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8)9수 윤석열과 검정 이재명, 그리고 선택의 진실 ③누가 나의 ‘이익’에 봉사하겠는가?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8)9수 윤석열과 검정 이재명, 그리고 선택의 진실 ③누가 나의 ‘이익’에 봉사하겠는가?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1.10.20 13:34
  • 업데이트 2021.10.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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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의 노키아 부사장은 시속 50km 구간에서 75km로 달렸다가 11만6,000유로(약 1억6,000만 원)의 벌금을 냈다.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형벌은 범법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행 벌금제는 ‘총액 벌금제’이다. 과속으로 6만 원짜리 딱지를 끊겼다 치자. 재벌2세건 단칸방 막노동꾼이든 똑같이 6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 부자에게는 시쳇말로 ‘껌값’이라 형벌 효과가 없고, 빈자에게는 한 달 쌀값이라 너무 가혹하다. 거칠게 말해,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였다면 아마 재벌2세는 1억 원 정도의 벌금이 부과되었을 것이고, 막노동꾼은 1만 원 정도였을 것이다.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는 핀란드를 비롯하여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 등에서 시행 중이다.

#2.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일본은 대놓고 항의했다. 그리고 속으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국제사회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널리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하여 분쟁지역화는 우리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20%에도 못 미치는 지지를 받던 임기 말의 대통령이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치적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이명박의 꼼수가 통한 것일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독도를 방문한 대통령은 이명박뿐이다.” 며 환호했다.

#3. 1999년 교원 정년이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됐다.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이 총대를 메고 밀어붙였다. 교육현장에서는 거세게 반발했다. 교육현장을 경험한 나는 찬성했다. 일반적으로 환갑이 넘은 평교사들은 수업에 대한 열의가 별 따뜻하지 못하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에도 소극적이다. 그리고 관리자(장학사 이상)로 승진하지 못한 패배의식도 일부에게서 느껴졌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이 맞붙었다. 이회창의 공약 중 하나는 교원 정년 65세로 복귀였다. 60세로 교장인 인척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노무현을 지지했고, 그는 이회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와 마찰은 없었다. 그의 지지자가 대통령이 되면, 그에게는 분필 가루를 마시지 않고 교장으로 3년을 더 누릴 막대한 이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정치가 밥 먹여주냐,고 한다. 밥을 먹여주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내 밥그릇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소득세율, 기름 값, 노령수당, 군복무 기간, 여성이나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 등등 우리 생활 모든 영역에 정치가 개입한다. 이 정치의 정점이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여 대통령을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 는 곧 내 삶의 문제이다. 어떤 잣대로 누구를 지지해야 할까?

[사진=조송원]

먼저 그 후보의 정체성에 대한 지지이다. 문제는 그 후보에 대한 내 앎이 팩트(facts)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보는 창’인 언론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보와 역정보가 난비한다. 특히 SNS 시대에 진영논리에 갇혀 부족주의가 횡행해 확증편향만 강화한다. 올바른 정보를 얻기는 언론에서건 유트브에서건 참 힘들다. 팩트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힘든 지적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둘째로 자신의 정의감의 발로나 소신의 발현으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다. 개인의 정의심이나 소신이 참을 담보하지 않는다. 정의감이나 소신은 ‘개인적 믿음’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믿는다는 데 무슨 말을 더 보태랴.

셋째로 자신에게 ‘경제적 이익’이 될 만한 사람을 지지한다. 무릇 정의감과 소신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정하는 유권자는 거의 확정적이다. 믿음으로 투표하는 사람은 지지하는 후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치 않고, 특정 후보나 정당에 고착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 반반으로 양분되어 있는 성 싶다. 정체성 확인에 공들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특정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특정 후보의 당락을 결정짓는 관건은 경제적 이익을 잣대로 삼는 유권자이다. 흔히 말해 ‘부동층’이다. 정치는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한 국민으로서 내 이익에 봉사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선한 행위이다. 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충돌한다는 데 있다. 곧 내 이익이 네 손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본래 민주주의는 모순된 두 기둥으로 지어진 집이다.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에 중점을 두면 평등이 침해받고, 평등을 앞세우면 자유가 훼손된다. 두 가지 다 소중하나, 두 가지 다를 가질 수 없다. 그럼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순자산이 10억 이상이고, 세후 연봉이 1억 이상이면 보수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 가구원 수를 4명으로 잡으면 이 정도는 돼야 중산층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둘째, 능력이 출중해 세금에 신경이 쓰인다면, 보수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게 이익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돈 벌’ 능력을 말한다. 그 외 다른 능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조송원 

위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 4인 가구기준으로 3억, 4억 원 나가는 아파트 한 채와 월급으로 500만 원 정도 버는 사람이, 심지어는 포장마차를 하면서도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물론 정의감이나 소신이라는 데야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인물 정체성에 대한 팩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도 한 가지 조언할 게 있다. 어떤 후보의 과거를 보면 된다.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고, 현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다.

총액 벌금제 대 재산·소득 비례 벌금제, 독도 방문 찬성 대 반대, 교원 정년 65세 대 62세, 독자 제현은 어느 쪽이십니까?

<선임기자, 본지 편집위원 /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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