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1) 하루에 거울을 세 번 보다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1) 하루에 거울을 세 번 보다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1.11.03 10:29
  • 업데이트 2021.11.05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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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라!’ 그냥 주저앉았다. 통증이 격심하다. 아픈 왼다리를 들어올렸다. 발꿈치 발바닥, 곧 뒷발바닥에 나무판때기가 붙어 올라온다. 판때기에 박혀있는 못을 우지끈 밟은 것이다. 쉽게 뽑히지 않는다. 오른쪽 넓적다리에 왼발을 올려놓고, 영차 하며 힘을 주어 못을 뽑아냈다. 한 치쯤(≈3cm) 된다. 피가 빼꼼이 난다. 찔린 곳 양옆을 누르며 피를 짜냈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 ‘빨간약’(포비돈)을 발랐다.

겨울에는 따뜻한 게 보배다. 7평 정도의 내 서재는 온돌방이다. 데우려면 땔나무가 많이 든다. 작정을 하고 일삼아야 겨울 날 땔나무를 댈 수 있다. 이웃집이 집수리를 했다. 아래채 두 채를 뜯어냈다. 목조건축물이라 땔나무 거리가 많이 나왔다. 내 집 텃밭에 그 땔감들을 쌓아두었다. 한 2년은 땔나무 걱정은 없겠구나, 흐뭇했다. 집 짓는데 사용된 나무에 무수히 박혀있는 못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그 못에 찔리고 보니, 횡재가 횡액인 것을······. 이웃집에 대한 고마움이 싹 가시려 했다.

“어머니가 원망스럽다네. 오늘이 기일이라 그런 감정이 더 절실하구먼.” 20여 년 전 띠동갑인 선배교사와 단둘이서 남포동 한 호프집에서 수작을 할 때, 그가 뜬금없이 내뱉었다. 어머니는 국제시장에서 무슨 가게를 했는데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아내한데 쥐어 사는 백수였다. 외아들로서 호강스레 컸다.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야멸치게 나무랐다. 아들이 무슨 짓을 하든 어머니는 오케이였다. 어찌어찌하여 수학교사가 되고 결혼도 했지만,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아내는 아내대로, 하나 있는 딸은 딸대로 제 갈 길로 가버렸다. 쓸쓸하다. 겨울 초입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미리 추워진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나는 그 선배교사와 뭐가 다른가?

몇 시간이 지나니 상처부위가 욱신거린다. 이동이 너무 불편하다. 절뚝거린다. 이거, 빨간약으로 감당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읍에까지 나가긴 너무 번거롭다. 걷고 버스 기다리고, 타고 가고, 또 기다려 타고 오고······. 자전거를 타고 휭하니 면소재지 의원으로 갔다. 이름은요? 주민번호는요? 접수계 아가씨가 컴퓨터 모니터만 보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느낌이 안 좋다. 뭔가 꼭 꼬집어내긴 어렵지만, 자존감이 구겨지는 기분이 듦은 어쩔 수 없다. 의사의 처치에도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주의사항을 말하는 품이 꼭 자신의 알라바이를 위한 전술 같다. 아무리 시골의사라 해도 명색이 의사이니 기본은 있을 것 아닌가. 한데 아닌가? 시골 무지렁이 노인 취급인 것 같은데, 아닌가?

이런저런 연줄에 걸려 여차여차한 시절인연으로 ‘글을 한다’는 여인과 여러 차례 차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지금은 연줄은 가늘어지고, 인연도 다해 버렸다. 한데 왜 이 욱신거리는 발을 절며 시골의원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 여인이 불현듯 생각났을까? 그렇군! 한 밥자리에서 그녀가 말했지. “샘은 이제 시골 사람이 다 됐네요.”

시골에서 나고 컸다. 한창시절, 대처에서 살았다. 귀향하여 시골에 산다. 맞다, 시골사람. 한데 ‘시골사람’이란 의미가 무엇일까? 그 아가씨와 의사, 그리고 그 여인에게는. 그 의문을 갖고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본다.

ⓒ조송원

차도가 없다. 걷기가 몹시 불편하다. 절뚝절뚝거린다. ‘못에 찔렸을 때’ 검색엔진을 돌린다. 파상풍! 이 파상풍균이란 놈이 여간 독한 게 아니구나. 감염자 사망률이 50%나 될 정도이다. 다만, 걸릴 확률은 적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발생하는 파상풍 사례는 10~20건이다. 못에 찔린 사람이 수백만 명인데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봐야 할 필요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파상풍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나이도 고려해야 한다. 면역력이 젊은이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기분이 안 내켜 파상풍 백신은 거부했는데,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상의 <날개>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로 시작하여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로 끝난다. 이상은 1910년생이다. 17세(우리나이)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건축과를 졸업한 조선인은 한 해에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 20세에는 일본인을 제치고 당당히 수석으로 졸업한다. 졸업과 동시에 조선총독부에 기수技手로 취업한다. 기수는 대학교가 없었던 식민지 조선에서 최고의 전문기술자 자격증이다.

전공인 건축 외에도 문예지 편집자로 활약했고, 장편소설도 연재했으며, 실험시도 썼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부분에 입선도 했다. 그러나 이상은 22세에 건축공사 현장에서 각혈로 쓰러졌다. 폐결핵이었다. 2년 후 24세에 총독부에서 사직했다. 그리고 여행지 토교에서 불령선인(사상불온혐의)으로 체포되었다, 한 달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한 달도 채 안 되어, 입원한 병원에서 28세로 사거死去했다.

1937년 식민지 조선, 폐결핵, 28세에 병사病死할 수밖에 없었던, 결국 날지 못한 천재 이상! 2021년 선진 대한민국, 5만 원짜리 백신 한 방으로 깔끔해지는 파상풍을 걱정하는, 이상보다 2배나 더 살고도 정정한 나! 나는 누구인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작가 / 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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