 보이지 않는다. 쌍계사에서 필자가 살고 있는 목압마을까지는 인도가 아예 없다. 계곡을 끼고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해 낮에도 늘 불안하다.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계곡 펜스에 바짝 몸을 붙인다.

필자의 마을 앞 계곡에는 큰 바위가 아직 많다. 계곡에 바위들이 있어 자연스럽고 풍광이 더 아름답고 멋지다. 계곡을 끼고 필자의 마을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쾌청하다. 필자는 허리도 좋지 않아 걸음이 평소보다도 더 느리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닌 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목압다리 건너기 전 도로가에서 바라본 필자의 마을.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사진=조해훈
목압다리 건너기 전 도로가에서 바라본 필자의 마을.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사진=조해훈

오전 8시50분에 신흥에서 출발해 구례로 가는 버스가 있다. 집에 가서 가방을 챙겨 그 버스를 타려면 시간이 빡빡하다. 집에 가 가방을 챙겨 버스정류소로 내려오는데, 버스를 탈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버스가 지나쳐버린다. 목소리만 크면 소리쳐 버스를 세울 건데, 목소리가 크지 못하고 그렇게 할 만큼 용기도 없다.

정류소에 앉아 있으니 햇살이 바로 비치어 너무 강하다. 원래 눈이 빛에 약한데다 최근에 백내장 수술을 한 탓에 눈부심이 더 하다. 구례 가는 버스는 가버렸고, 하동 가는 버스가 올 가능성이 많으니 기다리기로 했다. 구례행 버스는 시간표가 있어 언제 이 정류소에 오는 지 가늠이 되지만, 하동버스는 그게 없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오후 1시 조금 넘어 하동행 버스가 온다는 것만 알고 있다. 목압다리 입구 앞이어서 다리 위에 일주문처럼 서 있는 목압문(木鴨門)을 바라보고 앉아 기다린다. 가방과 보조가방이 무겁지만 버스가 오지 않으면 걸어갈 생각이다. 루나카페 사모님께 ‘사모님, 오늘 카페 오픈하셨습니까?’라고 문자를 넣었다. ‘네’라고 사모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앉아 있노라니 하동행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법하마을, 즉 하동중학교 입구에 내렸다. 카페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을 땡볕이 뜨겁다. 카페에 도착하니 사모님께서 큰 딸이 둘째 아이(손자)를 낳아 산후조리원에 있는데, 뒤치다꺼리를 해주다 엊그제 왔다고 하셨다. 와서는 부산에 있는 안과에 갔다가 오늘 한참 만에 카페 문을 열었다고 하셨다. 손자 사진을 필자에게 보여주셨다. “아들이라 그런지 위의 누나와는 달리 점잖다”고 하셨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작은 딸도 임신을 하였다”며 “내년 4월에는 작은 딸이 출산할 예정인데, 작은 딸 돌봐주러 파리에 가야할 것 같다”라고 하셨다.

사장님은 텃밭 구석에 있는 닭장에 가시어 계란을 꺼내 나오셨다. 사장님은 “하루에 7, 8개의 계란을 낳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가꾸시는 텃밭에 배추와 무가 잘 자라고 있었다. 대봉감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단감은 많이 달려있다. 사장님과 텃밭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손님이 오시어 자리를 비켜드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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