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2) 통하든 사라지든, 말은 없다
조송원의 ‘천방지축, 세상을 논하다’ (12) 통하든 사라지든, 말은 없다
  • 조송원 기자 조송원 기자
  • 승인 2021.11.07 07:30
  • 업데이트 2021.11.06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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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은 해결사다. 주위를 깡그리 정리해 준다. 사교를 위한 겉멋 친구들은 자연히 잊혀줘 준다. 친인척의 발걸음도 뜸해진다. 서로를 위해 굳이 체면치레를 하지 않음이 서로를 돕는 일이라는 암묵적 합의를 잘 지키게 된다. 하여 궁핍은 인간을 단순·명료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궁핍한 사람은 선택지가 한두 개뿐이므로 선택의 갈등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

궁핍은 지혜를 가져다주는 묘약이다. 인간이란 생물종의 특성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도둑질을 해 면죄부를 사는 세상이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 이하의 행동을 해도 돈을 지불하면 사람대접을 해준다. 물론 이 논의에는 함정이 많다. 특히 ‘사람의 정의’가 문제이다. 생물학적 인간+돈=사람, 이라고 해석 하면 될까? 이때 돈은, 유산이든 운이든 강탈이든 도둑질이든 땀의 대가이든 간에 출처를 불문한다. 그러나 궁핍은 이 같은 논의가 무의미함을 가르쳐준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게 얼마나 적은지를 깨치게 해준다.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아침이슬처럼 사라진다. 사라진다 해도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의구하게 자연계는 평형을 유지한다. 이게 자연의 섭리이다. 섭리에 무슨 가타부타 불만을 주장하리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인과법칙과 물리법칙에 위배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

ⓒ조소원

『명심보감』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하루 선善을 행할지라도,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악을 행할지라도,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에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하는 바가 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갈리어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이지러지는 바가 있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이조스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억만장자(billionaire)를 넘어 조만장자(trillionaire)가 광안대교에서 뛰어내리면? 간단히 죽는다. 시진핑이든 푸틴이든 달려오는 8톤 트럭과 정면충돌하면? 이들 역시 간단히 죽는다. 인간이 만들고 숭앙하는 거부巨富와 거대권력도 한낱 필부와 똑같이 물리법칙에 지배된다.

물론 ‘나’가 사라지면 전 우주가 무슨 소용이리요. 내가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저 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없어지고 난 뒤에는 저 달의 존재유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우주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 하여 개인적인 시각이 중요하다. 그런 만큼 개인을 떠나 인류적·역사적·우주적 시각도 필요하다.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서다.

‘시대와의 불화’에 일반인의 삶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모양 갖춘 말일 뿐, 그냥 그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미명이리라. 역사와 뭇 고전들에서 어떤 사람에게도 정당한 구실을 줄 수 있는 명언들을 찾을 수 있다. 『도덕경』에 ‘나를 아는 이가 드무니, 이는 곧 내가 귀하다는 증거다’(知我者希 則我貴矣)라는 구절이 있다. 참일까? 그럴듯하긴 하다. 그러나 어쩌면 도덕경도 생존경쟁에서 실패한 허무주의자의 노래일 수도 있다.

귀한지 안 귀한지는 모른다. 하여튼 드물기는 하다. 시대나 사회 상황이 어떻건 천성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성품에 경험을 더하고 이론을 보태 ‘가치관’이 형성한다. 이 가치관 추구는 삶의 즐거움이나 의미에 절대적이므로 바꿀 수가 없다. 이 추구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 궁핍은 운명이 된다.

운명에서 운運 자는 ‘돈다’는 뜻이다. 사람의 살이는 돌고 돈다. 곧, 명命에 붙잡혀 고정된 게 인생이 아니다. 쥐구멍에 볕들 날도, 마른하늘에 벼락을 치는 날도 있는 법이다. 주역周易 또한 바뀌고 변하는 시간적 변혁이다. ‘계사전’에 “궁하면 바뀌고, 바뀌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는 말이 있다. 주역의 ‘택수곤(澤水困䷮) 괘를 보자.

택(☱)은 연못이고 수(☵)는 물이다. 연못 밑에 물이 있다. 물이 빠져버렸다는 뜻이다. 하여 곤困하는 것이다. 한데 이 계사(설명?)를 보면, 정말 삶에 대해 깊이 생각게 한다. 困亨貞大人 吉无咎 有言不信(곤형정대인 길무구 유언불신). 곤궁함은 형통하고 바르니 대인이라. 길하고 허물이 없다. 그러나 말을 하면 믿지 않는다.

곤궁함을 당해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대인(군자)은 곤궁함을 당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소인은 곤궁해지면 참지 못해 죄를 짓는다. 택수곤 괘를 사람을 분별하는 괘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인이라도 말을 하면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곧, 곤궁한 연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면 남들은 구차한 변명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곤궁함을 묵묵히 감내하며 이겨내면 자연 뚫릴 터인데, 무슨 언사가 필요하리오. 부끄럽다.

<작가 / 선임기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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