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65) - 세상을 벗어나는 길도 세상 속에 있으며, 마음을 깨닫는 공부도 마음의 도리를 다함에 있다. 
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265) - 세상을 벗어나는 길도 세상 속에 있으며, 마음을 깨닫는 공부도 마음의 도리를 다함에 있다. 
  • 허섭 허섭
  • 승인 2021.09.22 07:00
  • 업데이트 2021.09.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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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설창(雪窓 미상~1349) 난석도(蘭石圖) 97.2+54.5 일본 개인소장
설창(雪窓, 미상~1349) - 난석도(蘭石圖)

265 - 세상을 벗어나는 길도 세상 속에 있으며, 마음을 깨닫는 공부도 마음의 도리를 다함에 있다. 

세속을 벗어나는 길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세상을 등질 필요는 없다.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곧 마음의 도리를 다하는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욕심을 끊어 마음을 식은 재처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 出世之道(출세지도) : 세속을 벗어나는 길.
  • 涉世(섭세) : 세상을 살아는 것.  *『채근담』에서 종종 나오는 단어이다.
  • 絶人(절인) : 세인들과의 교제를 끊음.
  • 逃世(도세) : 속세를 피해 숨어 살아감.  * 흔히 ‘둔세(遁世)’ 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逃나 遁 모두 ‘달아나다’ 의 뜻이다.
  • 了心之功(료심지공) : 자기 마음을 깨닫는 공부.  了는 ‘마치다, 깨닫다’.
  • 盡心(진심) : 마음의 도리를 다함. 
  • 絶欲(절욕) : 물욕을 끊음, 욕심을 버림.
  • 灰心(회심) : 마음이 식은 재와 같이 생기가 없음. 

◈ 『노자(老子)』에 나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정신

『노자』에는 ‘화광동진(和光同塵)’ 이라는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온다. 화광(和光)은 ‘빛을 부드럽게 한다’ 는 의미이고 동진(同塵)은 ‘티끌과 함께한다(하나가 된다)’ 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지혜와 재주를 자랑하지 않고 감추며 세상과 원만하게 어울릴 줄 안다’ 는 뜻이다. 노자 제4장과 제56장에 나오는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道沖而用之(도충이용지) 或不盈(혹불영) 淵兮(연혜), 似萬物之宗(사만물지종). 挫其銳(좌기예) 解其紛(해기분), 和其光(화기광) 同其塵(동기진). 湛兮(심혜), 似或存(사혹존). 吾不知誰之子(오부지수지자), 象帝之先(상제지선).  - 제4장

- 도는 비어 있음으로 작용하여 언제나 차지 않는다. 그 깊음이여, 만물의 근원 같구나.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엉클어진 것을 풀고 그 빛을 감추어 먼지와 하나로 된다. 그 깊음이여, 영원한 존재 같구나. 나는 그가 누구의 자식인 줄 모르는데, 어쩌면 하느님보다 먼저인지 모르껬다.

知者不言(지자불언) 言者不知(언자부지). 塞其兌(색기태) 閉其門(폐기문) 挫其銳(좌기예) 解其紛(해기분) 和其光(화기광) 同其塵(동기진) 是謂玄同(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고불가득이친) 不可得而疏(불가득이소) 不可得而利(불가득이리) 不可得而害(불가득이해) 不可得而貴(불가득이귀) 不可得而賤(불가득이천) 故爲天下貴(고위천하귀).  - 제56장

-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구멍을 막아 문을 닫고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여 엉클어진 것을 풀고 빛을 감추어 티끌과 하나가 되면 이를 일컬어 도와 하나로 된다고 한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으며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으니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된다.

◈ 백낙천(白樂天) 「중은(中隱)」 5언으로 된 장시(長詩) 중에서

大隱住朝市 (대은주조시)  큰 은자(제대로 숨는 자)는 조정과 저잣거리에 숨고
小隱入丘樊 (소은입구번)  작은 은자(숨는 체 하는 자)는 산속으로 들어간다
丘樊太冷落 (구번태냉락)  산야는 고요하나 쓸쓸하기 짝이 없고 
朝市太囂喧 (조시태효훤)  조정과 시장은 너무나 소란스러워
不如作中隱 (불여작중은)  (대은과 소은 그) 중간에 숨는 것만 못하니
隱在留司官 (은재유사관)  (중은이란) 일 없는 벼슬(작은 관직)에 머무르는 것이라
似出復似處 (사출불사처)  (때로는) 출사한 듯 (때로는) 은거한 듯
非忙亦非閑 (비망역비한)  바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니라네

※ 백거이(白居易)의「중은(中隱)」시는 후집 제43장에서 언급한 도연명(陶淵明)의 「귀전원거(歸田園居)」와 비교해 봄도 좋을 것 같다. 둘 사이에는 분명 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두 <은일(隱逸)의 사상> 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사실이다. 선비가 숨는 까닭은 스스로를 갈고닦는 수행(修行)을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말 삼은(三隱) 또는 오은(五隱)이 있었으니,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소를 치는 마굿간에 숨고자 했고, 포은(圃隱) 정몽주는 푸성귀를 키우는 채소밭에 숨고자 했으며, 야은(冶隱) 길재는 쇠를 불리는 대장간에 숨고,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은 사기막골에 숨고, 농은(農隱) 조원길(趙元吉)은 돈두렁에 숨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교체기에 살았던 이들로 나름의 개혁 의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그 주체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 비극적 생애를 마쳤거나 살아남았더라도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은일의 사상을 지녔던 것임에 분명하다.
  
몸을 숨김에 있어 대은(大隱), 소은(小隱), 또 중은(中隱)이 있다고 하지만 역시 최고의 숨김은 이른바 <신은(神隱)> 일 것이다. 말 그대로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는 것’ 이다. 역사상 이 ‘신은’ 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장량(張良)과 한무제(漢武帝)의 멘토 역할을 했던 신화적 인물인 동방삭(東方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치원(崔致遠)이 이에 해당하나 세상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둔세(遁世)한 것이라 그는 이 나라 곳곳 가는 곳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겼으니 한참 모자라도 많이 모자란 인간이었다.

※ 동방삭은 유머와 재치 그리고 장수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의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는 ‘삼천갑자’ 는 동방삭이 갑자년(甲子年)을 삼천 번 겪으며 18만 년이나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장수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는 서한(西漢) 무제 시대라는 강력한 군주제와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던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과 문제점을 꿰뚫어 보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시대상을 진단했던 현인이었다. 그런 시대에 어떻게 처세해야 되는가를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는 그 시대상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자 했던 동방삭의 처세사상의 압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방삭은 자신의 기이한 행동에 비난을 일삼는 동료들에게 “나는 말하자면 조정 한 가운데 숨어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옛 사람은 깊은 산속에 숨어 세상을 피했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 세속에 젖어 / 세상을 금마문(金馬門) 안에서 피한다네. / 궁전 안에서도 세상을 피해 몸을 온전히 숨길 수 있거늘 / 하필 깊은 산속 풀로 엮는 집이랴! >

출세지상주의자들로 넘쳐흐르던 서한 최고 황금기 한 복판에서 동방삭은 처신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으로부터 2,100여 년 전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했던 장안(長安, 현 산시성 시안)이란 국제도시에 살면서 스스로 ‘숨어 산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방삭의 유유자적한 달관의 경지는 훗날 도교 사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그를 신선으로 추앙하기에 이르렀고, 동방삭의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중국의 사극이나 드라마에서는 한 무제의 정신적 멘토로까지 묘사되고 있을 정도이다.


「동방삭이 아들에게 남긴 편지」

밝고 지혜로운 사람의 처세 태도로 중도(中道)에 부합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느니라. 보기에 차분하고 자유로우면 자연 중도에 부합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백이, 숙제 같은 군자는 맑고 고고했지만 너무 고집스러워 처세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반면에 유하혜는 정직하고 일을 존중하여 치세건 난세건 늘 같은 태도를 유지하였으니 그야말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면 느긋하게 관직 생활로 은퇴하여 농사짓는 일로 대신한다. 몸은 조정에 있지만 조용하게 겸손하게 말하면서 마치 은둔자처럼 유유하게 살면 비록 시세에 영합하지는 못하더라도 화를 입지는 않는다. 그 이치가 무엇인가? 날카로움을 다 드러내면 위험을 당하기 마련이고, 뛰어난 명성은 꾸민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명망을 얻으면 평생 바쁘고, 스스로 고고함을 자처하는 사람은 주위와 조화하지 못한다. 

무릇 일은 여지를 남겨야지 바닥을 보이거나 아주 모자라서는 안 된다.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보면 생각이 딸리고 약해진다. 그래서 성인들이 처세하는 이치를 보면, 나서고 숨고 움직이고 멈추기를 시기적절하게 조절한다. 때로는 사방으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여 절묘하게 드러내고, 때로는 말없이 엎드려 그 깊은 속내를 헤아릴 수 없게 한다. 그들은 만물과 시기의 변화에 따라 가장 적절한 처세법을 운용하지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꽉 막혀 통하지 않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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